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승진에서 누락된 직장생활 8년차 김 대리와 사내 코칭을 담당하고 있는 박 팀장의 대화를 통해 주제를 풀어보겠다. “회사생활에서 평가가 왜 중요하지?” 박 팀장이 코칭 자리에 앉자마자 김 대리에게 물었다. “그거야 회사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니까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회사생활 어느 부분에 평가가 영향을 미치지?”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연봉과 승진에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월급쟁이한테 제일 중요한 게 연봉과 승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가 평가임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 수 없지. 그렇다면 평가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회사생활의 성공과 실패, 만족과 불만족 등, 회사생활 자체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거네.”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중요한 평가는 누가하지?” “소속 부서장이 하죠.”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그들의 상사의 평가에 의해서 회사생활이 좌지우지 되겠네? 다시 말하면 상사가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의해서 직장인들의 삶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겠네.” “그렇겠죠.” 계속되는 유도성 질문에 김 대리는 박 팀장이 원하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구.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 받는 사람이 있는데, 누가 평가에 더 영향을 미칠까?” “그거야 당연히 평가 받는 사람이죠. 평가라는 것이 평가 받는 사람의 성과에 대해 측정하는 것이니까요.” 김 대리는 ‘답이 뻔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틀렸어. 평가하는 사람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쳐.” “네? 어떻게 평가하는 사람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죠?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평가요소에 의해서 결정돼야 하는것이 아닌가요?” 박 팀장의 말에 김 대리는 매우 혼란스러워 하며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김 대리의 논리는 평가요소를 측정하는 방식이 완벽할 경우에만 해당되지. 그러나 회사 내에서 그런 완벽한 측정은 있을 수가 없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김 대리, 내가 예를 들어 볼게. 대리점 담당 영업사원의 성과를 담당 지역의 매출로만 평가한다고 가정해 보자고. 목표대비 90% 이하는 D, 91~95%는 C, 96~105%는 B, 106~110%는 A, 111% 이상은 S라는 평가 기준이 있다고 하자. 영업사원 매출은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으니까 누가 평가하느냐에 관계없이 평가결과는 동일하겠지.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된 평가일까? “뭐가 문제죠?” “뭐가 문제냐고? 여러 문제가 있지. 평가 기간 중에 대리점이 교체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매출 목표를 조정해야 할 것이고, 대리점의 잘못이 아닌 회사나 제품의 문제로 매출이 감소하는 경우에도 이 부분을 평가에 반영해야 할 것이고 등등.” “이런 모든 변수까지 사전에 완벽하게 감안할 수는 없고, 목표 설정 시 모든 영업사원들에게 동일한 기준이라면 원래 정한대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김 대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반박했다. “김 대리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야. 하지만 사람을 사전에 정한 객관적인 요소로만 평가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글쎄요. 때로는 실력이나 노력보다는 운이 더 작용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겠죠.” “운이 더 작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음,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불만을 제기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겠죠.” 김 대리는 잠시 생각하다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럼 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일부의 부작용 때문에 전체의 결과를 흔들 수는 없죠. 노출된 문제점을 다음 평가 기준을 설정할 때 보완해서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다음 평가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까?” “글쎄요. 또 다른 변수에 의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계속해서 문제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결국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되지 않을까요?” 김 대리는 자신 있게 의견을 제시했다. “김 대리가 지금 개관적인 평가라는 말을 했는데, 평가는 개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인가?”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김 대리는 타협의 소지가 전혀 없다는 듯이 아주 단호하게 얘기했다. “김 대리, 평가는 당연히 객관적이어야 하지, 내 질문은 평가의 속성 자체가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를 물어보는 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객관적인 것에 가깝나? 아니면 주관적인 것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를 굳이 택해야 한다면, 저는 주관적인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리는 이번에는 자신이 없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김 대리의 말을 정리하면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주관적이다.’라는 말인가?” “그게 아니고요. 제 말은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주관적 요소가 강하니까,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 평가를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 대리는 박 팀장이 자신을 평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처럼 대하는 것 같아 발끈하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이번에는 김 대리가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라는 말을 했는데,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과연 가능할까?”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팀장님. 빙빙 돌리면서 질문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세요.” 김 대리는 계속되는 철학적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가 나왔다. “알았어. 이제 질문은 그만하고 내 의견을 얘기할게. 결론적으로 말하면 평가는 주관적이야.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 객관적인 평가는 존재하지 않아.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이나 의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지. 예를 들면 야구에서 원아웃 만루 상황에서 타자가 홈런을 쳤다고 가정해 보자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 타자는 아주 좋은 평가를 받겠지. 하지만 감독이 스퀴즈 번트를 지시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홈런을 쳤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감독이 지시한 스퀴즈보다 훨씬 좋지만 평가는 오히려 스퀴즈보다 훨씬 안 좋게 나오겠지. 왜냐하면 운이 좋아서 홈런을 쳤지만 확률적으로 볼 때 홈런을 치지 못 할 가능성이 훨씬 크고, 감독의 지시를 어기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상관없다는 인식이 생기면 어느 선수도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야. 또한 사람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완벽하게 평가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어. 평가하는 사람이 다른 일은 전혀 안하고 근무시간 내내 평가 받는 사람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평가만 한다면 모를까. 김 대리, 지금까지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수긍이 가나?” “네,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김 대리는 정확히 이해는 안 됐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박 팀장의 논리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러면 아까 내가 김 대리에 한 질문을 다시 해볼게.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 받는 사람 중에서 누가 평가에 더 영향을 미칠까?” “음, 평가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평가받는 사람보다는 평가하는 사람이 더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시죠?” 김 대리는 박 팀장의 논리에 압도당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박팀장이 원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 이제야 내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했네. 자 이제 우리의 대화를 정리해 볼까?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봉과 승진이다. 연봉과 승진은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평가는 상사가 하니까 상사의 평가에 의해 회사생활이 좌지우지 된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속성상 평가 요소의 객관화와 반영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평가 받는 사람보다 평가 하는 사람이 평가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지금 정리한 내용이 맞나 김 대리!” “네 맞습니다. 팀장님.” “자, 그렇다면, 일을 잘하는 것과 평가를 잘 받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팀장님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당연히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김 대리는 지난 8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가졌던 가치관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몹시 혼란스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답은 둘 다 중요해.” “예, 둘 다 중요하다고요? 지금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아니야. 내가 왜 김 대리를 놀리겠어. 내 말은, 평가를 잘 받는 것이 일을 잘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야. 다시 말해 둘 다 중요한데, 우리는 일 잘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평가를 잘 받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제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김 대리가 이제야 공감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김 대리는 지금까지 어느 쪽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며 회사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나?” “예?” 김 대리는 잠시 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 가까스로 말을 이어 갔다. “평가를 잘 받는 것이 일을 잘하는 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을 8년 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김 대리는 박 팀장 질문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솔직히 대답했다. “의외로 많은 회사원들이 김 대리와 같은 시각으로 평가를 생각하지. 그러다 보니 평가하는 사람의 시각이 아닌 평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일하기가 쉬어. 그 결과로 열심히 죽어라고 일하지만 평가는 항상 기대보다 못 미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 그리고 평가요소가 잘못됐다고 불평하거나 평가자가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른다고 불만스러워 하지. 김 대리는 어떠했나?” “저도 승진에 누락된 원인이 제 문제가 아닌 평가요소나 평가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니까 도저히 왜 내가 떨어졌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제야 그 원인이 저한테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한테 깨달음을 주신 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서인 샘표식품 인사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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