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가치경영

39년 역사를 가진 중소기업 2세 경영자를 만났다. 이 중소기업은 한때는 ‘중소기업의 성공신화’로 불릴 정도로 성장세가 매서웠지만, 최근 2, 3년 사이 매출이 주춤하면서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다. 경영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신규사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보이고 있지 않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신규사업이 지지부진한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의 노령화로 인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경영자와의 만남은 변화·혁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을 해주는 자리였다. 경영자와 대화를 나누다 회의용 탁자 위에 ‘명품장수기업 신청서’라고 적힌 서류가 눈에 띄었다. “사장님은 왜 명품장수기업이 되려고 하십니까?”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장수기업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명품장수기업 되는 게 변화·혁신에 꼭 필요한 일인가요?” 경영자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창립 50주년을 맞은 중견기업 가치관선포식에 참여했다. 이 기업도 요 몇 년 새 성장이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경영자나 직원들은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익이 나는 대로 신규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고, 직원들 또한 신규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10년 만에 5배 성장을 이룰 정도로 한때 대단한 성장세를 보였었다. 이렇게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신규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직원들의 일에 대한 열정이 크게 한몫했다. 실제로 이 기업은 창립 후 40년 동안 정밀화학사업만 하던 기업이었는데 최근 10년 사이에 에너지사업, 비철금속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였다. 이 기업은 2020년 매출 1조 달성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경영자는 “젊고 활력이 넘치는 기업이 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연 1회 명품장수기업을 선정하여 포상하고 있다. 조건은 30년 이상 성공적으로 기업 활동을 영위한 중견∙중소기업에 한해서다. 상을 주는 취지는 ‘중소기업의 경영의지를 고취하고 발전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명품장수기업이란 무엇일까?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고 정의한다. ‘장수’는 ‘오래도록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종합해보면 ‘명품장수기업’이란 ‘뛰어난 사업성과로 오래도록 생존한 기업’을 말한다. 명품장수기업은 ‘오래된 기업(장수기업)’이 필요조건이라면 ‘뛰어난 사업성과(명품기업)’이 충분조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기업이 명품장수기업일까? 우리나라 빅4 기업은 중견·중소기업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명품장수기업이다. 뛰어난 사업성과는 더 말할 나위 없고 설립연도가 삼성그룹 1938년, 현대차그룹 1937년, SK그룹 1953년, LG그룹 1947년으로 30년의 두 배인 60년이 훌쩍 넘은 기업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 기업들의 이미지다. 취업포탈 잡코리아는 2007년부터 2~3년 주기로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 기업들을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사람으로 비교하는 조사를 계속해오고 있다. 삼성은 4번의 조사에서 모두 30대 초반 남성이미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40대 초반 남성(2007), 30대 후반 남성(2009) 그리고 2011년, 2014년 두 번의 조사에서는 30대 초반 남성이미지였다. SK그룹은 가장 젊은 이미지다. 30대 초반 남성(2009), 20대 중반 남성(2011), 20대 초반 남성(2014)로 이미지가 점점 젊어지고 있다. LG그룹은 2007년과 2009년 조사에서는 30대 초반, 20대 후반 여성이미지에서 2011년과 20014년 조사에서는 30대 초반 남성이미지로 바뀌었다. 이 자료가 주는 시사점은 4대 그룹의 이미지가 30대 초반 이미지로 상당히 젊다는 사실이다. 매출액 100조가 넘는 기업 이미지가 사람의 나이로 치면 30대 초반이라는 것은 상당히 호감이 느껴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이미지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이 기업들이 젊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외국 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세계 1위 화학기업인 듀폰은 1802년에 설립된 200년이 넘은 기업이다. 듀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메인페이지 중앙에 있는 ‘INNOVATION(혁신)’이다. 세계1위 생활용품기업인 P&G는 1837년에 설립된 170년이 넘은 기업이다. P&G 홈페이지 첫 화면은 20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활짝 웃는 모습이 장식하고 있고 눈에 띄는 단어 역시 ‘INNOVATION’이다. 우리나라 중견∙중소기업이 따라 배워야 할 명품장수기업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신화에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 이야기가 나온다. 에오스는 사랑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동생인데 인간을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트로이아의 왕 라오메돈의 아들 티토노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를 납치한다. 그리고는 신들의 왕 제우스에게 티토노스를 영원히 죽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제우스는 여신의 부탁을 들어준다. 신들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른 지라 인간 티토노스는 점점 늙어간다. 에오스는 제우스에게 티토노스가 영원히 죽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영원히 젊게 살게 해달라는 말을 깜빡 잊은 것이다. 에오스는 늙어가는 연인을 보고 마음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연인은 백발이 되어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게 되었다. 에오스는 더 이상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골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티토노스가 점점 더 늙어 거의 죽은 상태로 명을 이어가자 에오스는 티토노스를 메뚜기로 만들어 놓아줘 버렸다는 이야기다. 여신 에오스가 사랑한 것은 젊고 활력이 넘치는 티토노스였지 늙어 거동조차 못하면서 삶을 연명하는 티토노스가 아니었다. 무슨 얘기냐고? 오래도록 생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기업으로 지속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소개한 2세 경영자 얘기로 돌아가 보자. 39년을 이어온 기업이고, 독자적인 기술도 보유한 기업으로 세금도 잘 냈고 가족같은 분위기로 노사관계도 안정적이다. 어쩌면 이 기업은 명품장수기업으로 선정되어 포상을 받을지 모른다. 문제는 기존의 사업모델이 한계에 부딪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조직도 노령화되고 변화혁신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경영자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장수기업’에 만족하지 말고 ‘명품기업’을 만드는 데 집중하십시오.” 정진호 가치관 경영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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