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번창하라(Thrive)!’ 이는 지난 7월 초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2015 SHRM 컨퍼런스’의 주제다. 주지하다시피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은 전세계의 인사담당자 15,000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의 인사 컨퍼런스다. 전통적으로 이 컨퍼런스에서는 시대의 환경과 흐름을 분석해서 그 해의 주제를 정하는데, 늘 그 주제가 기가 막힌 통찰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의 주제는 왜 ‘번창하라’였을까? “남의 집 잔치에 와서 우리가 뭐 하는 거지?” 동행한 모 교수의 푸념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미국은 지금 자신감이 넘친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이 발명한 수평파쇄기법으로 셰일가스를 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발굴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자원이다. 벤처가 개발한 이 기술 하나로 석유 최대 소비국인 미국이 석유를 수출하게 될 지도 모르게 생겼다. 중동의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엄청난 예산을 까먹는 전쟁을 치르는 것도 그 놈의 ‘석유’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중동이 어떻게 되든 미국의 관심 밖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할 일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나 이란과도 화해를 하면서 평화무드로 전환했다. 경쟁 국가들은 어떨까? 셰일가스 발굴로 유가가 곤두박질치자 전통적 경쟁국인 러시아 경제가 고꾸라졌다. 늘 자신만만하던 푸틴께서는 요즘 안녕하신지 모르겠다. 승승장구하면서 금방 미국을 앞지를 것 같던 중국도 서서히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 같다. 거대 미국과 달러화의 횡포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EU도 자중지란에 빠져서 대응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지금 글로벌 기업들의 시선은 실리콘밸리에 쏠려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 경제의 판도를 뒤집고 있다. 게다가 2008년에 폭격을 맞아서 빈사상태로 들어갔던 금융기업들도 충격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전열을 정비했다. 실업률도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다. 모든 게 좋다. 그래서일까?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겠다는 엘런 FRB 의장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이러니 ‘번창하라(Thrive)’를 내세운 것이고, 우리에게는 ‘남의 잔치’가 된 것이다. 솔직히 그들의 자신감이 부럽다. 인사담당자들도 그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죽을 것 같은 미국 경제가 어떻게 다시 회복한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그들은 재번영의 원천인 실리콘밸리의 창의성에 주목했다.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글로벌화’를 밀어붙이며 그들의 강점인 금융기업을 통해 세상을 지배해왔다. 신자유주의(?), ‘시장근본주의’에 가까운 그 프레임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 프레임 안에는 ‘탁월한 금융투자나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그러니 그 천재에게는 엄청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인사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외부 시장의 살벌한 경쟁원리를 기업 내부에 도입하면 그 신묘한 ‘시장원리’의 힘에 의해 조직이 건강해질 것이라는 기대를했던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HR(Human Resource)이라는 개념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직원들을 정수(定數)로 세는 전통적 인사관리(Personnel)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학습과 경험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으니 애초에 괜찮은 사람을 채용하고, 그런 사람들의 ‘최선’을 뽑아내기 위해서 정교한 평가와 보상시스템으로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인사관은 2002년에 출간된 ‘인재전쟁(The War for Talent)’라는 베스트셀러에 집약되어 있다. 세상의 인재는 한정되어 있으니 그들을 우리가 배타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더 파격적인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 몸값 비싼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투자관리자는 엄청난 돈을 회사에 벌어다 주었다. 그 동전의 뒷면에는? 그렇지 못한 인재는 비용절감을 위해서라도 내보내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성과주의(Performance-Based Management)’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부르고 ‘정의’롭고 ‘공정’한 프레임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인간의 이기심 때문일까? 그 ‘성과’주의가 점점 ‘성과급’주의로 변질이 되어버렸다. 조직 전체의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시스템이 개인의 ‘성과급’을 극대화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기심이 조장되고 조직 내에 도덕적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묘한 제도를 통해 촉진하면 조직의 성과를 확대할 수 있다고 믿은 인적 ‘자원(Resource)’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관리하고 감시해야 할 ‘자원(Resource)’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관리와 감시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겉으로만 탁월해 보이는 인재들이 회사를 통째로 말아먹는 일도 왕왕 벌어졌다. 그렇게 일본과 신흥국에 제조업 경쟁력을 빼앗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주던 금융기업들이 몰락해갔다. ‘이렇게 미국의 시대가 끝나는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점에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번영의 싹이 올라왔다. 금융산업이 대세이던 시절, 기업들은 금융회사의 인사 모델을 벤치마킹한다고 바빴다. 그런데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창의성’ 모델에 난리다. 그렇게 ‘인재전쟁’의 시대는 끝이 났다. 필자가 SHRM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변화 중 하나는 220여개에 달하는 세션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강사들이 그야말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Resource’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People’이나 ‘Human Capital’이라는 대체어를 쓰고 있었다. 특히 ‘People’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직원들이 관리하고 짜내야 할 ‘자원’이 아니라. 인성과 감성, 영성을 가진 한 차원 높은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한 개념이다. 발표자들은 창의성이 천재의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분위기와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그런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스몰팀 리더’가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차에 <하버드비즈니스리뷰> 7~8월호가 나왔다. 표지가 충격이었다.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그림 밑에 ‘무너지기 전에 폭파시켜라. HR, 인적자원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었다. 저쪽 동네에는 확실히 공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HR이라는 개념과 철학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 같다. 그나저나 ‘Thrive’라… 정말 부럽다. 배가 아플 정도로.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