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1995년에『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내놨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 요즘 잘 나간다고 너무 멀 리 가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며칠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까맣게 잊어버렸던 ‘그 책’과 관련된 놀라운 글을 하나 발견했다. 글의 제목은 ‘20년 전, 빌 게이츠가 엄청 욕먹었던 발언’이었다. ‘욕먹었던 발언’이라고 하는 것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때 그가 한 예측은 이랬다. 정보가전제품: 정보고속도로를 통해 고화질 영화를 아무런 기기 없이 시청 가능할 것이다. TV: TV는 현재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방송된 프로는 언제든지 보고 싶은 시간에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생방송이라 해도 언제든지 앞으로 돌아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화기: 미래의 전화는 대부분 납작한 화면에 소형카메라가 부착될 것이다. PC지갑: 미래에는 사진 한 장 크기의 컬러 스크린이 달려 있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지갑을 갖고 다니게 될 것이다. PC지갑은 메시지와 스케줄을 알려주고 길안내를 하며 전자우편이나 팩스를 보내고 날씨와 주식에 관한 정보를 주고 복잡한 게임까지 즐기게 해줄 것이다. 회의석상에서 당신은 여기에 메모를 할 수 있고 약속을 확인할 수도 있으며 심심하면 이것저것 정보를 훑어볼 수도 있고 수천 장의 아이 사진 중에서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띄어볼 수도 있다. 미래의 학교: 현재의 교실체제는 유지하겠지만 수업은 주로 멀티미디어 방식으로 진행되고, 학생들은 주로 개인용 컴퓨터로 정보검색을 해서 숙제를 제출할 것이다. 쇼핑: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정보고속도로의 마켓을 통해 모든 물건을 구경하고 비교하여 쉽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등등. 놀라운가? 나도 자못 놀라웠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고 다들 피식거렸었다. 1999년에 빌 게이츠는 또 한 번『생각의 속도』라는 책을 내놨다. IMF구제금융으로 한창 온 국민이 허덕이던 시절이었다. 그 책을 보며 다시 피식거렸다. ‘설마…’ 물론 사방에서 벤처바람이 불어서 IT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세계만방에 펄럭이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회사간판에 ‘닷컴’이라는 이름만 달아도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던 IT버블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세상이 생각의 속도로 바뀔 거”라는 그의 이야기에 “그건 네 생각이고…”로 응수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건 네 생각이고…”로 응수했던 내 모습,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내 모습이 그저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그의 예측은 한 치도 틀림이 없었다. 실제로 그의 예측에 귀를 기울이고 움직인 사람들은 돈을 벌었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그 외의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사업가들 모 두가 그가 예측한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예측을 내놨던 빌 게이츠는 여전히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래는 다가오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 가는 것일까? 솔직히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이고 어쩌면 둘 다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바라본 백미러에 이런 글귀가 있다.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귀가 내 눈에는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로 보이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네가 말한 대로 될 수도 있는데,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고 나는 지금 발등 위에 떨어진 이 불부터 꺼야 되겠다고…’ 발등의 불만 허둥지둥 끄면서, 그렇게 인생의 꽃다운 20년을 낭비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옥스퍼드 대학의 칼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미국의 일자리 중 47%가량이 20년 내에 사라질 거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들은 인공 지능(AI)과 로봇이 앞으로 20년 내에 닥칠 직업의 변화에 주요한 원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마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20년 전 내가 허리춤에 삐삐를 찬 상태로 빌 게이츠의 책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설마 독자님들께서 ‘삐삐’를 모르시는건? 어찌되었던 그때는 삐삐를 만들던 회사가 돈을 엄청 나게 벌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빌 게이츠의 책을 보면서 “무슨 근거로?”라고 생각한 삐삐회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안 보인다. 20년 후에 일자리의 47%가 사라진다? 뭐 그때라면 필자가 이미 은퇴를 한 시점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그 일자리들이 어느 날 한 번에 쿵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휘발되어서 20년 후에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난한 축소의 과정에서 그 직업의 언저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경쟁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20년이 아주 먼 미래인 것 같은가? 빌 게이츠가 우리에게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화두를 제시한 것이 20년 전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빌 게이츠가 말한 ‘오랫동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바로 그 ‘미래’이다. 미래는 생각보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 확실히 일자리는 휘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휘발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 죽을 것 같이 걱정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직업들이 사라진 것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던 대장장이와 술을 빚어서 팔던 주막들은 지금은 온데간데없다. 등에 소금가마를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던 소금장수도, 진귀한 물건을 지고 다니면서 팔던 방물 장수도 다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져서 슬픈가?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서 조악한데 턱없이 비싼 호미나 괭이를 계속 써야할까? 농업의 방식조차 달라져버렸는데? 위생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막걸리를 마시면서 살아야 할까? 안타깝지만 세상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면 사라질 것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휘발을 환영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게 내 일자리만 아니라면 그런 휘발은 즐거울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세상은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좋아지는 게 아닌 것이 문제이겠지만… 가만 보면 미래를 생각하며 미리미리 대비했던 사람들은 생각의 속도로 좋아졌고 과거의 방식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좋아졌던 것 같다. 하여튼 모두가 좋아진다. 그런데 그 좋아짐의 속도가 문제다. 강의를 하다가 청중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봤다. “당신의 급여를 내년에 10% 인상해드리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청중들, 얼굴이 매우 밝아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10% 인상이 어디란 말인가! “그런데 다른 동료들의 급여는 모두 20% 인상하면서 말입니다…” 청중들, 얼굴이 도로 굳어졌다. 아니, 10% 인상해드린다니까. 분명히 세상은 좋아진다. 그런데 그게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 결국은 서핑(파도 타기)인 것 같다. 이번 파도를 타다가 다음에 오는 파도를 타는 것. 그렇게 빠르게 다음 파도와 그 다음 파도를 넘나들며 타는 능력, 바로 그게 필요하다. 평상시에 새로운 것을 열심히 학습하고, 너무 늦기 전에 새로운 파도로 과감하게 넘어가는 용기. 그게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시 ‘설마…’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다시 ‘아직은…’이라는 생각으로 발 등의 불만 끄면서 세월을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빌 게이츠가 말한 생각의 속도를 생각하지 못해서 부자는 못되었더라도 직업의 미래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그래야 쪽박은 면치 않겠는가!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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