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세월호 침몰사건, 무장탈영병 총격사건 등 사회를 충격 속에 빠뜨리는 커다란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그 와중에 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의 인사검증 문제, 그나마 위안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나라 월드컵축구 대표팀의 부진 등은 국민들을 더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서로 전혀 별개와 같은 이러한 사건들의 이면을 곰곰이 살펴보면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책임의 정도와 경우만 다를뿐 리더와 리더십을 둘러싼 문제이다. 세월호의 침몰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사주의 탐욕, 공직자의 비리, 제도적 문제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겹쳐서 발생하였지만, 침몰 후 대규모 사망자가 난 것은 일차적으로 승객과 배를 버려두고 제일 먼저 도망친 선장의 몰염치와 무책임에 기인한다. 선장의 이러한 행위는 리더십을 운운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파렴치한 것이지만, 실상 많은 승객을 실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기장의 리더십과 책임은 막중하다. 그러기에 유사시 승객에 대한 사법권과 호적업무 등을 국가가 위임할 정도로 중요한 권한도 부여한다. 이는 이들의 책임과 행위가 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과정이나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당국자나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 문제도 다시 떠올라 우리 사회에 심각한 과제를 남겼다. 군 탈영병 사건에서도 휘하 부하장병들이 총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한 위급한 상황에서, 사고를 수습해야할 지휘관인 소초장이 무기고의 열쇠를 지닌 채 이웃 소초로 도망을 갔다. 리더십이란 이렇게 지위의 고하가 문제가 아닌 리더십 그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자질이 안 되는 리더가 이끄는 집단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그리고 이러한 리더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특히 긴박하고 위급한 재난상황에서 훌륭한 리더의 유무와 리더십은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집단 전체의 생사를 좌우한다. 공식적인 조직에서 리더는 주어진 법적 도덕적 책무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행하지 않았을 때에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 집단의 규범에 따른 제제를 받는다. 그렇지만 훌륭한 리더는 꼭 리더의 의무적인 책임감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미야기 현 이시노마끼 시. 해변에서 4km 떨어진 오카와 초등학교는 지진이 일어나자 평소의 매뉴얼에 따라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켰다. 그 14분 후에 쓰나미경보가 발령되자 일부 학부모는 학생들을 직접 데리고 귀가하였다. 그러나 교장이 휴가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교사들은 누구도 대피를 위한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논쟁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우왕좌왕 하던 중 지진발생 40분이 지나고 당국의 재난 경보차량이 쓰나미가 임박했으니 피난하라는 다급한 방송을 하고 나서야 교사들은 200m 떨어진 제방으로 대피하기로 결정하고 학생들을 행렬을 지어 이동시켰다. 그 순간 쓰나미가 이들을 덮쳤고, 대피하던 학생 108명 중 74명, 교사 11명중 10명이 사망하였다. 나중에 사고조사위원회는 이 참사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으나 교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났다고 결론내렸다. 리더와 리더십의 부재가 부른 인재였던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10년 8월 5일 칠레의 산호세 광산 지하 700m 갱도 중간 부분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광부 33명이 매몰되었다. 매몰된 지 17일 만에 33명이 생존해 있는 사실이 외부에 처음으로 알려졌고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매몰된 지 69일만인 10월 14일 마지막으로 ‘루이스 우르수아’를 구조함으로써 매몰된 광부 33명 전원을 구조하는데 성공하였다. 세계가 지켜본 광부들의 구조과정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미국 NASA와 민간 기업의 첨단기술이 동원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도 있었지만 전원 구조 성공의 뒷면에는 역시 훌륭한 리더와 훌륭한 리더십이 있었다. 우선 칠레의 피네라 대통령과 로렌스 골본 광업부 장관은 강한 신념과 리더십으로 일사분란하게 구조작업을 지휘하여 비극적인 매몰사고를 오히려 국민단합의 계기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성공의 원인은 작업조장에 불과했던 ‘루이스 우르수아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광부들이 갇힌 갱도 공간은 섭씨 32도가 넘는 고온과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먹을 것은 유통기한 지난 우유와 적은 양의 통조림과 과자, 약간의 전지, 발굴용 공업용수가 전부였다. 전원이 사망할 수도 있는 극심한 공포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르수아가 솔선해서 리더로 나섰다. 매몰 초기에는 파벌이 생겨 주먹다짐까지 벌어지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우르수아는 인원을 3교대로 나누어 수면을 취하게 하고 각 자에게 의사, 목사, 오락반장 등의 역할을 부여하여 매일 과업을 부여함으로서 광부들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또 구조가 장기화될 것을 고려하여 남아있던 음식물의 배분을 제한하는 등 리더가 취해야 할 전략적, 기술적 역할도 다하였다. 그는 광부들이 차례로 구조되는 것을 돕고 맨 마지막에 구조되었다. 특히 재난상황이나 전쟁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은 조직이나 국가의 존망을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장군이나 2차 대전에서의 처칠이 보여준 리더십이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리더란 복수의 사람들이 속한 집단이나 조직을 이끄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행위가 리더십이다. 홀로 존재하는 리더란 없다. 그래서 리더의 리더십은 관련된 집단에 필연적이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리더는 집단의 목표를 달성할 책임을 진다. 유기적으로 뭉친 조직에서는 당연히 조직의 목표가 있다. 하지만 탑승하고 있는 승객이나 특정 장소의 군중들처럼 소위 비공식 집단은 뚜렷한 목표나 리더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집단의 공통적인 이익을 대표하는 잠재적인 목표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재난이나 집단적 이익의 침해와 같은 유사시에 명백하게 표출된다. 리더는 리더가 되는 과정에서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크게 ‘정당한(Legitimate)’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로 나눌 수 있으며 ‘정당한 리더’는 집단의 규범이나 절차에 따라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지명되고 또 본인이 이를 수락한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선출된 리더는 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정당한 권력(Legitimate power)’을 가지며 또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동시에 진다. 보통 선출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리더는 집단의 저항을 초래하여 조직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소위 ‘강제권력(Coercive power)’을 사용하여 집단을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리더의 자리, 특히 공식 조직의 리더는 자리에 있는 이상 리더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반면 평소에는 ‘정당한 리더’가 필요하지 않는 비공식 집단에서도 재난 상황을 맞아서는 집단의 필요에 따라 갑자기 리더가 선출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선출된 리더는 정당하지만 ‘정당한 권력’이 규범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리더의 재량적인 리더십이 집단목표의 성패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리더십은 CEO주가란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의 성패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모 경제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직장인들이 소속 리더의 리더십에 대해 가지는 만족감이 100점만점 기준으로 44.1에 불과해 우리나라의 기업계조차도 심각한 리더십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리더와 다시 일하고 싶다는 응답은 39.5, 부하가 인식하는 상사의 도덕성 수준은46.9로 역시 이러한 리더십 결핍문제를 뒷받침한다. 이는 당연히 팀성과 인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리더십 만족 상위 25퍼센트(70.7)와 하위 25퍼센트(31.9) 사이에 무려 38.8점의 차이가 났다. 그리고 나아가 리더십은 구성원의 이직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침으로서 인재의 유출을 촉발한다. 조직에서 구성원이 리더를 따르게 하는 리더십의 원천은 일반적으로 조직 권력(리더가 보상을 통제하는데서 오는 보상권력과 리더가 주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복종하는 강제권력이 있음)과 리더의 전문성으로부터 생기는 전문성 권력, 리더의 품성/카리스마 등을 존경해서 생기는 관계성 권력 등이 있다. 조직권력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좋은 리더일수록 조직권력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그리고 리더가 제시한 막연한 비전에 현혹되어 따르기도 하는데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한 예이며, 물론 정상적인 리더십 형태는 아니다. 리더는 구성원에게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킨다. 또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준다. 조직과 자원을 유효적절하게 관리하고 궁극적으로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리더의 임무이다. 그렇다고 과정은 무시하고 목표달성만 추구하는 리더도 좋은 리더는 아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투철한 사명감, 높은 윤리의식, 결단력, 용기, 자기헌신, 변화에 대한 민감성, 효과적인 의사소통, 권력의 생리를 이해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능력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좋은 리더는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남의 말을 경청한다. ● 적절한 시기에 결정을 내린다. ● 책임을 아래로 미루지 않는다. ● 비판에도 인내하며 필요한 경우 수용한다. ●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 선의를 갖고 있다. ● 구성원을 항상 존중한다. ● 신상필벌에는 단호하다. ● 성과를 공정하게 분배한다. ● 조직의 목표를 달성한다. 반면에 나쁜 리더의 대표적인 특징은 왜곡된 가치관이나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구성원을 이끈다는 점이다. 물론 좋은 리더들도 가끔씩 이제까지의 성공에 도취되어 실수를 범한다. 대표적인 것이 주어진 권력의 증가와 높아진 주위의 인정에 따른 자가진단과 자각능력의 저하로부터 오는 아집과 독선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객관적인 데이터나 명백한 경고 신호를 무시하며, 과거 성공했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서 변화의 흐름을 놓친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5대1, 칠레에 2대0으로 패한 뒤 16강전에서 탈락한 2010월드컵챔피언 겸 2012유로챔피언인 스페인팀의 감독 비센데 델 보스케 감독과 그동안 청소년월드컵 8강과 올림픽 동메달을 성취한 우리나라의 홍명보 감독이 이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두 감독은 주위의 조언을 무시하고 옛날의 성공멤버와 변화 없는 틀에 박힌 전술을 고집함으로서 실패를 자초했다. 그러나 훌륭한 리더는 복원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실수를 교정하고 원래의 트랙으로 돌아온다. 홍 감독과 보스케 감독도 그러하리라 본다. 한 조직이나 국가가 좋은 리더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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