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자존심이 억수로 셌다. 그냥 센 정도가 아니라 문제가 될 정도로 과했다. 우리 선조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 죽었다. 오죽하면 “선비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겠는가. 한 마디로 쪽 팔리고는 못 사는 것이 우리의 문화였고 가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자존심이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꽃봉오리도 채 피우지 못한 어린 생명들을 뒤로 하고 팬티 바람으로 탈출하는 늙은 선장의 비루한 모습이 담긴 사진 말이다. 과거 우리는 이런 창피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을 민족이었다. 그런 게 우리가 지켜온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이렇게도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잘못’ 도입한 성과주의에서 찾고 있다. 지금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을 ‘돈’과 결부시킨다. 즉, 돈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창피함이나 자존심은 ‘돈’과 관계가 없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만이다. ‘한국형 연봉제’로 설명되는 성과주의는 극도의 경영난에 처했던 두산이 1995년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당시 두산은 낙동강에 페놀을 방류한 사건으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두산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하여 연봉제 도입을 위시해서 본사 건물과 영등포 공장을 매각하는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사실 망할 뻔한 위기가 아니었다면 보수적이었던 당시의 두산과 노동조합이 연봉제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한 것이 두산에게 엄청난 행운이 되었다. 그렇게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한 덕에 3년 후 외환위기의 쓰나미를 무사히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두산보다 훨씬 탄탄했던 그룹들이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와중에도 두산은 굳건했다. 두산이 선보인 ‘연봉제’라는 성과주의는 이후 빠른 속도로 다른 기업들에 확산되었다. 그리고 연봉제는 한국 기업의 새로운 보상체계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한국형 성과주의는 정작 바꿔야 할 것은 못 바꾸고 꼭 지켜야 할 것만 바꾸어버렸다. 그 한국형 성과주의가 ‘미움’의 감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왜 ‘미움’일까? 그 ‘미움’의 뿌리를 파다 보면 외환위기의 10년 전인 1987년에 일어났던 노사대분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 노동조합은 거의 질식 상태에 놓여 있었다. 노동조합 활동은 패가망신으로 가는 ‘빨갱이’의 길이었다. 경제와 기업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지만 노동자의 처우나 보상 수준은 달라지는 게 없으니 불만은 계속 쌓여갔다. 그렇게 누적된 불만은 6.29선언으로 철권통치에 조그만 구멍이 생기면서 봇물 터지 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진 경영진을 압박하여 수년간 놀라운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시켰다. 당시 임금 인상은 생산성보다도 노동조합의 힘과 상관관계가 있다. 그 당시 노조는 회사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경영진을 끌고 나와 대중 앞에 무릎 꿇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 시절 횡행한 것은 ‘미움’이었다. 그동안 독재정권과 손을 잡아 부를 누리고 살아온 자본가들에 대한 ‘미움’이었고 ‘분노’였다. 그러다 보니 노사 관계와 보상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막강한 노동조합의 위세에 휘둘려 한국 기업들은 시의 적절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혁신의 필요성이 다시 누적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경제 위기를 맞이하였고,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IMF라는 생소한 해외기관의 주장에 모든 한국인이 굴복 했다. 어쩌랴, 시퍼런 칼날은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그리고 보상 시스템의 개선은 ‘한국형 연봉제’라는 방향으로 물길이 터진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변경에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당시 모든 CEO는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저 녀석을 내보내거나 시원하게 혼좀 내줄 방법이 없을까?’ 성과를 더 많이 낸 사람에게 더 많이 주자는 긍정적 관점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이고 이것이 근대 기업 성과주의의 출발이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성과주의가 태평양을 건너면서 이상하게 바뀌었다. 한국형 연봉제는 위기를 기회 삼아 그 동안 노동조합이라는 안전한 보호막에 숨어있던 무임 승차자들에 덜 주겠다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근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극한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한 미움의 ‘장군멍군’이거나 요즘 애들 말처럼 ‘도찐개찐’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한국형’ 성과주의가 도입되었고, 또 빠르게 확산되었다. 거기다가 미국판 신자유주의 철학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블록버스트 보상제도의 파괴력은 커져만 갔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돈으로 환산했다. 물론 역량 있고 성과 높은 직원들을 돈으로 사올 수도 있다. 딱 거기까지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몰입과 충성심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러한 성과주의는 나의 소중한 ‘일’을 ‘거래’로 만들어버렸다. 오랜 세월 ‘일’은 우리에게 삶의 소명이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였고, 내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이자 정체성 제공의 가장 큰 원천이었다. 내 일의 완성도는 곧 내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공동체였던 회사가 어느덧 ‘지겨운 노무’를 제공하고 ‘쥐꼬리 같은 연봉’을 받는 ‘중요 거래처’로 변해 버렸다. 그러니 경쟁사보다 더 많은 급여를 주는지가 중요하고,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은 인당생산성을 창출하는지가 중요해졌다. 그야말로 거래가 됐다. 팬티 바람으로 도망치던 그 선장은 그저 선박회사와 계약을 한 것이다. 거기에 자존심과 소명이 끼어들 자리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내치는 것이 쉬워지면서 책임감과 혁신의식은 실종되어 갔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회사를 위해서…’라는 것이 없어지고 ‘내가 왜?’라는 질문이 들어섰다. 그리고 ‘발설자 책임의 원칙’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뭔가 새로운 의견을 내면 말한 자에게 그 일의 책임이 돌아온다는 원칙이다. 그리고 그 일이 만약에라도 잘못되면 그 말을 한 자가 책임진다는 원칙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바꿔야 할 것을 못 바꾼 것이 있으니, 바로 임금의 연공서열체계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신입사원의 연봉과 50대의 연봉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2.8배에 달한다. 연령에 따른 급여 상승률이 세계 최고인 것은 노사대분규 이후로 바뀌지 않고 있다. 심지어 생활형 보상체계를 지향하는 일본보다도 훨씬 가파르다.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 한다는 독일도 그 차이는 1.5배에 불과하다. 독일 기업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고용해도 인건비 부담이 크게 없다. 독일의 직장인들이 급여를 많이 받으려면 학습하고 공부해서 남다른 능력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독일 직장인들은 정말 열심히 자기개발을 하고 공부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냥 회사에서 안 잘리고 버티면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러니 잘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은 하지 않고 윗사람 눈치만 보는 생존 기술만 익힌다. 이렇게 50세 언저리가 되면 남과는 아무런 차별화 포인트가 없는 인물이 된다. 그러다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 어느 날, 회사는 그를 내보내면 젊고 능력 있는 직원셋을 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구조조정이다. 20년이 넘도록 조직에서 공부한 것도 준비된 것도 없으니 남들 다 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를 한다. 개점을 하고 나니 죽을 것같은 두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극단에 몰리니 다들 정말 박 터지게 경쟁한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대한민국의 치킨이 탄생하게 된다. 밖으로 나간 선배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나이 많은 직원들은 회사에서 ‘드러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더 숙이고 숨는다. 회사에서 나가주었으면 하는 눈치가 보이면 무조건 버틴다. 버티려는 힘과 밀어내려는 힘의 충돌이 생기고 감정이 상하고… 그렇게 ‘미움’이 생기고 꽃같이 아름다웠던 청춘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평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그 회사에 ‘미움’만을 잔뜩 남기고 떠나게 된다. 모든 것이 ‘미움’에 기반을 두고 움직여 왔다. 그리고 그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는다. 세상은 정규직을 얘기하는데 뽑고 나면 시간과 더불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부담을 누가 감당하랴. 게다가 결국은 ‘미움’으로 헤어지는데… 회사는 계약직을 쓰고 그 계약직은 그 회사에 자존심을 걸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러니 한국기업에서는 누가 변화와 혁신을 말하겠는가? 공연히 나섰다가 ‘발설자 책임’의 원칙을 지고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 할 수 있는데. 변화와 혁신은 자존심과 동전의 양면이다. 혁신의 원천은 ‘저건 도저히 못 해’와 같은 맹자의 불인지심(不忍之心)이나 ‘쪽 팔림’에서 출발한다는 말이다. 맹자가 달리 역성혁명의 주창자로 통하는 것이 아니다. “왕이고 뭐고 못 참겠으면 엎어 버려라”는 것이 맹자의 기본 주장이다. 그렇게 멍청한 구형 폰에 만족하는 세상을 도저히 못 참는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별난 자존심에 걸맞게 쪽 팔릴 일 없는 완벽한 디자인을 완성한 것이다. 그런데 쪽 팔리는 것은 절대로 못 참는 억수로 자존심이 센 우리의 그 ‘자존심’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국제적인 망신을 불러온 이 한 장의 사진, 그 장면이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벌써 잊어가고 있다. 아직은 우리가 분노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진짜 자존심이 남아있는, ‘차마 그렇게는 못하는’ 그런 자존심이, 쪽 팔림이란 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만이 돌을 들어 세월호 선장에게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거의 잊어가고 있는 슬픔을 왜 다시 들춰내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부끄러운 위안부 문제를 한사코 덮고 묻어 버리려는 이웃나라를 욕할 자격이 없다. 그 슬픔이, 그 아픔이 우리의 변화와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단지 슬픔을 잊기 위해 그냥 덮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다. 이렇게 덮는 것은 죄 없이 우리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그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매년 죽을 것 같은 위기와 고통이 왔을 때에야 겨우 바꾸었다. 이번에도 진짜 죽을 거 같은 고통이 와야 또 바꿀 것인가? 자존심도 없이 쪽 팔리게.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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