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원본부 막내로 입사한 지도 1년 6개월. 반복되는 일들은 손에 익었고, 좋은 본부장님을 만난 덕분에 다양한 교육도 틈틈이 들으면서 막내 딱지를 떼어낼 때를 기다리고 있다.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예 뽑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몇 달째 대리직급이 공석인 채로 지속된다면 아마도 나를 주임으로 올리고 해당 업무를 한 팀장님과 나누어 하게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오호 신형, 철 아닌 때에 승진이라니 그것도 입사 2년도 안됐는데 말이지. 크게 한 턱 내야지!” “어차피 하던 일 그대로 막내인데요. 월급도 큰 차이 없고, 늘어나는 일거리 감안하면 제가 손해라고요. 최 대리님이 불쌍한 저를 생각하셔서 밥 한번 사세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회사 조직 재정비에 집중하느라 본부장님, 한 팀장님, 나 이렇게 우리 셋은 일주일에 3일은 야근에 때론 주말도 반납해야 했다. 조직구성, 연봉테이블, 승급, 사내외 교육, 행사 등 다양한 것들을 손보고 만들면서, 힘은 들지만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내가 될 거라는 본부장님의 우스갯소리가 이른승진을 뜻하신 거였을까? “주임 빨리 단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어차피 대리까지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 일 많이, 빨리 배우는 데 만족하고 능력이나 키워.” 하여튼 김새게 하는 능력은 한 팀장님이 최고지. ‘좋은 소식이다, 축하한다, 열심히 하자’ 등등 예쁜 말 두고 꼭 저렇게 초를 쳐야 자존감이 사는 사람인가보다. 금요일 오전, 본부 전체회의가 소집되어 최종 결정사항을 전달 받았다. 재무회계팀에 신입사원 한 명을 추가로 채용하고 우리 인사총무는 나를 주임으로 승진, 기존 업무체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하되, 번거로운 서류작업이나 보고체계는 조금 손을 봐서 업무량을 조절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재무회계팀 못지않게 인사총무 분야에도 잡다한 일이 많아서 아무리 간소화된다고 해도 내 업무가 줄 것 같지 않은데 왜 우리는 인력을 늘려주지 않는 걸까? 이어 승진발표가 나고 사람들은 축하인사를 건네는데 나는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사실 내가 바란 건, 주임 승진뿐 아니라 내 밑으로 신입이 한 명 더 들어와 기존 업무를 넘기고 좀 더 깊은 일을 배우고, 해보고 싶었다. 한 팀장님 말씀대로 이 회사에서 대리가 되기까지 버텨야 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쥐꼬리만큼 오르는 월급이 무슨 의미가 있냐 이 말이다. “캬~ 얘기 들었어? 영업 2팀 이 대리가 한 건 했던데? 가뜩이나 매출 없는데 가뭄에 단비야. 다른 때 같으면 큰 액수도 아닌데 요즘같이 힘든 때 홈런을 쳤으니 포상이 어마어마하겠지. 이래서 영업이 꽃이지. 에고, 우린 어느 세월에 홈런이냐. 부지런히 해도 시간이 돼야 겨우 오르는 월급이니… 맥 빠진다, 야.” “너무 불공평해요. 나는 꾸준히, 부지런히 일한 대가가 월급 차이도 크게 없는 주임 승진이랑 늘어나는 일거리인데. 누구는 한방에 몇 백만 원 인센티브에 휴가에 잘하면 승진까지. 이게 말이 되는 거예요?” “억울하면 신형 씨도 영업해. 이참에 진로 바꿔볼래? 음, 기본적으로 말이지. 우리 제품을 파는 일이니까 제품의 부품 하나하나까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해. 대규모 거래라 부장급 이상만 상대해야 하니까 굽신굽신은 기본이고, 원치 않는 술자리, 골프, 필요하다면 시간 관계없이 심부름도 마다 않고 해야지. 경쟁업체들 상대하려면 타 제품에도 훤해야 하고, 판매한 이후 고객관리도 엄청 피곤해. 꾸준히, 부지런히는 영업도 마찬가지야. 생각처럼 한 큐에 들어가는 건 없다고.” 말을 이어가던 구매팀 최 대리님을 막아선 한 팀장님이 한 소리 하신다. “애 데리고 뭐하냐? 가서 일이나 해. 뭘 안다고 아는 척이야. 그리고 신형, 야근하기 싫으면 하던 일 빨리 끝내라.” 눈 감고도 하는 일인데 무슨 야근씩이나. 최 대리님처럼 이런저런 설명도 제대로 해주신 적 없으면서 매번 훼방이다. “신형, 비교하지마. 우리가 하는 일도 영업도 다 제 몫이 있어. 최대리 말처럼 꾸준히 공을 들여야 얻어지는 것들이야. 주임 승진? 처음엔 좋아했다가 다른 팀, 다른 성과, 나은 대우 비교하니 자신이 초라해진 것 아니야? 그럼 신형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봐. 인사 쪽에서 이렇게 빨리 주임 단 친구가 있어? 다 상대적인 거라고. 무엇보다 본인이 선택했잖아. 본부장님 통해서 많이 배우고 기회도 얻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어. 그거 간과하지 말고, 어느 순간에 운명처럼 ‘유레카’를 외치고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은 지금 자리에서 능력 키워. 영업팀이 수주하는 것이 꼭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운도 어찌 보면 능력이야.” 아차 싶었다. 입사하고서 많이 배우고 성장하겠다던 다짐은 겨우 1년 6개월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과 비교하며 내 능력과 처우를 저울질하는 꼴이라니. 무능력에 성격장애를 지닌 팀장 밑에서 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했던 지난 과거가 오늘, 팀장님의 한마디에 정반대의 상황으로 역전됐다. 나는 인문학을 전공하고 물론, 크게 뜻한 바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인사총무라는 일을 시작했다. 좋은 본부장님 만나서 인사에 대한 시각도 넓히고 많은 일들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승진도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고. 이제 또 다른 일들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와의 인간관계, 사회생활을 이어가면서 사람을 알고 대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웠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본부장님이 그러셨다. 일과 과정은 힘들지만 최대 수혜자는 내가 될 거라고. 그렇다. 나는 좋은 사람, 많은 일, 빠른 승진이라는 혜택을 모두 누리고 있는 운 좋은 신입이다. 비교하지 말고, 내 길을 가다 보면 ‘유레카’를 외칠 날이 오겠지(이제 한 팀장님을 조금 덜 무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료회원전용기사

로그인 또는 회원가입을 해주세요. (유료회원만 열람가능)

로그인 회원가입
저작권자 © 월간 인재경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