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창조경영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문을 여는 은행은 왜 없을까.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한 주택대출 상담이 왜 평일 근무시간에만 가능한가. 보험상품은 한가로운 주말에 단골고객을 초청해 이벤트를 곁들여 마케팅하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항상 궁금했다. 은행은 왜 놀라운 서비스를 내놓지 않는가. 세계 모든 은행이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차별화 경쟁을 하지 않는 업종은 없다. 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금요일 저녁에는 늦게까지 문을 연다. 주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많아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기 위해서다. 인도네시아 BRI은행은 미니밴을 타고, 섬에는 보트를 타고 고객을 찾아간다. 500개 가까운 이동식 은 행을 운영 중인데 농민이나 자영업자를 위한 소액대출, 그리고 지방 부자를 위한 맞춤서비스가 핵심 경쟁력이다. 은행 영역 잠식하는 IT강자들 우리 은행들은 변하는 게 없다. 예대마진이 유일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정부 책임도 크다. 금융업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보호가 문제다. 대기업은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금융을 할 수도 없다. 업계 내에서 튀지 않아도 고만고만하게 유지가 된다. 남반구 숲속에서 평화롭게 낮잠을 자는 코알라 같다. 그런데 사실 이런 업종이 가장 위험하다. 다른 업종에서 갑자기 날아온 경쟁자에게 당하게 돼 있다. 당장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 정보기술(IT)과 인터넷 업체들의 금융 진출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액센츄어는 2020년께 세계 금융의 3분의 1 이상을 IT기업이나 인터넷은행 등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전자지갑 시장부터 잠식당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해외 물품을 직구(직접구매)하는 사람들은 신용카드 같은 기존 금융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글로벌 업체의 전자지갑 서비스를 쓰고 있다. 1998년 이베이가 시작한 결제서비스 ‘페이팔’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회원이 이미 1억 5000만 명이 넘으니 믿고 쓰는 것이다. 여기다 최근에는 중국의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알리페이가 들어왔다. 지난해 결제액이 4조 2000억 위안(약 700조 원)이나 되는 막강한 업체다. 여기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이 아이폰6부터 ‘애플페이’를 탑재키로 했고 국내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카카오톡도 ‘뱅크월렛카카오’와 ‘카카오페이’를 선보이며 금융시장에 들어선다.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등 회원이 많은 SNS 업체들도 전자지갑이나 전자결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경쟁자는 다른 업종에서 온다 은행이 하던 일 가운데 단순히 입출금, 송금 등의 서비스만 뺏기는 게 아니다. 알리바바는 소액투자조합을 온라인에서 결성하는 소셜펀딩서비스를 시작했고, 또 다른 중국 업체인 바이두와 텐센트등은 머니마켓펀드(MMF) 상품을 내놓고 있다. 투자도 모아주고, 펀드도 팔며, 예금 보험까지 금융의 전 영역에 깃발을 꽂아 놨다.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업종은 다른 업종의 먹이가 된다. 노키아 같은 기기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던 휴대폰 시장은 컴퓨터업을 하던 애플이 나타나 판도를 바꿨다. 애플과 ‘친구들’이 금융시장으로 몰려오고 있다. 이런 데도 올 들어 기억나는 은행 뉴스는 국내 최대은행의 회장과 은행장 싸움뿐이다. 이러다 은행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일도 아니다.

 

권영설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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