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프로야구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까지 프로복싱은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 스포츠였고, 또 우리 대한민국은 프로복싱의 강국이었다. 그 덕에 늘 TV에서 프로복싱 경기를 참 많이 보았었다. 당시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실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프로복싱은 심심치 않게 시나리오의 소재가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영화 한 편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록키(Rocky)’이다. 그 후, 고교시절에도 그리고 대학시절에도 계속 시리즈로 나왔던 록키라는 영화를 보면서 늘 흥분과 감동을 느끼곤 했다. 몇 해 전 별 생각 없이 손에 쥔 한 권의 책에 잔잔한 여운을 길게 느낀 기억이 있다.『예수와 함께 영화를 보다』라는 책이었는데, 그 내용 가운데 하나인 영화 ‘록키’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학창시절 만났던 록키에 대한 향수를 불러줌과 동시에 전쟁터와도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내게 ‘어떻게 생존하고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구축할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단초를 던져주었다.

아내는 임신했고, 통장에는 100달러밖에 없었다. 복잡한 심정에 실베스터 스탤론은 집을 나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무하마드 알리와 웨프너의 헤비급 타이틀전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마음도 달랠 겸 그 시합을 구경하던 스탤론은 알리와 15회전까지 대등한 시합을 펼친 웨프너의 모습에서 영화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삼류 권투선수의 인생 이야기‘록키’는 이렇게 탄생했다. 영화사에서는 그 시나리오를 사겠다고 했다. 생활은 힘들었지만 스탤론은 10만달러의 제안을 거절했다. 스탤론은 조건을 달았다. “돈은 안 줘도 좋다. 대신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하겠다. 이건 나의 이야기라서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대신 성공하면 흥행 수입의 10%를 달라.”(후략)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영화 ‘록키’가 세상에 나온 것이 1976년이다. 커리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록키의 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은 ‘돈’을 한 몫 챙기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느냐 아니면 ‘돈’은 당장 벌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계속하느냐의 두 갈래 선택에 놓여있었다. 억대 연봉자가 허다해서 ‘억, 억’ 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10만 달러는 여전히 큰 금액이다. 1억 2천만 원 정도다. 더욱이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도 당시에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의 연봉이 약 3,000만 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1976년도에 10만 달러라는 금액은 변변한 직업도 없고, 집도 없던 스탤론에게는 가히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솔직히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엄청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꿈과 열정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있었기 때문에 거액의 유혹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에서 히트상품 하나 만들면 몇 년은 먹고 산다. 아니 10년 이상은 그 덕을 보고, 그 덕분에 계속적으로 이어지거나 파생되는 히트상품을 만들 수 있듯이 무형의 자산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하다. 노래실력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도 브랜드가 있고 없다는 차이 하나 때문에 어떤 가수는 황금시간대의 방송 출연 요청을 받지만 어떤 가수는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산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감독이자, 제작자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 1976년에 세상에 첫 선을 보였던 그의 데뷔작 ‘록키’라는 영화는 2006년에 ‘록키 발보아’라는 제목으로 ‘록키6’가 상영되었고, 최근에는 ‘록키7’까지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경쟁력이다.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1976년 무명의 영화배우 스탤론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그냥 쉽게 영화제작사의 제안대로 10만 달러를 받고 사라졌다면 아마 ‘록키’라는 영화와 ‘실베스터 스탤론’이란 배우는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당장 눈앞에 있는 돈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승부수를 기다렸기에, 또 자신의 혼과 열정을 믿었기에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다.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샐러리맨들 또한 충분히 한국판 록키가 될 수 있다. 다음의 몇 가지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점검해 보면 된다.

● 연봉 많다고 어깨에 힘주지 말고, 연봉 적다고 기죽지 마라. 그 연봉은 당신의 진정한 브랜드 가치가 반영된 연봉인가 아니면 어쩌다 운 좋게‘신(神)’의 직장에 입사한 덕분인가? ● 회사에서 붙여준 타이틀이 아닌, 나의 고객과 시장에서 부여해 준 나의 브랜드, 꼬리표, 수식어가 무엇인지를 기억하라. ● 테마가 있는 커리어, 일관성과 연관성이 있는 커리어, 스토리가 있는 커리어를 만들고 있는지를 기억하라. ● 타석에서 노리고 있는 구질의 공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배트를 휘두르지 마라. 함부로 조금 힘들고 재미없다고, 여기저기서 연봉 조금 더 준다고, 무조건 덥석 물지 마라.

돈 대신 ‘꿈’을 선택한 그는 이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연봉의 액수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연봉의 성격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연봉 많다고 까불면 안 되고, 그 액수가 적다고 어깨가 처질 필요도 없다. ‘내가 이 회사를 떠나서도 이 정도의 연봉은 언제 어디서라도 받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주식의 가치, 주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특별히 주가가 올라야 할 소재, 건수가 없음에도 그 주가가 계속 고가로 유지되고 있거나 상승하고 있다면, 그 것은 정말 불안하기 그지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재 주가가 그리 높지 않다면 그것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주가는 폭발적으로 오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장의 메커니즘이다. 샐러리맨의 연봉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디 샐러리맨뿐이겠는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사례를 한 번 연구해보자. 어제까지 K리그에서 연봉 1~2억 받던 선수였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수십 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 선수의 실제 가치는 수십 억이었다. 단지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회사에서 붙여준 직급이나 타이틀 이외에, 즉 계급장 다 떼어내었을 때도 여전히 시장에서 우리에게 따라다니는 브랜드와 꼬리표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현재의 회사라는 튼튼하고 거대한 울타리, 이 안전망을 떠나버리는 순간, 나는 한순간에 몰락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S그룹 인사부 박 부장”이라는 명칭을 떼어버리는 순간, 시장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글픈 현실인가. 테마가 있고, 일관성이 있고, 스토리가 갖추어진 커리어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10년, 20년,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뚜렷한 원-투 펀치가 없다면 이 또한 문제이다. 두 장, 세 장으로 작성된 이력서를 한 단어로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테마가 없다면 이는 포커스가 없는 커리어로 분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모든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완전히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가능하다면 괜찮다. 자신의 커리어의 포트폴리오, 히스토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커리어를 구축해야 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하지 않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커리어, 일시적으로 편할지 모르지만, 잠깐 연봉 잘 받을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스스로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커리어의 외도와 어긋남은 쉽게 회복되기가 어렵다. “노리는 구질의 공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배트를 휘두르지 마라. 기다려라.” 야구시합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가 특별히 노리는 구질의 공이 없이 아무 공에나 배트가 나간다면 우리는 그 선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중고등학교 야구선수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데, 하물며 그 선수가 프로선수라면 말이다. 슬럼프 속에서도 고생 속에서도 배울 것은 분명히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혹은 필요한 만큼은 가지고 있기에,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아직 부자는 아니다. 많은 돈을 만져보지 못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내 나이또래 혹은 나보다 적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수백억 원 이상의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된다. 그들이 큰돈을 만질 수 있었던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니 그들은 내놓을 만한 실력도 배경도 없었기에 꿈과 열정으로 무장한 채, 스스로의 가 치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참고 기다렸고, 믿고 기다렸다. 그리고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었다. 그들의 커리어 역정을 보면서 ‘오히려 너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큰 성공이 힘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고, 초반부터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었던 사람은 조금 힘들고 아쉬우면, 자신을 불러주는 부서로, 괜찮은 회사로 쉽게 옮기는 경향이 짙다. 한두 푼의 돈에 너무 안달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가치가 형성되고 브랜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수입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 순리이다. 록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고개 숙인 우리 중년들도 그리고 여전히 자꾸 새로운 버전의‘스펙’으로 포장되는 흔들리는 기업의 채용전략에 따라 덩달아 널뛰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도 록키는 충분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생 전반전을 넘어, 후반전 그리고 연장전까지 이미 다 뛸 수 있는 파워와 브랜드를 만들어 놓고, 이제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가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한준기 Cigna그룹/라이나 생명보험 인사담당 총괄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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