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에 아베노믹스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4월부터 동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30년 전에 6년간의 게이오대학 유학생활, 그리고 22년간 재직한 삼성경제연구소를 퇴임한 이후의 아시아대학에서의 교편생활이다. 동경에서살면서, 새삼스럽게 경제와 사회의 ‘성장 혹은 발전 단계’에 대해 느낀 바가 있어 쓰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6.25전쟁 이후의 국가경제 및 기업성장을 압축성장이란 말로 표현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동일한 성과를 보다 짧은 기간에 성취했다는 자랑스런 함의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압축 시켰을지언정, 성장단계를 건너뛰지는 못한 것 같다. 1980년대에는 한일 간 격차가 20년이라 했지만, 언제부턴가 10년으로 줄었고, 최근에는 머지않아 역전될 것이라고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격차는 특정 지표, 예컨대 1인당 GDP와 같은 잣대로 본 것이다. 이 격차는 아베노믹스 덕분에 보다 빨리 줄어들 것 같다. 우리가 땀 흘려 거둔 것이 아니라, 그저 엔화 약세-원화 강세라는 환율정책에 의해 떠안은 것이므로 뒷맛이 그리 개운치 않을 뿐이다. 아베(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 즉 아베노믹스의 요지는 기업경영에 부담이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걷어내고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MB노믹스와 흡사하다는 느낌이다. 통화량 양적 확대를 통한 엔화 약세, TPP(환태평양 전략적 경제파트너십 협정) 등 이국 간·다국 간 통상협정체결을 통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제거, 법인세 인하와 소비세 인상,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을 통한 산업용 전력비용 인하, 외국인 산업인력의 수입확대를 통한 노동코스트 인하 등이다 아베노믹스의 바람은 순풍인가 역풍인가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 지난 2년간 추진되어 왔지만, 좀처럼 가시적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올 2분기와 3분기의 GDP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의 잃어버린 시간과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아보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심이 무너져가는 형상이다. 하지만, 아베노믹스 바람은 진로를 바꾸거나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은 그럴 것이다. 계속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 중의원 해산과 12월 14일 선거라는 결단이다. 연합여권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다면, 아베 총리는 자신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고, 아베노믹스는 더욱 세찬 바람으로 변할 것이 예상된다. 일본의 격언 중에 “바람이 불면 물동이 장수가 돈을 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거센 바람이 불어서 티끌이 일어나고, 그것이 눈으로 들어가 시력을 잃게 되면, 앞을 못 보는 봉사는 호구지책으로 샤미센(三味線)이란 현악기를 타서 구걸행위를 하는데, 이 악기의 몸통 제작에 사용되는 것이 고양이 가죽이어서 고양이의 남획은 그 천적인 쥐를 늘리게 되고, 쥐는 나무로 만든 물동이를 갉아먹게 되어 새 물동이를 찾게 될 것이므로, 물동이 장수가 돈을 번다는 인과관계이다. 지난 2년 동안 그 바람은 불었고, 앞으로도 계속 불게 될지 모르는 아베노믹스는 세계 경제에도 순풍이 될 것이라고 밝혀왔지만, 지금까지는 일본 자신한테는 물론 주변 아시아 제국에 대해서도 역풍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거시적 경제지표도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미시적으로는 이 또한 이득을 보는 법인과 손해를 보는 법인으로 대별된다. 수출산업과 대기업은 엔저의 덕을 입어 경영사정이 호전됨으로써 물동이 장수의 재미를 맛보고 있다. 반면, 내수산업과 중소기업은 수입가격 상승과 소비세 인상의 더블 펀치로 경영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대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제고도, 종래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여 확보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 엔화 가치의 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의 회복에 불과하다. 과거에도 몇 번이나 엔고와 엔저는 반복되어 왔고, 또다시 엔고로 반전된다면, 일본의 국제경쟁력은 추락하고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은 또다시 힘든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중의원 해산을 발표한 이후, 엔화는 급락하여 1달러 120엔을 육박하는 가운데, 일부 경제평론가는 130엔까지 내다보고 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헐값에 일본 팔기’라는 자조적인 소리마저 들리고 있다. 언제까지 아베노믹스의 첫 단추인 양적 완화의 통화정책이 지속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처럼 아베노믹스가 출발선에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았는지 모르나, 그 성과가 지지부진한 것은 실행측면에서 환율 이외에는 그 어느 하나 시원하게 추진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그 때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는 한국도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이웃 나라 탓할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각 정책을 둘러싼 국회와 지자체, 그리고 사회적 이해 집단들의 찬반 갑론을박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런 까닭에 의사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과 코스트가 투입되는 게 사회관행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아베노믹스 그 자체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문제는 이 바람이 지나간 이후이다 필자의 관심사는 아베노믹스라는 경제태풍이 지나간 이후의 일본의 사회와 기업들의 모습이다. 본래의 시나리오대로 성공한다면,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제고될 것이다. 반면 수출 및 산업의 구조가 비슷한 한국의 기업경영과 국가경제에는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초이노믹스가 제때에 맞바람을 일으켜 그 파장을 차단하거나 아니면 역공을 어떻게 가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한편,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제사회에서 진짜 국제경쟁력이란 무엇일까? 그 국제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또 그 주체를 지배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궁금할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 폭과 깊이도 광대해지고, 경쟁의 영역 구분마저 사라져가는 글로벌 경쟁시대에서의 국제경쟁력은 어느 특정 단일요소보다는 수많은 복합요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파워 시프트에서도 지적하듯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요소보다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요소들에 의한 결정력이 더 클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하드도 중요하나 소프트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전자는 쉽게 모방이라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가능해도 모방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그때까지는 글로벌시장에서 독점적 이윤을 누릴 수 있다. 즉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므로,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고소득을 누릴 수 있고, 법인세와 소득세의 세수 증대는 나라 살림살이도 건실하게 할 것이다. 2050년이면 달갑지 않은 초고령화 세계 2위로 올라서게 될 우리나라로서는 이 길만이 유일한 돌파구라 하겠다. 이런 까닭에 비교우위론보다 절대우위론이 강조되고, 그 원천으로서 개인과 조직의 창의력, 내지는 창조력이 요구된다. 현 정부가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삼성그룹은 그 이전부터 창조경영에 주력하여 오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창조라는 것이 인류생활에 도움이 되면서도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재화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 주체는 분명 사람이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전문능력뿐만 아니라 금전적, 물질적 역량의 동원에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조직으로서 대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노벨상도 근년으로 올수록 1인보다는 2인, 3인의 공동연구 성과물이 많다. 이처럼, 창조경영이나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의 육성과 확보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앞서 기술한 것처럼 대다수 정책이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된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에 걸쳐 뿌리내린 바람직하지 못한 조직문화나 가치의식 등 무형자산의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이다. 일본 대학에서 조사연구 및 교육활동을 하면서 거듭 느끼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 일본 기업의 진정한 국제경쟁력 회복, 내지는 강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아베노믹스 바람이 지나간 이후에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고 존속한다면, 단기적 가격경쟁력은 누리게 될지라도 장기에 걸친 진짜 경쟁 력의 확보는 요원할 것이다. 첫째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조직구성원들의 뿌리 깊은 내부 지향적 가치의식이다. 예컨대 비즈니스의 글로벌화와 이를 위한 글로벌 인재의 육성 및 확보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그 필요성을 주창하지만, 좀처럼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경력사원보다 신입사원을 중심으로 채용 및 육성이 이루어지고, 승진승격에 있어서도 경력사원들에 대한 메리트가 미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섬나라 특유의 ‘안과 밖’의 구분 의식이 뿌리 깊어, 경력사원의 시장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연공서열적 조직문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일본인 스스로도 자조적 표현으로서 이를 갈라파고스 현상이라 지칭하고 있다. 둘째는 부문 간의 높은 벽과 정보교류의 단절이다. 창조경영을 위해서는 조직 간,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여야 하며, 이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와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컨대 물리학이나 화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는 다수 배출되었지만, 이들 원천기술을 이용한 신제품의 개발이나 상품화에 있어서는 경쟁 국가나 외국기업들에 뒤처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GE의 잭 웰치 전 CEO처럼 벽 없는 조직을 만들지 못한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거나,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표방하면서도 성과평가 및 보상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열린 조직, 열린 마음의 부족함이다.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일본 사회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자만심이 충만한 것 같다.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선진국 또는 성숙사회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일본한테는 분명 경쟁력 향상의 걸림돌로 인식된다. 미래는 아시아의 경제시대가 될 것이라고 누구나 공감하지만, 구미제국을 대하는 것만큼 아시아에 대한 겸손함이나 상생 마인드는 엿보이지 않는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중일 3개국 간은 역사와 영토문제까지 얽히어 더욱 불편한 관계로 심화되었고, 3개국이 함께 추진하였던 한중일 FTA는 결국 한중 2개국 간 FTA로 일단락된 상황이다. 한중일 3개국의 지도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시아의 시대에 대비해서라도 상호 간 미래지향적인 마인드와 겸손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끝으로 글로벌 경영시대에는 특정 국가모델보다는 글로벌 기업모델을 벤치마킹하여, 이들의 특·장점을 융합하거나 양립시켜 갈 것을 권장하고 싶다. 미국적 경영, 일본적 경영, 한국적 경영이 아니라 IBM식 경영, 도요타식 경영, 삼성식 경영을 벤치마킹하고, 자사의 것들과 양립시키는 것이다. 자사만의 경영방식이나 인사 시스템을 새로이 만드는 창조(創造)적 어프로치도 있지만, 기존의 최고를 모아 조합하는 방식의 창조(創組)적 어프로치도 유효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장상수 일본 아세아대학 경영학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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