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이홍, 임성준, 이경묵, 신동엽, 배종석, 허문구, 이무원. 이쯤 되면 한국 HR의 ‘소녀시대’라 할 수 있겠다. 아니 각 문파를 대표하는 무림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그럴듯한 무협영화 한 편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런 고수들이 하나의 주제로 책을 낸다? 아마도 공통으로 가진 고민의 무게가 상당했었나보다. 한국인사조직학회(회장 강혜련 교수)가 기획을 했다. 그렇게『K-매니지먼트, 기로에 선 한국형 기업경영』이라는 책이 나왔다. 한 마디로 엄청나게 ‘나쁜 책-악서(惡書)’이다. 잘 나가다가 뭔 소리냐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의 목차를 대충 훑어보다가 책상에 바투 다가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241페이지까지 숨도 안쉬고 읽어나갔다. 새벽 무렵까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10권을 주문해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동네방네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선전질’을 하고 있다. 독자들의 잠을 빼앗는 것이 바로 ‘나쁜 책-악서(惡書)’라는 게 내 지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확실히 나쁜 책임에 틀림없다. 내가 잠을 못 이룬 이유? 그들이 말하는 ‘고민거리’가 현재 우리가 무겁게 안고 있는 진짜 우리의 고민거리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영학을 대표하는 ‘교수-돌(doll)’이 ‘그룹’을 만들어 ‘K-매니지먼트’라는 가장 핫한 이슈로 글을 쓴다! 발상부터 참신하다.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연구 영역과 논리적인 주장이 잘 버무러져 ‘하이브리드-비빔밥’이 맛깔나게 차려졌고 문제 제기도 밍밍하지 않고 ‘고추장’처럼 매콤하다. 그야말로 방법론도 내용도 ‘한국형’이다. 바뀌어 버린 패러다임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방법론–자욱해진 안개 속에서 함선의 나침반이 고장나버린 상황. 이게 우리의 고민거리이고 이 책의 주제이다. 오늘은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장을 뛰는 인사쟁이가 깨달은 생각을 나눌까 한다. HR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세 번의 큰 경제적 충격을 겪으면서 한 단계씩 성숙해왔다. 문제는 교수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세 번째 충격 이후에는 새로운 판을 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우리가 겪은 충격은 1987년의 노사대분규였다. 무시무시한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겪으면서 노동운동은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임금 인상은 정부가 쥐고 흔들었다. 행여 특정 회사가 표나게 월급을 많이 올려준다는 느낌이 들면 당국에서 “잠깐 봅시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정부가 인건비 인상을 눌러 수출경쟁력과 물가를 안정시켰다. 이렇게 꾹꾹 억눌려 있던 감정은 6·29 선언 이후 결국 터져버렸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같은 그룹 내에서는 월급이 동일했다. 실제로 삼성계열사 모두 같은 급여테이블을 썼다. 계열사의 성과에 따라 상여금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그룹본부 인사부에서 급여테이블을 정했다. 그야말로 인사(Personnel)관리였다. 모든 사람이 똑같다는 논리, 그야말로 ‘머리수 세기(Head Counting)’이었다. 노사대분규 당시에는 그야말로 ‘광풍’이 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억눌려 있던 설움과 억울함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잘 먹고 잘 산 ‘사측’의 ‘결정권자’들은 ‘독재정부’와 같은 색깔이었다. 그 동안 독재정권의 비호 속에서 잘 먹고 잘 살았지? 광장으로 끌어내고 무릎 꿇리는 장면이 여러 곳에서 연출되었다. ‘분노’였다. 아니 정확히 그건 표적이 분명하지 않은 ‘미움’이었다. 그리고 급여 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진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에 기업은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1987년에 45.0% 수준이었던 노동분배율은 IMF직전인 1996년에 53.6%까지 급증했다. 경영층은 분했지만 막강한 조합의 힘에 눌려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에서 성공적인 중소기업이 탄생할 여지? 당연히 없었다. 많은 급여를 줄 수 있는 대기업만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압력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그야말로 도둑처럼 외환위기가 찾아온다. IMF는 그 동안 우리가 해온 방식을 모두 거부했다. 우리의 모든 방식은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부패한 방법론과 구조로 매도당했다. 그리고 30대 그룹의 절반 이상이 무너졌다. 덩치가 작은 기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당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 들면서 자영업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 바람에 어떤 장사도 잘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미워했던 그 경영진들이 내 삶의 든든한 방어막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식들은 어떻게 해서든 ‘좋은 대학’을 보내고 ‘튼튼한 대기업’의 ‘정규직’ 사원이 되기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방식이 최선인 양 간주되었다. 그저 ‘미국’만의 방식일 뿐인데 ‘글로벌’의 기준인 양, 그것이 정답인 양 모두에게 강요되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부수고 바꾸고 대체했다. ‘생산성에 따라, 성과에 따라 차등해서 보상한다’는 공정성의 원칙이 지상 명제로 떠올랐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그 공정성의 얇은 껍질을 까보면 ‘미움’이라는 감정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도 잘 못하고 태도도 엉망인 저 친구 좀 어떻게 해봐! 내보낼 수 없으면 월급이라도 좀 깔 수 없어?!’ 이게 그 ‘미움’이라는 감정의 정체였다. 표적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 빛깔은 선연한 ‘미움’이었다. 켜켜이 쌓여있던 설움의 발산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성과주의’와 한국형 연봉제를 필두로 한 ‘차등보상제도’가 무대 위에 올라 주연이 되었다. 노사 간에 1승 1패! 사람은 자원(Resource)으로 통했다. 성과에 따른 차등보상을 내걸면 평균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 지배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생각은 포장지였고 속살은 ‘쥐어짜면 더 나오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관점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10년이 흘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번 바람은 그렇게 글로벌의 기준이라고 우쭐대던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충격도 글로벌하게 퍼져나갔다. 또 한 번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그런 사단이 나기 바로 직전에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놓은 ‘스마트폰’을 통해 오랜 세월 산산이 흩어져있던 모래알 같은 군중들이 시멘트처럼 뭉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워’했다. 탐욕에 대해서. 이번에도 그 ‘미움’의 타깃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 사단의 정확한 원인은 ‘탐욕’에 찌든 ‘금융’과 그들과 같은 리듬으로 춤을 춘 ‘선진국 정부’였는데 ‘미움’은 ‘가진 자 일반’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이라면 모두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소비는 줄어들고 경제는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로 내리 꽂혔다. 이제 사람들은 ‘성과’를 믿지 않는다. ‘차등의 공정함’도 믿지 못한다. 그동안의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이 촉진제가 되어 이 사단이 만들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의’를 원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책『정의는 무엇인가?』가 정작 미국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이 팔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한국에 특별히 방문도 하고 강연도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 한 번 더 놀랄 것이다. 그 난해한 철학책을 제대로 읽은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 몇 장 읽기에도 벅찬 그 두툼한 책이 한국에서 100만 권이 넘게 팔릴 수 있었던 데는 ‘제목’이 크게 한몫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진짜 정의로운 세상이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의 정의를 훼손하고 있는, 당장 몰아내야 할 ‘미운’ 악당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감히 주장하는데, 그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 관문은 ‘미움’을 없애는 데 있다. 얼마 전 600명의 롯데그룹 HR담당자들이 모이는 2015년 롯데HR포럼에 펩시코의 CHRO를 초청하여 강의를 들은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펩시코는 콜라와 음료수, 스낵을 팔아 무려 70조가 넘는 매출을 내는 어마어마한 회사이다. 그리고 인도 출신의 아줌마 인드라 누이가 CEO가 된 이후, 펩시코는 훨씬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도 출신, 유색인종, 여성, 게다가 애 둘 딸린 워킹맘… 이런 ‘마이너’의 조건을 모두 다 갖춘 사람이 당당히 CEO를 할 수 있는 회사! 당연히 존경받아야 한다. 나는 그 펩시의 CHRO가 강의 중에 자원(Resource)이라는 단어를 쓰는가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 CHRO, 한 시간이 넘는 강연 동안 단 한 번도 자원(Resource)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그 대목마다 ‘People’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래서 종당에는 그 사람의 명함을 다시 한 번 봤다. ‘CHRO’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명함 속의 R은 무엇일까? 답을 알고 나니 한 마디로 ‘헉!’ 소리가 났다. 그녀는 Chief Of Human Relation Officer였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사람은 결코 쓰고 버리는 자원(Resource)의 개념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워할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사람은 기업이, 그리고 우리 경제가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였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답? 그것은 이 지긋지긋한 ‘미움’에서 벗어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대한 석학 7분께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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