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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팀장님 화가 좀처럼 식지를 않는다. 내용인 즉, 이번 달에 청년인턴 채용공고를 내서 서류 전형 통과자들에게 개별연락을 했는데 그 중 한 친구의 어머니가 대뜸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취조하듯 이것저것 캐물었다는 것이다. 팀장님의 통화내용을 정리해보면 대충 이런 질문들이다. “거기 뭐 하는 회사인가요? 우리 아들이 청년인턴인가 뭔가 신청을 해서 연락을 받았다는데 그게 정확히 뭐죠? 비정규직인가요? 열정페이다 뭐다 해서 말이 많은데 여기도 그런 식으로 일을 시키는 건가요?” “여기가 무슨 학교야?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엄마가 뒷구멍을 챙기나. 누군지를 모르니 알아서 탈락시킬 수도 없고 난감하구만. 이런 친구가 회사에 들어와서 뭘 제대로 하겠어.” “그게 꼭 그 친구 잘못인가요 뭐, 어머니가 극성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요즘 워낙 인턴, 신입사원 채용을 빌미로 사기를 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 염려스러워서 전화 한 통 해봤겠죠. 취업난이 심각하니까 별별 일이 다 있네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유독 극성인 부모, 유달리 의존적인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입사 관련해서 부모가 직접 회사에 전화를 하다니. 자식교육에 있어 방임철학을 고수하신 우리 부모님 덕분에 잘하든 못하든 혼자 하는 버릇이 든 나에게 이번 사건은 가히 문화충격이다. 젊은 나도 말문이 막히는 일인데, 팀장님처럼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일까? 아침의 에피소드는 금방 전사로 퍼져서 이번 청년인턴 면접대상자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면접 때 '엄마 손을 잡고 오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 다들 우스갯소리로 시나리오를 써가는 가운데, 면접 진행을 맡은 내게 본부장님이 별도로 추가 업무를 주셨다. “신형, 면접 끝나면 애들 바로 돌려보내지 말고 소회의실 하나 잡아서 간단히 다과하고 돌려보내. 어차피 뽑는 인원이야 2명뿐이지만 나머지 친구들도 먼 길 왔는데 그냥 멀뚱히 보내면 그렇잖아. 신형 네가 인사담당자가 된다고 생각했을 때 그 친구들한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잘 챙겨봐.” 약 80여 명의 지원자 중 18명이 서류전형을 통과해 그 중 3명은 불참, 총 15명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면접을 봤다. 본부장님 지시에 따라 재무팀 최 대리님과 함께 가진 다과시간. 면접 보러 와서 무슨 질문을 할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궁금한 점이 많았나 보다. 인턴으로 입사해 시작하게 되는 업무가 무엇인지, 정규직 전환 이후 원하는 부서로 배치가 되는지 등 특히나 인턴이 비정규직이라는 점과 관련해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주임님, 본채용이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인턴제와는 상관이 없나요? 해당 제도를 통해 채용을 하면 기업이 국가로부터 인턴급여 일부를 몇 개월 동안 지원받는다고 들었는데 실제 인턴 기간이 종료되고 지원금 지급이 끝나면 해당 직원의 임금이 깎이거나 퇴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보다 더 고용지원제도에 잘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저희는 그 제도와는 무관합니다. 아마도 채용공고가 ‘청년인턴’으로 되어있어서 물어본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신청기업 자격요건도 은근히 까다롭고 정규직으로 무조건 전환을 시켜야 지원금도 받을 수 있어요. 저희 회사는 많은 인력을 채용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정규직으로 일관되게 뽑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국가에서 청년취업 지원사업으로 이것저것 많이 하는데 사실 저희와 같이 취업난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는 기업이 이득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아 실제 그런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길어진 다과시간을 마무리하고 최 대리님과 한 숨 돌렸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긴 한가보다. 누구는 엄마가 직장 구하는일까지 간섭하질 않나, 누구는 기업 채용담당자도 잘 모르는 국가 고용지원 프로그램까지 줄줄 외우고 있고 말이지. 대기업 다니는 내 친구는 인턴 뽑는데 서류접수만 수백 건이었다네. 아니, 수천 건이었나?” “청년인턴제는 저도 한 팀장님께 대충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은근히 영향력이 있나 보네요. 저희 때는 국가 정책 그런 것까진 크게 신경 안 썼는데.....” 국가 고용지원제도에 대한 한 친구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관련내용을 좀 찾아봤다. 인사총무 일을 하면서 고용노동관련 정책이나 제도는 알게 모르게 듣는 편인데, 사실 기업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구직자 편에서는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했었다. 깊이 따져보면 내 주변 지인들에게 당장 닥친 현실이기도 하고 나 역시 언제든지 다시 구직자 신세가 될 수 있으니 그들의 시선으로 살펴 볼 이유는 충분했다. ‘청년인턴제’,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이 실업난 해결을 위한 정부사업이 여럿 있는데 취지는 물론 고용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 득을 보는 건 이들을 뽑는 기업과 알선업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부로부터 기업은 임금의 일부를 지원받고 알선업체는 청년인력을 매칭했다는 이유로 고정비 이외의 수당까지 받는데, 정작 실제 근로자가 체감하는 취업의 질과 지속성은 여전히 낮다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사람을 뽑는 부서에 있다 보니 무엇보다 확실한 건, 해당 제도 덕으로 ‘아, 회사가 인건비 지원을 받으니 인력을 더 뽑아야지!’ 이런 경우는 드물다는 거다. ‘어차피 뽑을 사람, 비용 지원까지 받으면 나쁠 것 없지’ 요 정도의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본인의 능력에 따라 입사해서 성실히 일하는데 왜 알선업체가 수당을 받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인턴’이란 본래 회사에 입사해 업무를 익히고 적응하기 위한 시기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여러 정책은 단지 취업률을 위해 ‘일단 들어가고 보자’식이니 참여하는 구직자들 역시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책임감을 키우기 힘든 구조로 보인다. 이러면 비용을 쓰는 정부도, 사람을 키워야 하는 기업도, 입사 후 경력을 쌓아야 하는 구직자도 소모전을 지속하는 꼴이 될까 염려스럽다. 더 나은 정책, 제도를 만드는 일이야 시간과 공이 필요하겠지만 시행 중에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모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식의 취업에까지 직접 나서는 부모의 지나친 내리사랑을 비웃고, 국가의 취업지원정책을 기업에 와서 묻는 학생을 어이없다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참견과 대상 모를 질문이 비단 그들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얽혀있다. 내 아버지, 기성세대는 자리를 차고 정년연장을 바라보고 있고, 또래들은 일자리를 찾으려 부단히 떠돌고 있다. 기업은 힘든 경기 속에 인건비 싸움을 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이 모두를 해결하기에 적지 않은 부담을 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혹은 앞으로 해야만 하는 모두에게 계속되는 실업난은 공공의 적. 각자의 입장차이를 좁히고 모두에게 득이 되는 채용문화를 만들기 위해 나와 같은 신참내기부터 기업, 정부할 것 없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해답을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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