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가치경영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비전 선포이다. 실제로 1월 1일 LS그룹의 LS전선을 시작으로 LS산전, 제주항공, 한국가스안전공사, JW중외그룹, 한국도요타, 모두투어 등이 비전선포식을 가졌고, 3월에는 KBS 한국방송을 시작으로 안전보건공단, 신한생명, 한국산업인력공단, NH투자증권, 삼성SDS, 양서농협, 대지에스텍, 원건설, 유니드, 풀무원건강생활 등 규모와 업종을 불문한 많은 기업들이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왜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비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2000년에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비전을 선포했고, 또 이러한 비전은 5년이나 10년을 기준으로 재설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2015년인 올해에 새로운 비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단순히 그런 이유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앞에 소개한 기업들은 5년 차가 되어 형식적으로 뉴(new) 비전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현재의 필요에 의해 비전을 선포했다. 비전은 기업의 장기적 방향성으로 목표나 사업계획과 성격이 다르다. 유튜브에 ‘statoil bad morning?’이라고 검색하면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 STATOIL(스타토일)의 1분짜리 재미있는 영상이 나온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날 아침의 출근길 영상으로, 회사원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신의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눈을 다 치우고 자동차 리모콘을 누르자 이제껏 열심히 치운 차가 아닌 그앞에 있는 눈 덮인 차 후미등이 깜빡이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bad morning?’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소위 ‘삽질’을 한 셈이다. 요즘 기업들 성과가 잘 나지 않는다고 고민이 많다. 성과가 나지 않는 주된 원인은 일을 하는 사람 문제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문제인가? 직원들이 그저 돈이나 벌자고 눈치 보면서 대충 일하기 때문일까? 절대 아니다. 요즘 직장인들 대충 일해서는 조직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직장인들 자존심이 강하다. 남들 눈치 보면서 대충 일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다. 강의와 컨설팅을 통해서 많은 직장인들과 만나는데 그 중에서 자기가 일하는 것보다 많이 받는다고 만족하는 직장인은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요즘 직장인들 받는 것 이상 열심히 일한다고 전제해도 과하지 않다. 그렇다면 리더들의 문제일까? 이것도 아니다. 요즘 리더들 중 예전 리더들처럼 직원들 일 시켜놓고 사우나 가서 쉬고 오는 사람은 없다. 과거처럼 상사라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군림하는 리더도 많지 않다. 오히려 직원들 이상으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한다. 그렇다면 직원들도 열심히 일하고 리더들도 열심히 하는데 왜 성과가 나지 않을까? 앞에서 소개한 ‘bad morning?’을 떠올려 보자. 열심히 눈을 치웠지만 엉뚱한 데 힘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조직원들이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비전은 기업이 가진 대범하고 큰 목표다. 보통의 목표가 단기적이라면 비전은 장기적이다. 목표가 과제를 보여준다면 비전은 방향을 보여준다. 목표가 논리적이라면 비전은 감성적이다. 그렇다고 비전이 허황된 뜬구름 잡기는 절대 아니다. 비전은 큰 목표이기 때문에 장기적 방향과 감성적 느낌이 들지만 달성할 수 없는 비전은 비전이 아니다. 그래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꿈이자 실현 가능한 미래상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각 기업이 비전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비전이 현실에서 작용하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앞에 소개한 유튜브 동영상처럼 목표, 특히 장기적 큰 목표를 정하고 흐트러짐 없이 한 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비전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방법 면에서 고려할 것이 있다. 먼저 방법 면에서, 최대한 전 구성원의 공감, 참여, 합의를 통해 비전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 창업한 기업이라 창업경영자와 직원들의 정보나 역량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면 경영자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 특히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해왔고 리더 또는 직원들의 역량이 웬만큼 강하다면 전 구성원이 공감, 참여, 합의를 통해 비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비전은 기업 구성원 모두의 꿈과 미래상이다. 스스로 꾸지 않은 꿈을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직원 개개인의 꿈이 담겨 있어야 생명력 있는 비전이 되는 것이다. 내용 면에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비전의 내용이 풍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전은 기업이 미래에 도달하려고 하는 큰 목표와 방향을 보여준다. 많은 기업 비전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비전이 보여주는 방향이 지극히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이 되려면 다음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첫째, 기업이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큰 목표가 있어야 한다. 세계 1등, 국내 1등, 글로벌/신사업 진출, 매출 몇 조와 같은 내용이다. 2020년까지 매출 20조, 글로벌 IT 탑10(삼성SDS), 2020년까지 매출 1조5천억, 40대 항공기 운항, 아시아 60개 노선 확보(제주항공)과 같이 사업을 통해 도달할 큰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이 사업을 통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가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과 일터의 가치를 높인다(한국산업인력공단), 고객의 건강한 습관을 만든다(한국야쿠르트)와 같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를 표현하는 경우다. 이것은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인 미션을 추구하면서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셋째, 조직구성원들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기대가 되는 미래 모습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누구나 근무하고 싶은 행복한 기업(원건설), 출근하고 싶은 일하기 좋은 기업(유니드)와 같이 직원들이 원하는 내부적 바람을 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비전 내용을 정하고 이것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한 줄의 꿈이 비전 슬로건으로 발표되어야 한다. 자연을 사람에게(풀무원건강생활), 전국 최고 1등 농협(양서농협), TV를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다(KBS 한국방송)와 같이 그 의미를 바로 알수 있는 도전적인 슬로건을 정하는 것이 좋다. 비전은 조직 구성원들의 꿈이 모아진 것으로 내용이 획일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꿈을 꾸는데 있어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가이드는 있다. 비전 수립의 핵심은 슬로건과 내용이 구성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지나치게 거창하고 허황된 비전은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워 죽은 비전이 되기 십상이다. 구성원들이 비전을 볼 때마다 이룰 수 있다는 강한 의지, 즉 가슴 설렘이 있어야 살아 숨쉬는 비전이 된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지만, 기왕에 시작한 비전 수립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영역에 대해 전 구성원이 참여하여 토론하고 합의하여 가슴 설레는 멋진 비전을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진호 가치관 경영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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