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일하고 싶은 직장’이 되면 기업의 성과가 올라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직무와 조직이 만족스러우면 회사의 성과가 올라가고, 존경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학자들이 다 그렇게 말했지 않는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뭔가 찜찜함이 남는다. <포춘>은 매년 중요한 지표 세 가지를 발표한다.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가장 존경받는 기업’, 그리고 ‘가장 규모가 큰 기업’ 그 지표 순위에 아까 한 질문을 대입해보자.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에 선정된 기업들은 존경받는 기업이나, 규모가 큰 기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더 클까? 궁금하면 못 참는다고 했던가? 2015년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상위 20위안에 들어간 기업 중에 나머지 둘에도 들어간 기업이 몇이나 있을까? 놀랍게도 그런 회사는 하나밖에 없다. 그게 구글이다. 나머지 19개 회사는 규모가 큰 회사나 존경받는 회사 20위에 명함도 못 내밀었다. 아니, 여러분들이 이름이라도 들어본 기업이 몇 되지 않는다. 이 데이터는 사람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일하고 싶은 직장은 왜 존경받는 기업이 못되었는가? 아니, 일하고 싶은 직장도 아니면서 어떻게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었는가? 그 전에 이런 질문부터 해보자. 사람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우선순위가 기업의 영속적인 성장과 생존일까? 아니면 일하고 싶은 직장 만들기일까? 당연히 전자이다. 돌아가신 정운영님께서 오래 전에 이런 칼럼을 쓰셨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한 사람이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이 된 독일과 일본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과 전쟁을 해서 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미국과 전쟁을 해서 지면됩니다.” 다들 그럴 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 각료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이기면 어떻게 하죠?” 전쟁이 끝난 후 독일과 일본이 다시 강대국이 된 것은 미국과도 한판 뜰 만큼 경제적·기술력적 기반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반을 토대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구글에 대해서 똑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구글이 하는 방식대로만 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것도 구글의 여러 가지 면 중에서 베끼기 쉽고 우리 입맛에 당기는 것만 적용하려는 시도… 그런데 막상 그걸 해보려니, 여력이 안 되어서 ‘역시 우리는 안 되겠다’는 자괴감. 그럼 다시 질문을 해보자. 구글처럼 자유롭고 풍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구글처럼 성과가 날까? 아마 아닐 것 같다. 구글은 그걸 해줄 수 있을 만큼 성과가 많이 난다는 게 팩트(fact)인 거 같다. 구글에서 부사장을 하다가 야후의 CEO로 이직한 마리사 메이어는 쌍둥이를 출산하고 2주 만에 회사에 복귀한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말들이 많다. 듣자하니, 그녀가 야후의 CEO로 오자마자 재택근무 자체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속내야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열심히 일이나 하지, 집에는 왜 가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구글에서 근무할 때 집에 안가고 일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구글과 야후의 운명을 가른 것이 아닐까?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구글코리아 최장기록이 28일이라고… 집에 안가고 사무실에서 죽친 최장 기록이 말이다. 이 말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다들 미친 듯이 일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 세끼를 다 주는 거다. 밥은 먹고 하라고… 사무실 곳곳에 편안한 소파를 두고 잠깐씩 눈을 붙이면서 일하라는 배려도 해준다. 간밤에 집에 못 갔으니 세탁 서비스도 해준다. 건강검진을 정말 정밀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키우는 개도 데리고 출근하도록 배려해둔다. 며칠씩 집에 안 가면 개가 굶어죽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도록 일하는 동료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더 혹독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 구글의 기업생태계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구글이 그 지경(?)까지 갔을까? 멀쩡한 직원들에게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더니 죽도록 일만 하는 기이한 인간으로 바뀐 것인가?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이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이란다. 이거 참, 그 친구들 제대로 미친 것 아닐까? 실리콘밸리에는 3대 악당이 있다. 이들은 타고난 천재들이라 그런지, 직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엄청나다고 한다. 업무의 요구 수준이 하늘을 뚫고 나가 천왕성까지 가 있어 이들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매일 회사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이다. 이 3대 악당이 만든 회사가 바로 애플과 페이스북, 테슬라이다. 이 회사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포춘> 선정 ‘일하기 좋은 직장’ 20개에는 이름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애플은 그딴 조사에 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평소 소신이었다. 그런데 존경받는 기업 목록에는 세 회사 모두 당당히 이름이 들어가 있다. 도대체 이놈의 회사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회사들은 애초부터 Bottom Line(손익계산서의 맨 아랫줄, 이익이라는 의미)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냥 세상과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대한 이익이 저절로 따라온 것이다. 그러니 직원들은 창업주의 혹독한 요구에 매일 얻어터지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다. 11년 만에 왕이 귀환했다. 직원들은 전설적인 창업자의 복귀를 환영했으나, 그 열광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즐겁고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모두가 회사를 좀먹던(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했다) 좋은 시절은 저 멀리 가버렸다. 잉여인력은 가차 없이 잘리고, 요구 수준은 점점 더 높아졌다. 고작 1년 만에 전 사원이 자신이 하는 일과 회사의 관련성, 마감 시간을 즉시 대답할 수 있는(못하는 자는 그 즉시 해고 되어 쫓겨났다), 그리고 그로 인한 충실감과 절박함 속에서노동시간이 무한히 늘어나는 회사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공포는 곧 경외로 바뀌었다. 잡스의 지휘 아래 있는 애플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일원이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보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에 놀러 나오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소중한 젊음의 시간을 회사에 팔아서번 돈으로 나머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하루 일과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에 앞서서 ‘왜 이 짓을 하는지’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정말 절박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는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 이후에 나와야 할 질문이다. 그렇게 첫 번째 질문이 완성되면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역(逆)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나는 여기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나부터 그만 떠들고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좀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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