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럽지 못한 급여에 전공과는 무관한 업무로 시작한 사회생활이지만 적어도 취업난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피했던 나인지라 현재의 내 자리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끝없이 몰아치는 구직난, 실업난의 파도를 피해 몸 숨길 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피 터지는 전장에서 시간, 돈, 인맥, 스킬을 총동원해 최대한 좋은 자리에서 스타트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겠지만 하반기 채용관련 기사를 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할 거다.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런 자리에 목메는 사람은 늘어나니 말이다. 당장의 채용계획은 없지만 우리 회사도 일정 규모를 유지하려다 보니 대기업 공채시즌이 되면 인사, 채용 트렌드나 프로세스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대학이나 언론, 민간기업에서 실시하는 채용특강과 박람회 등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신형씨도 이제 문서작업 수준은 벗어나야지. 올 하반기 채용시즌 분석은 신형 씨가 한 번 해보자. 한 팀장이 최근 3년치 자료 챙겨서 주고, 나가서 봐야 할 것들은 리스트 작성해서 보고해. 유료교육과정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한 팀장이 판단해서 진행하고.” 인사팀 신입사원 10개월 차에 처음 받은 미션으로 나만 요 며칠 외근이 잦다. ‘크게 딴 짓을 할 수 없는 일정이지만 그래도 업무시 간 중에 비싼 커피 손에 들고 콧바람 쐬는 일은 우리 팀 특성상 매우 드문 일이니 알차게 즐겨야지.’ 오늘은 유명 대학에서 몇몇 대기업 인사팀장들을 모아 특강과 질의응답을 갖는 행사에 참여해자리를 잡았다. 채용에 관련된 다른 기업의 입장과 정보도 듣고 구직자들의 입에서는 채용에 관해 어떤 이야기가 도는지도 궁금해서 직접 가보겠다 선택한 프로그램이다. 500석을 가득 메운 강당은 관계자들과 학생 심지어, 학생의 부모님들까지 참석해 북새통이다. ‘대학입시설명회에 이어 이젠 취업특강까지 자녀 손 붙잡고 출석하는 모양새라니,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자식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랄 수밖에.’ 여기서 보내는 4시간 동안 무슨 얘기가나올 것이며, 이들은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OO그룹은 총 12개의 계열사에 연 매출은 OOOO조 원에 이르며 대표 제품은 작년에 이어 20%의 판매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창립자이신 OOO회장님은......” “열정, 창의, 도전 이 세 가지 단어는 이력서에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스펙보다는 실제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을 보기 위해 당사는 별도의 채용 프로세스를 개발, 운영하고 있으며 채용 프로세스와 채용인원은 9월 중순 경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있습니다.” “저희 기업은 상하반기 공채보다는 사실상 상시로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취업전선에 갓 뛰어든 여러분들에게 실질적으로 업무상의 능력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현실이죠. 산학협력과 같은 이론적인 배경도 좋지만 우선 본인 스스로가 직업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을 명확히 하고 일찌감치 준비를 해야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기업백과사전을 풀어놓는 사람부터 매우 현실적인 조언에 이르기까지 각 기업들은 할당 받은 1시간을 꽉꽉 채워 얘기했다. 청중이 보내는 눈빛, 귀 기울임, 박수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던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오페라 공연장 구석에서 커피나 쪽쪽거리는 한심한 관객 같았다. 질의응답은 주최측이 정한 시간을 훨씬 넘길 때까지 이어졌고 특히나 학부모님들의 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행사는 끝이 났다. 사실 내가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은 채용 프로세스, 즉 이력서와 인·적성검사, 면접, 합숙, 교육 등 일체 과정이다. 결론적으로는 앞서가는 기업을 통해 ‘채용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회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어떻게 뽑을 것인지’에 대한 기업 입장의 답안을 참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전혀 구할 수 없는 곳에 간다고 한 나를, 본부장님은 뻔히 아시면서 왜 흔쾌히 가보라고 허락하신 걸까? 돌아가면 꼭 물어볼 생각이다.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루 종일 골머리를 앓는 동안 본부장님과 한 팀장님은 면담으로 바쁘시다. 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일주일 내내 임원회의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결과를 통보하는 자리겠지. 중소기업으로서 정부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임직원수의 평행선 맞추기가 필수적이다. 새사람의 영입으로 성장동력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기업의 재정상황이 좋다고 해도 무턱대고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라 경기도 어렵고 기업도 매출부진으로 새로운 자리 만들기가 이리 힘드니, 기존의 자리가 비워지지 않는 한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란 그저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과일 수밖에 없을 터. 계약기간이 만료된 8명의 직원 중에서 2명은 퇴사, 6명은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부서단위로 필요한 인력을 점검한 뒤, 우리는 1명의 계약직과 2명의 정규직 채용 공고를 올린 상태다. T.O가 1명 증가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건지, 사람 들고 나는 일이 마치 내 손에서 일어나는 일 같아 부쩍 예민하다. 퇴근 무렵, 초등학생 수준으로 끄적거린 대기업 취업특강 보고서를 제출하고서는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 간단히 맥주 한잔 하면서 꽤나 어른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어릴 때 의자 뺏기 놀이 많이 했었잖아. 지금이 딱 그 꼴이라니까. 자리는 적고 앉아야 할 사람은 늘 많아. 신입사원?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나가야 들어올 자리가 생기는 게 요즘 세상이라고.” “지하철에서 어떤 중년 아저씨가 취업난이 심각해 큰일이네 어쩌네 얘기하는데 사실 좀 웃기더라고. 그렇게 청년실업 걱정하고 일자리 늘어나야 된다고 말하면서, 일자리 나누기같이 기존 인력들의 양보가 필요한 정책에는 불같이 반대하잖아. 물론 그런 정책들이 다 옳다는 말은 아니고......” 내가 참여했던 취업특강은 줄어드는 의자들 중 자기 것 하나차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실제 100명 중 원하는 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인원은 10명 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특강에서 ‘본인의 직업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이 우선’이라 말했던 분이 떠오른다. 사실 모두가 알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꿈 같은 이야기. 내가 원하는 직업이 아닌 내가 가야 하는 직장이 더 절실한 요즘이다. 사람을 잘 가려 뽑는 방법 말고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을 뽑는 방법을 기업이 연구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미션을 내리고 이를 완수하는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 나는 술기운에 또 포커스에서 한참 벗어난 불필요한 고민에 빠져 잠 못 이룬다.
- 2014년 9월호, 제115호
- 입력 -0001.11.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