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2013년의 ‘라면 상무’에 이어 최근 불거진 ‘땅콩 리턴’까지, 또다시 갑의 횡포가 도마 위 에 올랐다. 잊을만하면 다시 터지는 이런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을 가진 개인의 자질문제’일까? 만약에 원인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어 그에상응하는 벌을 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땅콩 리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이와 유사한 ‘파와하라’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파와하라 의미는 ‘파워 해러스먼트(power+harassment)’를 줄여 표현한 신조어로 일본에서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상사 등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보복을 시도하는 사례가 생기는 등 파와하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어 학교에서의 집단 괴롭힘 못지 않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본 정부가 ‘파와하라’를 노동자 피해보상보험 대상으로 인정하는 등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좀처럼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파와하라 문제가 왜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됐을까? 그 문제의 배경을 이해하면 우리가 ‘왜 지금 파와하라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경제는 1980년대 후반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자리가 넘쳐나 좀 괜찮다 싶은 인재들은 종신고용은 기본이고, 주택지원 규모나 위로여행의 횟수 등을 따져가며 회사를 골라가곤 했다. 그런 인재를 붙잡기 위해서 회사는 수시로 상여금을 지급했고, 그 돈을 받아 집을 사두면 집값도 팍팍 올랐다. 한마디로 ‘직장인 전성시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급격한 반전이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생산 가능인구가 줄어들었고, 한국과 대만 같은 신흥국에 바짝 쫓기면서 일본 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바로 그 시점에 잔뜩 부풀려졌던 부동산 거품까지 펑 터져버린 거다. 필자는 일본의 그 ‘1991년’이 우리의 ‘지금’과 너무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2016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막강한 중국에 바짝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1991년 이후 일본의 내수소비는 급격하게 위축되었고, 기업들도 투자를 중단했다. 가계나 기업 모두 돈이 다 떨어져버린 셈이다.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채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정말 부득이한 경우에만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고용 시장은 급격히 사용자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번엔 반대로 ‘직장인 수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이 되어 상사도 부하도 모두 성과에 매달리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게 되면서 자연히 직장 내 권한을 이용한 괴롭힘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8월에 岡田康子(오카다 야스코)가『용서하지 말자, 파워-해라스먼트』라는 책을 내면서 ‘파와하라’라는 단어가 일본사회에 이슈가 된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일본의 이런 모습이 지금의 우리와 참 많이 닮아 있다. 앞으로 한국경제도 과거와 같은 화려한 성장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기업에서도 ‘파와하라’와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해둘 것이 있다.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상의 관계이지 결코 인간적인 상하관계는 아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그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직장 상사를 형이나 아버지처럼, 부하직원을 동생이나 아들과 같이 생각한다. 물론 이런 가족주의적인 기업문화에 좋은 면이 많다. 그리고 그런 문화가 그 동안 우리기업의 강력한 성장 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에 늘 100% 선하거나 아니면 100% 악한 것은 없다. 가족주의적인 기업문화에도 당연히 어두운 측면이 있다. 그 어두운 측면이 바로 ‘파와하라’ 모습인 것이다. 아버지나 형같이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늘 명령하는 입장에 있는 상사가 마치 ‘내가 변하지 않는 권력을 쥔 것처럼 생각’하면 ‘파와하라’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거기다가 성과가 잘 안 나오는 상황적 압박까지 더해지면 그 ‘악마’는 어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묘한 우월의식은 직장에서 그치지 않고 외부에서도 그대로 발현이 된다. 라면 상무, 땅콩 부사장과 같이. 우월적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여러분! 부하 직원들은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물(私物)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소중하게 육성 해달라고 우리의 공동체가 맡긴 인재들입니다.” 파와하라가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처럼 연쇄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파와하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나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면 자신 또한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찾아 파와하라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파와하라’는 폭포수처럼 떨어져 조직 전체에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파와하라’라는 게 기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바탕 격한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듯이, 사람에 따라서는 부하 직원을 엄청나게 혼내고 나면 뭔가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고함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격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뭔가 중요한 책임을 다했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그게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조직의 문화를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한국 기업들은 어떨까? 우리도 아마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얼마 전에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그룹 전체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가 무려 2만 명이 넘는 규모가 큰 조사였는데, 그 조사 항목 중에 ‘상사로부터 욕설이나 폭언을 들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같은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그룹인데도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의 비율이 계열사에 따라 크게는 6배까지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 기업의 문화가 문제일 것이다. 조직 내에서 허용되고 있는 ‘용인수준’ 말이다. 주변의 팀장들이 다들 부하 직원들에게 욕하고 폭언을 하는 분위기이고 그것이 조직 내에서 그런대로 용인되고 있으면 그 분위기가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조직 전체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문제회사로 추락하는 지름길이다.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우리가 일본과 원천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인터넷과 SNS가 엄청나게 발달돼 있다는 것과 최근에 입사하는 새내기들은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 즉 꾹 참고 인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힘의 논리로 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당장 이번 ‘땅콩 리턴’사건으로 잘 보았을 거다.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어느 누구도 도저히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게 현대사회이다. 결국 원천적으로 착해지는 수밖에 없다. 아니 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수밖에 없다. 자, 이제 결론을 내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그리고 당신의 회사는 어떤가?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해 당신들은 다른 무게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들은 지금 당신의 회사에서 HR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인사를 담당한다고 해서 부모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인간의 품성을 기업의 일개 인사담당자가 어떻게 고치냐고?” 만약 당신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글을 너무 건성건성 읽은 거다. 그것은 고약한 어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내 문화와 용인수준의 문제이다. 그리고 하나 더 당신들은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사’는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론’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책임지고 있는 것은 ‘문화와 가치의 혁신, 그리고 임직원의 역량 수준’이다. 쉽게 얘기해서 당신 회사의 임직원 중에 회사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 나가서 ‘라면이나 땅콩’과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다면 당신에게도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게 참 어려운 것이다.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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