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창조경영

1988년을 추억하는 드라마에서 당시의 금리 얘기가 나왔다. “금리가 좀 내려서 연 15%인데 목돈 있으면 은행에 넣어두고 ‘따박따박’ 나오는 이자를 받으라”고 이웃에게 조언하는 대목이다. 고성장 시대의 추억일 뿐이다. 엊그제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저성장 추세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잘나가던 중국도 고성장세가 꺾이면서 온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 당국이 6~7%대를 어떻게든 맞춰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그 아래로 내려갔다며 걱정하는 기업인들이 훨씬 많다. 세계는 성장 시대를 마감하며 움츠러드는 모습이다. 저성장이 목표 될 수는 없어 문제는 이런 저성장 추세가 이어지다 보니 기업 내부에서도 이를 주어진 조건 정도로 생각하고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경제성장률이 3% 수준이면 기업도 그 정도 성장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은행 이자 이상의 성과를 내면 괜찮다며 아예 성장 목표도 그렇게 짠다. 그런 계획 아래 최소한의 인원을 충원하고 필수불가결한 투자만 한다는 계획이다. 고만고만한 성장에 만족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애플 같은 회사는 뭔가. 애플이 최근 마감한 3분기 실적은 매출 515억 달러, 순익 111억 달러였다. 전년 동기 대비 22.3%, 30.6% 성장한 것이다. 총 마진율은 39.9%나 됐다. 특히 영업이익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영업 이익의 94%에 달한다. 싹쓸어 담은 사실상의 독식이다. 지난 11일 중국에서 하루 동안 열린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는 또 뭔가. 이날 하루 동안 알리바바가 거둔 매출이 16조5000억 원이다. 한국 연간 전자상거래 규모를 60조원 정도로 보는데, 이의 4분의 1이 넘는 금액을 하루 동안에 벌었다. 이 광군제는 2009년에 처음 생긴 세일 이벤트다. 이런 폭발적인 성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GE, IBM의 변신에 주목해야 많은 회사들이 공급과잉을 핑계로 댄다. 그러나 공급과잉이란 기본적으로 1, 2차산업 상품을 말할 때 얘기다. 생활필수품, 농산품, 제조업 제품에는 공급과잉이 있지만,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지식재산권 등은 얼마든지 차별화로 공급과잉을 피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제조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소프트웨어업체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나, 이미 한 차례 서비스업체로 전환한 뒤 또 디자인업체로 혁신을 꾀하는 IBM의 노력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년을 대비하는 기업 경영자들이 지금 세워야 할 전략은 여전히 성장전략이다. 은행 이자 정도의 수익이 목표일 수는 없다. 신기술에 자신이 없으면 인수합병(M&A) 계획이라도 세워야 한다. 정부라고 다를 바 없다. 나라 경제의 성장이 기업들의 성장전략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장 중심의 전략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산업을 키우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규제라도 하나씩 푸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에 드라이브를 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업가들이 욕심을 내고 정부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돈은 여전히 많다. 어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약 921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성장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답답한 미스매치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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