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HR의 위기론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HR이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 하는 의문 혹은 회의론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HR 위기론은 보다 근본적으로 HR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회의론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심지어 향후 10년 내에 조직에서 HR부서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HR 위기론의 배경에는 조직 내외부의 환경변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경제와 비즈니스의 세계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고, 기술의 변화가 숨 가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매일 매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여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필연적으로 조직 전반에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HR이라고 해서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예외일 수는 없다.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HR 분야에서 경험하고 있는 가장 큰 변화의 동인은 조직과 직원, 즉 고용과 피고용 관계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 발행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링크드인(Linked In)의 창업자 리드 호프만(Reid Hoffman)은 고용관계의 안정성이 사라지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전통적인 협약, 즉 기존의 질서가 사라져 버렸음을 의미한다. 흔히 고용의 안정성이라 하면 고용주가 피고용주를 오랜 기간 동안 고용하고자 하는 명시적, 혹은 암묵적인 계약만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영환경에서는 종업원들도 한군데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는 데다 기업이 과연 종업원들의 평생고용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존속할지의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은 이렇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동안 HR 부서의 역할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현재 조직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HR 부서들은 사실 1950년대 전후 호황기에 정립된 역할과 기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시기는 기업들이 날로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고, 또한 외부인재를 구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때였다. 따라서 인력을 채용할 때 당장의 필요성뿐 아니라, 내부 노동시장의 관점에서 보다 장기적인 수요 예측에 기반할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직에 들어온 인력들에게 조직의 관리자 및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경력개발을 지원해야 했고, 이들에게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만큼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도록 충분한 보상을 주어야 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고용 및 노동 관련 법과 제도들이 확립되어감에 따라 사내의 각종 인사제도와 관행들이 이러한 법적, 제도적 규정을 준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HR은 법 위반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제도의 개선과 함께 법적 준수의 근거가 되는 각종의 페이퍼워크를 담당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HR 부서의 기능은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같은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50년 전과 오늘날의 HR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엔지니어링과 다운사이징의 파도가 미국 기업조직을 덮쳤을 때, HR은 구조조정과 해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었으며, 1990년대 인적자원이 경쟁우위의 핵심적인 원천으로 대두되면서,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로서의 HR의 기능이 강조되기도 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세계화 및 IT 기술의 진보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변화의 실행을 담당하는 HR의 역할을 요구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도 일상에서 HR이 수행하는 역할은 여전히 채용(기획), 보상, 개발, 노사라는 큰 틀 속에서 유지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기능들이 변화하는 조직환경에 여전히 적합하고 유효한가의 여부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기업이 수행하는 여러 활동들이 아웃소싱으로 돌려지고 있는 오늘날에는 채용이나 경력개발과 같이 기존에 수행하던 HR의 많은 기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그 중요성이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 대부분의 리더십 포지션이 내부승진에 의해 채워지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조직에서는 외부영입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리더십 역량개발이나 승계관리(succession planning)과 같은 HR의 기능 역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앞으로의 미래는 인적자원이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것이며, 결국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리고, 생존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하에 HR이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인적자원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HR의 위상강화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HR 기능이 아웃소싱화 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미국 인사관리협회(Society for Human Resources Management)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전체 HR 업무 중 약 15%가 아웃소싱 형태로 수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는 주로 퇴직연금의 납부와 같은 단순 반복적인 업무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는 채용이나 보상과 같은 좀 더 복잡성이 높은 기능도 아웃소싱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전통적 HR의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HR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연구나 주장들도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영 리더들의 담론을 주도하는 매체라 할 수 있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최근호(2015년 7·8월호)에서도 HR의 미래를 모색하는 내용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이 특집의 주제논문을 게재한 와튼 경영대학원의 카펠리(Peter Cappelli) 교수는 전통적으로 HR은 조직내의 니즈에 수동적으로 대응해 온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래의 HR은 보다 능동적으로 사람과 관련한 의제를 선점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과거에는 경영진이 전략적인 의사 결정(예를 들어 정리해고, 인수합병, 신기술 도입 등)을 하면, HR은 그에 맞추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경영진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는 사람과 조직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그 존재감과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은 사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HR의 의견은 전략적 결정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또한, HR은 조직의 설계자로서 조직 전반의 문제에 관여할 수 있다. 조직이란 곧 사람과 그 사람에게 주어진 임무, 그리고 그 사람들과 임무를 조직화하는 프로세스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직설계자로서 HR은 개개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부여하고 이들 직무들이 협력하여 조직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 마디로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정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조직 구조상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관찰하여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제안을 한다든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조직 구조나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역할까지도 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HR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성과를 측정하고 각 개인의 조직에 대한 기여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최근에는 아웃소싱이 확대되고 탄력적이고 변형적인 근로형태가 늘어남에 따라 전통적인 성과평가(performance evaluation)와 보상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는 조직 내의 다변화된 업무형태에 대응하여 보다 다양한 평가와 보상의 방법이 개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 다양한 평가와 보상의 방식 간에도 일관성과 형평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므로 조직 전체 차원에서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은 평가·보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HR 부서가 아니면 수행하기 힘든 HR 고유의 업무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직에서 요구하고 있는 HR의 역할은 지난 50여 년간 구축해 온 HR의 영역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존에 수행해 왔던 전통적인 HR의 역할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조직에서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의 이슈를 다루는 HR이라는 기능 그 자체가 사라지리라 예상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판단이다. 오히려 사무적이고 반복적인 페이퍼워크나 컴플라이언스 업무로부터 해방되어 보다 전문성이 높은 업무로 자리매김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변화하는 HR의 본질에 성공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HR 담당자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HR업무에 대한 조직 내부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사실 사람과 관련한 HR의 결정이 조직 내에서 실행이 될 때는 그 결정에 따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항상 반발과 저항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HR 임원 및 실무자들은 공식적인 권위나 강제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수평적 소통의 강화를 통해 조직 내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저항과 반발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둘째, 비즈니스와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HR이 비즈니스를 잘 모른다고 하는 비판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그런데 과거 HR은 자격증(certification) 제도 등을 통해 HR을 하나의 전문직의 영역으로 구축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왔고, 자기 회사에서 하고 있는 사업 혹은 상품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인 지식(general knowledge)보다 조직의 고유한 경쟁력(firm specific competency)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에는 HR 역시 각 조직마다 독특한 특성과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사의 비즈니스와 사업모델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재무적 성과에 대한 HR의 기여를 확실히 보여야 한다. 흔히 HR이 핵심적인 경쟁우위 창출의 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측정의 어려움 등을 들어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HR의 존재 의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최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조성준 가천대학교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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