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Focus

며칠 전 후배 한 명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과거 직장 다닐 때부터 잘 따르고 가끔 만나 술도 한 잔씩 나누는 밝고 긍정적인 후배였는데 그날따라 안색이 많이 어두웠다. 의논드릴 것이 있다던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저 회사 그만두면 뭐할까요?”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요즘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데, 본인이 대상자이고 해당 임원과의 면담도 있었다고 했다. 해당 임원은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이미 인사부서에서 할당인원과 대상자 선정기준, 퇴직위로금 수준까지 공지된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런 후배의 말을 듣고 있는데 가슴이 답답해 왔다. ‘20년 가까이 청춘을 바쳐온 직장에서의 마지막이 이런 것인가’라는 만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직장을 떠나야 하겠지만,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고 개인에게는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직장인 평균 은퇴연령은 53세라고 한다. 현장직 근로자들이야 이보다는 다소 높게 나타나겠지만, 사무직, 관리직에 있는 직장인들은 거의 50대 초반에 직장을 떠나게 되는 것 같다. 오죽하면 정년까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천연기념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상시화된 인력구조조정 일전에 어느 대기업의 CEO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표님, 왜 해마다 직원들은 정리하면서, 신입사원들을 그렇게 많이 채용하십니까? 차라리 있는 직원을 정리하지마시고 신규인원 채용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나요?” 이 질문에 그 대표은 뜸도 들이지 않고 “고인 물은 썩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덧붙여 조직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조직에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들은 타성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변화가 기업의 구조조정이 상시화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회사의 M&A나 도산 등 큰 이슈가 있거나 정기적인 인사가 있을 때 시행되던 구조조정이 이제는 상시화, 수시화되었다는 것이다. 위기극복 대책으로서의 인력구조조정 기업들은 저마다 위기 타개의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인력구조조정을 한다고 말한다. 올 초 KT가 8,000명이 넘는 직원을 명예퇴직시킨 것을 비롯해 조선, 정유, 건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시행되더니, 하반기에 들어서는 기대실적에 못 미친 삼성전자가 본사인력 15%의 현장전진배치계획을, LG전자는 수출영업부진에 따른 인력감축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여기에 삼성계열의 금융사와 동부그룹 계열사가 인력구조조정을 현재 실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는 것은 물론 개인이나 조직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에, 그리고 나이도 있고 여러 가지 조건상 재취업이나 전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발적인 희망퇴직에 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기업들은 희망퇴직을 시행하기 이전에 희망퇴직 시행 기준을 만들기 마련이다. 나이, 업무평가, 보직여부 등 기준을 만들어 놓고 희망퇴직자가 없을 시, 조직 별 목표인원을 정해 면담을 통해 퇴직하도록 하고 있다. 득보다 실이 큰 인력구조조정의 칼날 이 과정에서 해당 대상자들은 “왜 접니까?”라는 반론 제기와 함께 조직에 대한 분노, 심지어는 법적 대응까지 생각하게 된다. 또한, 남아있는 직원들은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겠지!’라는 불안감에 과도한 경쟁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것들은 결국 개인주의 심화, 조직에 대한 책임감 감소, 회사에 대한 충성심 저하, 관심과 배려심 부족등 심각한 조직문화상의 갈등을 양산하게 된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회사가 어려움에 닥치면 구조조정이란 칼을 빼 든다. 인력운영 효율성 제고, 비용 절감, 조직 분위기 혁신, 인적쇄신 등의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생산설비투자를 줄이거나 사업축소, 회사이전, 자산매각 등의 조치를 취하거나 정리해고의 수준을 밟는 것보다 효과도 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도 이유이다. 이러한 구조조정 방식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일까? 굳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본의 유연한 고용정책에서 배우자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으로 직원의 충성심과 열정을 강조해 온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과 세계적인 금융위기, 엔고 등 경영환경의 악화로 구조조정이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저, 일본기업 구조조정의 가장 큰 특징은 정규직에 대한 해고는 최후의 선택이며, 가장 적은 인원으로 실시하고, 이후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재취업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먼저 노사합의를 통해 잔업시간 단축으로 근로시간을 줄이고, 임금도 삭감해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인다. 그리고 협력회사 및 관계회사로의 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출향제’를 실시한다. 그 다음으로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제도는 비정규직의 탄력적 운영이다. 계약직의 계약기간을 종료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주로 도요타, 닛산 등 자동차 업체를 중심으로 실시하였다. 파견직 사원도 마찬가지로 파견기간이 끝나면 파견계약을 만료하고 재취업 시키지 않으면서 현장 내 파견인력을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비정규인력의 비율이 높고, 비정규인력의 고용 유연성이 높은 일본에서는 경기불황에 따라 비정규직 조정으로 경기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정규직의 구조조정, 즉 희망퇴직과 명예퇴직을 하는데 각 직급에서 하위 평가 및 승진 누락자, 고연령자를 대상으로 하며 우선 개인의 희망에 따라 타사로의 전직 비정규직 전환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원칙으로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퇴직 위로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본기업들은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지속되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 인력의 활용을 적극적으로추진하고 Outsourcing을 통한 고용 유연성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 보호 및 노조의 반발 등 차별철폐 요구 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본과 같은 구조조정 정책은 시행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인간존중 중심의 구조조정 전략을 찾자 요즘 기업경영의 핵심가치로 ‘사람 중심의 경영’을 내세우는 기업들이 많다. 국가도 ‘국민 행복시대’니, ‘사람 특별시’니 하는 말로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 중심의 경영을 한다는 기업들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는 전략들이 과연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에 맞는지, 또 맞추기 위해서는 무슨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회사가 어려우니 회사존립을 위해서 인력 구조조정을 한다는 단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먼저 근시안적 인력수급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사업이 잘되면 많이 뽑고, 안되면 자르는 주먹구구식의 인사정책으로는 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3년 뒤, 5년 뒤를 내다보고 사람을 뽑고 키우는 중장기적 관점의 인력투입계획과 체계적인 육성은 어려운 것일까? 사업이 잘될 때 왕창 뽑아놓고 사업이 안 되니 나가라고하는 인사가 무슨 인사인가. 인사에서의 ‘事’는 일 사 자가 아니고 섬길 ‘仕’자인 것이다. 둘째, 인본주의 경영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한 사람이 입사해서 어떤 경로를 거쳐 성장하고 어느 나이에 조직을 떠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과정에 회사가 지원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한다. 일만 시키다가 임금 수준보다 생산성과 성과가 떨어지니까 나가라는 식의 정책으로 어느 직원이 열정을 바치겠는가. 셋째,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그럼 평생직업은 무엇인지 직원 스스로 자신의 제2의 혹은 제3의 평생직업을 찾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제일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 가서 조금 하다가, 직장에 취직하는 순간부터는 공부와 담쌓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는 평생직업도 없을뿐더러, 직장을 그만두면 당장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사회 학습, 평생학습을 통해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고, 그 과정에 기업들이 학습과 교육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끝으로 회사의 진정성 있는 노력과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 몇 해 전 어느 일본 기업의 CEO가 희망퇴직을 하는 직원과 그 가족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면서 회사가 잘되면 반드시 다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이후 5년 만에 경영이 정상화된 이 기업은 그 당시 회사를 떠났던 직원에게 일일이 연락해 희망하는 직원 전부를 재취업시켰다고 한다. 경영이 정상화되면 다른 직원으로 자리를 채우는 우리 기업의 풍토와 다소 다른 느낌이다. 회사가 진정 힘들면, 직원들이 먼저 알아차릴 것이다. 회사의 경영층부터 위기극복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하고 그런 활동들이 직원들을 감동시켜, 직원들 스스로 자발적 참여와 희생이 있다면 그 기업은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 명 진 윈플러스경영개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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