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창조경영

문화부 기자 시절 영화를 담당한 적이 있다. 1994년께인데 당시 우리 영화 한 해 제작 편수가 70편 남짓이었다. 영화는 사양산업으로 인식됐다. 1993년 ‘서편제’가 290만 흥행기록을 세워 희망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영화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관객 수는 2억 명을 돌파했고, 1인당 영화관람 횟수도 4.25회로 아이슬란드(4.9회)에 이어 세계 2위다. 전국 스크린 수는 2184개이고 개봉된 한국 영화도 183편이나 된다. 이제까지 5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 수만 45편이다. 영화 산업 매출은 부가시장과 수출을 합해 1조 9000억 원에 이른다. 태권도 수련자 206개국 1억 명 영화는 나라가 키운 것이 아니라 민간이 알아서 큰 것이지만 정부가 잘한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규제완화다. 1984년 제5차 영화법 개정 때 영화제작업을 자유화한 것이다. 이전까지 20개로 묶여 있던 영화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젊은 세대들이 뛰어들면서 대기업 자본과 연계하며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영화야말로 시장경제의 승리다. 요즘 연말 모임에 가면 한국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 건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여러 가지 진작책을 내놓아도 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는 데다 주력 산업들도 실적 부진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잘될 게 하나도 없을 듯한 분위기가 마치 20년 전 영화판 같다. 지금이야 말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며 세계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메가 이벤트 등으로 불을 지필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을 가진 산업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태권도는 거기에 꼭 맞는 후보다. 갑자기 웬 태권도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몇 가지 숫자를 보자. 1973년 7개국으로 시작한 세계태권도연맹 회원국이 이제는206개국이다. 수련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국내도 1만 2000개 도장이 있고, 수련생이 80만 명이다. 사실 태권도야말로 전 세계 구석구석에 코리아를 알린 원조 한류다. 산업화로 종주국 이점 살려야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태권도를 산업으로 보는 시각이다. 한국 스포츠산업협회에 따르면 태권도 시장 규모는 문화와 콘텐츠 등 연관사업을 합해 3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도복, 경기용구, 수련용구, 태권도 대회, 공연, 이벤트, 관광, 캐릭터 등 개발할 것이 무궁무진하지만 종주국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대련용 전자호구는 스페인의 한 업체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죽하면 “태권도를 세계에 시집보내고 말았다”며 태권도인끼리 자조할 정도일까. 중국 쿵후의 본산인 소림사는 1987년 해외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스용신이 주지를 맡아 미디어, 의료, 유통, 게임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외국인 수련코스 수강료가 한 해 1000만 원이 넘는다. 일본의 경우는 제록스가 가라테를 후원하면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넣으려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산업화하겠다는 비전만 보여주면 된다. 나머지는 아이디어 넘치는 사람들의 몫이다. 태권도 문양을 고급화해 전 세계에 보급하는 디자이너, 태권도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혁신적인 도복을 만들어 태권도계의 나이키를 꿈꾸는 의류업체들이 자연히 나오게 돼 있다. ‘300조 한류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라.

권영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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