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가치경영

많은 사람들이 1억 원짜리 저예산 독립영화에 열광하고 있다. 76년 연인으로 살았던 강계열 할머니와 고인이 된 조병만 할아버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부부라는 게 연애할 때나 사랑이지 애 낳고 키우고 가정을 지키며 살다 보면 남이 아닌 남이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였다. 76년 긴 세월 언제나 연인처럼 서로 곱게 말하고 맑게 웃고 장난치고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데도 눈물이 나는 건,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미안함과 반성 때문일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아내를 보고 씩 웃어주니 이내 아내가 덩달아 웃는다. 순간 ‘이게 뭐가 어려워서’라는 생각이 들며 더 미안해진다. 아마도 많은 부부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자고 결심할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어떻게 일하는가? 얼마 전 만난 출판 편집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이는 내가 출판일을 하고 있는 걸 안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게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출판인으로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일은 방편이며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게 사명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일하는 목적으로 부족하다. 조금 더 나아진다면 ‘최고 수준의 일을 해내는 전문가인 멋진 부모가 되자’는 결심은 어떨까! 경기가 어렵다 보니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있다. 구조조정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결과만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일도 잘하고 성과도 잘 내는 팀장이었는데 구조 조정 과정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일괄 정리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옷 벗고 영업대리점 발령이 낫다. 위기경영을 한다는 이름하에 고과가 나쁜 순서로 10~20%를 일괄 정리한 경우도 있다.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이미 예고한 사항이라 어찌해볼 도리도 없다. 업무능력은 떨어지지만 창업멤버로 젊음을 바쳐 일한 덕분에 임원까지 달고 있었는데, 어려운 경영상황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옷을 벗은 사람도 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과가 있든 없든 객관적 기준이라는 이름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옷을 벗는 직원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한다. 조직에 기대지 말고 무리하지도 말고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문제가 생기면 운명으로 받아드리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적인 자세는 남들 눈에도 다 보이기 마련이다. 지혜롭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처신이다. 조금 더 나아진다면 ‘이왕에 하는 일 조직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마음가짐은 어떨까! 우리는 직장에서 상사, 부하, 동료라는 사람들과 일한다. 조직이 추구하는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향해 일을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일을 위해 서로를 대하는데 있어 이성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지시하고 요구하고 질책하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함에 있어 컴퓨터를 대하듯이 한다. 동료들은 정 사장, 이 상무, 안 팀장, 박 과장, 최 대리일 뿐이다. 물론 요즘 시대에 사람을 기계처럼 대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컴퓨터나 기계를 대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우리가 직장에서 뒷담화를 하고 험담을 하고 꾸짖는 사람은 그들의 가족에게 어떤 사람일까? 직장에서는 상사, 동료, 부하라는 존재이지만 가정에서는 자랑스러운 아빠, 존경하는 엄마, 믿음직한 형, 고마운 누나, 착한 동생, 사랑스런 자식이다. 우리 동료들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지만 조직에서는 그런 존재로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에 직장이라는 공간도 동료라는 사람도 소중하지 않게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드린다. 조금 더 나아진다면 ‘우리 동료들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듯 직장에서도 소중하게 대하자’는 결심은 어떨까! 삼성, 현대처럼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기업도 있지만 우리나라 150만 개 기업을 놓고 보면 이런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아는 기업은 극소수다. 많은 중소·중견기업 직원들은 우리 회사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직원들이 모여 비전을 만들 때 ‘누구나 우리 회사 이름을 알게 하자’는 비전을 세우기도 한다. 비전과 같은 큰 목표를 세우고 직원들이 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름의 노력이 크게 의미나 가치가 없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아는 회사, 어떤 회사가 있을까? 우리나라 10대 기업에 있는 회사라면 누구나 잘 아는 기업이다. 그런데 그 기업 중에는 사람에 따라서 그 회사 이름이 딱히 자랑스러울 것이 없는 회사도 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이라면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다. 그런데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인데 그 기업이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 무엇을 특별히 잘 하는지, 무엇이 좋은지 알 수 없는 회사도 있다. 어떤가?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라고 해서 모두 다 좋은 회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어렵게 직원들이 함께 큰 목표를 세우고 힘을 모으기로 했는데 그것을 이룬다고 해서 별 의미나 가치가 없다면 아쉽지 않겠는가. 조금 더 나아진다면 ‘가족친화경영의 일하기 좋은 기업 유한킴벌리처럼,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안랩처럼, 선천성 질환을 앓는 아기들을 위한 분유를 만드는 매일유업처럼, 사람들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누구나 아는 회사’가 되자는 큰 목표는 어떨까! 모든 개인과 조직은 자기 고유의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인 ‘가치(value)’를 가지고 있다. 가치는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치관(values)’라고 말한다. 즉, 모든 개인과 조직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시대에 맞는 가치관, 환경에 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돈벌이 이상의 가치가 있다. 기업도 돈을 벌고 이윤을 얻는 것 이상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이 어렵다 보니 일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기업의 존재이유를 이윤추구로 한정 짓는 낡은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 결과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세월호 사건과 같은 비극이 터졌다. 잘못된 가치관은 개인과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고 타인과 사회에도 큰 피해를 미친다.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과 조직의 지향점이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 생긴 낡고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에 의해 개인과 조직을 불행과 실패에 빠뜨린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고 크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해 휩쓸리거나 뒤쳐지지 않는 것을 필자는 ‘조금 더 나아진다면’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시대와 환경을 이겨내고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좋은 가치관이다. 새해, 조금 더 나아지려면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좋은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시작이다. 정진호 가치관 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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