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희의 인사만사
적지 않은 나이에 자리를 옮겨서일까? 새로운 직장에 대한 지인들의 궁금증이 참으로 크다. 아마 필자 가까이서 지난 9개월간의 채용과정을 직접 지켜보아서 더 그럴 것이다. 필자를 9개월 동안이나 지켜본 지금의 회사만큼이나 필자 또한 1년 가까운 채용 과정 속에서 지금의 회사를 검증할 수 있었고 또 확신할 수 있었다. 누가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HR을 Human Resource가 아닌 Human Relations로 인식하는 지금 기업의 인사 철학을 꼽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기업에서 HR은 사람을 쓰고 버리는 자원(Resource)의 개념이 아닌 사람과 사람, 즉 구성원 간의 관계를 관할하는 것으로,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명상 프로그램을 잇달아 도입하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사람으로, 불완전하고 행복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시작해서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연례 컨퍼런스 중 하나인 ‘위즈덤 2.0’에서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 등 대표 IT기업들은 혁신적이고 빠른 디지털 속도와는 반대로 느리고 차분하게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방법, 이른바 마음챙김에 빠져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애플의 설립자인 고(故) 스티브잡스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동양의 명상을 생활화한 인물이다.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잡스에게 명상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고, 나아가 애플의 혁신적 사고와 제품을 탄생시키는 데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또한 잡스는 명상을 단순히 스트레스 조절 등 건강 차원을 넘어, 영감을 얻고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여긴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OECD는 한 보고서를 통해 “심리(정신) 건강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기업의 생산성과 직장생활의 웰빙에도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팀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는데, 연구팀은 “우울증에 걸린 근로자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근로자보다 결근율이 2배 높고, 생산성 손실이 7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검색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구글은 명상 프로그램의 도입과 활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구글은 자체 개발한 명상 프로그램 ‘너의 내면을 검색해보라(Search Inside Yourself)’를 통해 직원들의 감성지능(EQ)은 물론 자신감과 업무능력, 리더십을 향상시키고 있다. 뉴욕타임즈(NYT)는 구글의 ‘너의 내면을 검색해보라(SIY:Search Inside Yourself)’는 단 7주, 20시간의 교실 교육으로 구글 천재들을 감동시키고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단언했다. 내면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한 차드 멍 탄은 구글의 초기 멤버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수년간 성공적인 경험을 쌓아오던 중 명상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이후 구글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들과 심리학자, 티베트 선승들과 함께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한 새로운 감성지능 강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른바 ‘내면검색’이라 불리는 7주간의 이 교육 프로그램은 구글의 큰 성공을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직원의 내면검색은 HR로 하여금 직원을 쓰다 버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닌 직원과 직원, 회사와 직원, 리더와 직원들의 관계망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의 전환을 가능케 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직원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직원의 행복이 기초가 되어야 몰입이 가능하고 이러한 몰입은 성과로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직내 직원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Back to the basic’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것, 즉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것이 직원 행복의 시작이다. 이러한 요소를 리더와 인사담당자가 깊이 인식하고 논의해보면 어떨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식의 확산이며 실천으로 무엇보다 리더의 솔선수범이 Key Point이다. 이름난 내면 인식프로그램 도입이나 유명한 명상가 영입은 그 다음이다. 한 가난한 아이엄마가 아기 분유를 사기 위해 동네 작은 가게를 찾았다. 가게주인은 이 아이엄마를 늘 딱하고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아이엄마는 가장 싼 분유가 얼마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가장 싼 분유 값은 16,000원. 아이엄마는 몸을 돌려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꾸겨진 지폐를 꺼내 센다. 가진 돈은 12,000원하고 동전 몇 개. 이 상황을 지켜본 주인은 이 아이엄마를 도와주고 싶다. 어떻게 했을까? 주인은 분유 진열대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척하다 분유하나를 떨어뜨린다. 속상해 하며 “이거 팔수가 없게 찌그러져 버렸네! 아이엄마 좀 싸게 드릴 테니 이거 사실래요?” 아이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얼마냐고 묻는다. 주인이 “12,000원만 주세요!”라고 하니 아이 엄마는 12,000원을 건네며 당당하게 분유를 사가지고 갔다. 배려는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 상황에서 주인이 깍아주겠다고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아이엄마가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매니저로서 직원들의 마음을 살필 때에도 이처럼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콘티넨탈은 144년 역사를 가진 독일 대기업으로 폭스바겐, 르노, 포르셰, 다임러 크라이슬러, 포드, BMW, 제너럴 모터스, 토요타, 혼다 등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콘티넨탈 코리아만 해도 2조원 가까운 매출에 한국 직원만 2,500명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조용하지만 위협적인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데에는 HR을 Human Relations로 인식한 기업의 경영철학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지난날 쉬지 않고 달리는 말과 같았던 필자도 지금의 회사에서 하루하루 내면이 깨끗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는 등한시했던 필자도 이제는 직원들의 내면을 검색해보며 그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어루만져주려 노력하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 어떤 성취보다도 직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 훨씬 신이 난다는 사실이다. 기본으로 돌아갈수록 리더십이 날로 성장하는 느낌이다.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유년시절 동네 사람들이 “저 아이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럴까?”라고 할 정도로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그의 할머니만은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 끄는 재주가 있어서 앞으로 크게 될 거야”라며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그 말대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훌륭하게 자라 대중설교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격려는 인생의 위대한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으로 ‘에디슨의 격려’를 들곤 하는데, 그에 따르면 그가 새로운 자동차 엔진을 개발할 때 많은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비웃었는데, 유독 에디슨만은 ‘젊은이 이것은 걸작이야. 자네는 벌써 해 낸 거나 마찬가질세’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격려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숨어 있는 인재가 숨어 있는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힘 말이다. 역사 속에 수많은 리더가 있고 현대에도 많은 리더가 그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면서 리더십이 강조되고, 다양한 형태의 리더십이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의 변천 속에 리더의 기준이나 리더십의 형태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진정한 리더는 변화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 자신의 작은 움직임, 즉 격려의 한 마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해 나가보자. 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명언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영웅이 될지, 지옥에 갈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내 팀을 위해 일하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