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노사가 공동체 의식 가지고 서로 존중하고 양보해야 “현재의 우리 고용·노동관계를 규율하는 법과 제도는 과거 개발경제시대의 노동시장을 지탱해 온 질서들로,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이하 노동연구원, KLI) 원장은 올 하반기 최대 이슈인 노동개혁에 대해 경직된 노동시장에 탄력을 주는 것은 물론 현실에 맞는 효율적 인력운용을 위해서라도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노동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1차와 2차 노동시장의 격차 완화와 공정한 인사관리 시스템의 정착을 통한 새로운 양질의 고용기회 확대에 있다며 이는 노사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완화되고, 차별과 격차가 줄어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력 이동이 원활해지고, 기업들이 활발한 투자를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동시장이 우리의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노사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아 고용노동정책을 진두지휘했던 방 원장은 지난 6월 친정인 노동연구원의 원장으로 돌아옴으로써 다른 방법으로 현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을 지원하게 됐다. 방 원장을 만나 우리 노동시장의 현안에 대한 해법을 들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늦은 감이 있지만) 취임 소감을 전해 달라. ■ 국가·사회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고용·노동정책이 중요한 시점에 노동연구원의 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노동연구원은 고용·노동 분야 국가정책 연구를 선도하고 합리적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나라의 경제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설립목적으로 1988년 개원했다. 나이로 치면 27살이다. 즉, 장성한 성년 기관으로 청년의 때를 벗고 더 성숙하게 사고하고 책임있게 행동하며 국가·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사명에 부합하는 양질의 성과를 활발하게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발경제 50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진정한 의미의 선진 경제사회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그러한 가운데 사회격차의 확대와 중산층의 몰락,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와 장년층의 노후걱정이 어두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고용구조 개선과 노동시장 개혁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연구원은 국가의 Think Tank로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노동연구원의 사령탑을 맡은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간 주요활동에 대해 말해 달라. ■ 국책기관의 사령탑을 맡게 되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앞으로 기관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에 대한 경영계획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이른바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동안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노동연구원 제2의 도약·발전을 위한 비전을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노동연구원은 매년 주요 노동 현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올해에도 ‘임금’, ‘소득분배’, ‘성장’이라는 주제로 개원 27주년 기념세미나를 진행하였는데, 특히 이번에는 세미나를 마치고 진행된 만찬 자리에서 제2의 KLI 도약을 위한 비전선포식이 함께 거행이 되어 더욱 의미가 컸다. 실제로 많은 고위관료들과 원로들로부터 KLI 도약을 위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값진 자리였다. 이와 함께 조직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2개 본부 체계를 고용정책연구본부, 노사관계연구본부, 사회정책연구본부 3개 본부 체계로 조직개편을 단행하였다. 일단은 3개 본부 체계로 가고, 내년 말까지 인적자원연구본부를 추가하여 4개 본부로 확대 개편할 생각이다. 인적자원연구 분야는 노동연구원이 꼭 챙겨야 하는 분야이다. 직업훈련, 인적자원, 일학습병행제와 NCS 등이 인적자원에 해당된다. 청년 일자리 문제도 근본적으로 교육훈련과 사회적 수요의 미스매치가 원인인데, 이 같은 문제와 요구를 인적 자원연구본부에서 소화해 나가고자 한다. 정리하면, 지난 6개월 동안은 노동연구원의 제2의 도약을 위해 토대를 다지는, 즉 조직 정비, 경영 정비, 목표 정비 등 함몰된 부분을 메우고 채우는 시간이었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앞으로도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올해 노동시장에 대한 총평을 내린다면. ■ 올해 우리 노동시장은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그야말로 해묵은 이슈들이나 숙제들이 모두 수면으로 올라와 노사정이 협의하고 합의하는 해로, 나중에 되돌아보면 IMF 노동개혁 이후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해로 평가가 될 것 같다. 시대사적으로 요 몇 년이 한국 개발경제의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다. 다시 말해, 개발경제의 반세기를 지탱해 온 고용이나 노동의 법, 제도, 규율, 문화 등 이른바 질서들에 우리가 한계를 느껴왔던 게 아닌가. 그래서 더 이상은 누적되어온 문제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변화 움직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체계 문제이다. 지금의 임금체계는 과거 개발경제시대의 보상체계로, 지금 우리 기업의 실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리딩 섹터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의 경우는 이에 대한 효율화 작업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이행되고 있다. 비단 임금체계뿐만 아니라 과거 개발경제에 맞춰진 노동법이나 노동 질서들을 지금의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에는 적지 않는 무리가 따른다. 아직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 노동시장 개혁에 관련된 핵심 쟁점들이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올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큰 틀에 대한 노사정 합의가 있었다는 것은 경직된 노동시장에 탄력을 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해로 의미가 크다 하겠다. 갈수록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격차가 커지고 있다.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 우리 노동시장은 10% 가량의 소수의 근로자는 많은 임금을 받고 안정된 일자리에서 보호를 받는 반면 2차 노동시장에 있는 90%의 사람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처해 있다. 이제는 우리 노동시장의 소외된 90%를 생각해야 할 때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동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사안들조차도 주로 10%에 해당하는 대기업·공공 부문 중심의 1차 노동시장에 있는 내부자들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60세 정년제 시행을 위해서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직장은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 중심의 1차 노동시장으로, 즉 9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나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이다. 이번 대타협에 제시된 개혁 의제들이 성공적으로 시행된다면 1차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1차 노동시장의 문이 열렸다고 해서 곧바로 2차 노동시장에 있는 장시간-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상승 이동을 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기업인 원청과 1·2·3차 하청업체들로 이뤄진 중층적 하도급 구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 제조업의 경우 대부분의 신규 인력 채용이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지고 하청업체에서 원청으로 상승 이동해 갈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1차 노동시장의 문턱 낮추기로 새롭게 열린 기회가 90%를 차지하는 2차 노동시장 근로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기회가 되기보다 청년층의 대기업·공공 부문 선호와 줄서기를 더 심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동개혁 후속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혁의 방향을 짚어준다면. ■ 노동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1차와 2차 노동시장의 격차 완화와 공정한 인사관리 시스템의 정착을 통한 새로운 양질의 고용기회 확대에 있다. 즉, 노동개혁을 위한 각각의 의제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사가 서로 양보했을 때 어떠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가에 있는 것이다. 노동개혁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완화되고, 차별과 격차가 줄어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력 이동이 원활해지고, 기업들도 활발한 투자를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서로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동시장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개혁은 기존에 구조화된 사회 시스템, 즉 법·제도·관행·인식 등에 내재화된 이해관계와 기득권을 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일수록 바꾸기가 어렵다.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은 궁극적 목적과 추구하는 가치에 충실하되 기존의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인내심 있는 협의와 협상, 그리고 개혁의 의제를 끊임없이 추진해나가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필요하다. 역사의 경험에 비춰볼 때 개혁에 지름길은 없다. 쉽게 빠르게 하면 일단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겠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격언에도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오래 가고 싶으면 둘이 같이 가라고 했다. 사회적 대타협의 궁극적 가치가 우리 노동시장에 더 많은, 더 좋은 고용을 창출하고 일하는 사람들 간의 격차 해소라는 성과물로 나타나는 것은 대타협 이후 개혁의 의제들을 노사정이 어떻게 신의 성실하게 실천해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여러 개혁 의제 가운데 특히‘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뜨거운 감자다. ‘쉬운 해고’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인데. ■ 쉬운 해고? 해고를 쉽게 한다? 이는 말이 안 된다. 비단 노동조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일차적인 목표는 양질의 인재를 채용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인데, 인재를 쉽게 해고한다는 것은 결코 기업 입장에서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 쉬운 해고의 반대는 어려운 해고가 될 것 같은데 이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즉, 기업이 한 번 채용한 인력은 영원히 가야 한다는 말인데, 이도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이런 것들은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진영의 논리, 프레임의 논리이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공정한 해고가 가능하다는 말로 해석하는 게 맞다. 모든 경영 현장에서는 징계 차원이나 경영상 매우 급한 필요에 의한 차원이 아니라도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직원들이 있다. 성과가 현저히 낮거나, 태도가 불량하거나,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직원들로, 이들 대부분은 다른 직원을 방해하거나 조직문화를 해친다. 그런데도 현행 노동법 체계에서는 경영자가 조처를 하기 어렵다. 실제「근로기준법」에 징계해고와 정리해고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성과에 따른 해고나, 다른 부분에 대한 해고는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저성과자나 업무 부적응자 혹은 근무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 즉 가이드라인을 말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사업 환경에서 경쟁력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조직 경쟁력을 방해하는 저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일반해고의 요건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계에서 ‘쉬운 해고’라고 하는 것은 사용자들이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그 부분만을 확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진영의 논리이고 또 노사 간 신뢰가 없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이다. 당장 내년부터는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가 시행이 된다.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는데, 제도 연착륙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 우리 기업들 대부분이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호봉제를 운영하고 있어서, 임금체계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갈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적잖은 인건비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실제로 임금피크제 도입 혹은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 60세 제도가 시행될 경우, 기업이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전체 인건비 중 10~25%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60세 정년연장은 국가가 고령화 시대에 근로자에게 좀 더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 기업을 설득한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와 노조가 양보하는 게 맞다고 본다. 특히나 앞으로의 정년은 지금의 60세를 넘어 향후 65세 이상으로까지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지의 독자이기도 한 기업 CEO와 인사담당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 일과 일자리에 대한 변화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노동에 대한 수요 또한 갈수록 다양해지고 다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유경제 개념에 기초한 이동서비스인 우버 택시, 기타 불특정 다수의 수요자와 불특정 다수의 공급자 간 용역 서비스 모델들은 기존 노동시장의 기준들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낡은 유물쯤으로 보이게 만든다. 즉, 뉴노멀 시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산업과 시장 수요에 맞는 새로운 노동기준과 규율이 필요하다. 기간제나 파견근로 문제, 하도급 문제, 근로시간 단축과 시간제 근로에 대한 보상과 보호의 원칙 등도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 뉴노멀 시대의 상황을 전체로 비춰 평가되고 개혁의 목표와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뉴노멀 시대의 노동시장과 고용관계를 규율할 새로운 가치로 나눔, 배려, 공존을 주문하고 싶다. 저성장과 저고용이 새로운 정상 상태로 자리 잡게 된다면 성장률을 올려 고용을 창출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기존 일자리를 나누는 노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제한된 노동수요를 어떻게 고른 고용기회로 전환해 보다 많은 사람이 소득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배려하고 원청이 하청을 배려하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배려하는 경영활동과 노사관계가 이뤄져야만 뉴노멀 시대의 사회적 통합과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 물건을 사지 않고 빌리거나 공유하는 ‘공유경제’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시점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궁극적 가치는 결국 공존과 통합이 되어야 한다. 최근 발간된 OECD 보고서에서도 현재 한국 경제사회의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나눔과 배려를 통한 사회적 통합을 제시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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