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먼 옛날, 중원 땅에 법 없이도 살 ‘착한 애’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악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쁜 놈’도 같이 살고 있었다. 무림제패의 야욕에 눈먼 이 ‘나쁜 놈’은 ‘착한 애’가 물려받기로 되어 있는 비기(秘器)를 빼앗기 위해 ‘착한 애’의 부친을 간악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막강괴물이 되어 천하를 발아래 둔다. 깊은 내상을 입은 ‘착한 애’는 심심산골에 숨어서 살고 있던 ‘이상한 녀석’에게 또 다른 비기를 전수받는다. 오랜 세월에 걸친 피땀 흘리는 고된 수련은 필요 없다. 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착한 애’는 단기간의 초고강도 전수 비법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금강불괴가 되어 원수를 찾아 나서고…그 복수의 여정에서 ‘착한 애’는 천하에서 가장 예쁜 여인을 얻게 되고… 스릴 넘치는 엎치락뒤치락 끝에 그 ‘나쁜 놈’을 처치하고 천하는다시 평화를 얻는다. “야 인마! 이런 거 좋아하다가 신세 조진다!” 선생님의 호통에 이은 머리통으로 내려꽂히는 꿀밤 세례에 정신이 번쩍 든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그 선생님이 다시 생각난다. 그때 좀 더 분발하셔서 제대로 매를 좀 드시지, 세상 꼴이 이게 뭡니까?! 선진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어이없는 사건이 자꾸만 터진다. 이런 사건의 배후에는 필시 하이퍼스트롱 악당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내가 나서서 ‘나쁜 놈’을 징치해야 한다. 나야말로 ‘착한 애’니까. 내가 친히 그 악당을 없애야 천하가 다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악당을 징치할 최고의 비법을 꺼내 든다. 먼 대륙에서 건너온 ‘SNS’라는 새로운 비기다. 이 비기는 익히는 데 고통스러운 훈련이나 땀나는 노력이 필요 없다. 더욱이 손오공이 부렸다는 분신술과 비슷한 벌떼 전략이 가능하다. 수만의 키보드워리어가 등장해서 물고 뜯고 씹고 즐기고… 드디어 그 악마의 정체는 낱낱이 발가 벗겨지고 지옥으로 추락한다. 이제 천하에는 새로운 평화가 깃든다. 내가 뭔가 중요한 일을 했다는 뿌듯함에 노곤함마저 행복하게 느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여인을 얻을 차례인가?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다.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나는 또 다른 ‘나쁜 놈’을 찾아 징치하기 바쁘니까. 우리는 무협지를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건의 배경에는 절대 악이 존재한다는 굳건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리고 항상 저것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건 바퀴벌레도 아니고 잡아도 잡아도 그 절대 악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문제는 바퀴벌레가 아니라 그 녀석들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과 그들의 출몰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라는 걸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그걸 바로 잡는 건 복잡하고 힘들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으니까.

고만고만한 그 악당들은 오히려 버림받은 희생양일 수 있다. 오히려 그 악당들은 남들도 다 그러는데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고 믿는 ‘이상한 녀석’일 공산이 크다. 무협지의 세계관에 빠진 우리의 ‘재미’를 위해 하나둘씩 그 희생양을 던져주며 번창해가는 비뚤어진 환경과 시스템을 우리는 애써 무시한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왜? 그건 재미없으니까! 그래서일까? 작금의 상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환경과 시스템은 무협지를 권한다. 그런데 요즘도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무협지를 보는 사람이 있냐고? 있다! 그것도 엄청 널려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진화하게 마련이다. 무협지도 마찬가지이다. 영상시대를 맞이하여 무협지는 화려하게 변신했다. ‘막장드라마’라는 모습으로 말이다. 대한민국을 횡행하는 막장드라마를 반추해 보시라. 그것이 무협지의 진화태가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말 안 되는 상황’이 총집결된 그 드라마의 뒷면에는 악으로 똘똘 뭉쳐진 결정적인 ‘나쁜 놈’이 항상 존재하지 않던가?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반전과 반전의 끝에 결국 착한 애는 ‘나쁜 놈’을 처참하게 추락시키고 세상은 평화를 얻는다. 그런 악당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의 교정은 없이 말이다. 늘 결론은 그 ‘나쁜 놈’이 문제라는 식으로 끝났다. 고만고만한 악당은 바퀴벌레처럼 늘 등장하게 마련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터지는 미국의 총기사고는 아직 그 땅에 숨어 사는 사이코를 아직 다 잡아내지 못해서일까? 어른은 늙고,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다. 자유로운 총기 휴대라는 환경과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사이코 아이는 자라서 또 자동소총을 장전하게 마련이다. 오늘도 산부인과에서 미래의 사이코가 태어나고 있다. 그들의 돌출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안 바뀐다면 말이다. 총기 규제를 하지 않는 미국이 결국 문제인가? 지금 우리는 미국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연결된 풍요로운 사회다. 그런데 이 풍요로운 사회 이면에는 위험사회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 위험사회에 내재된 환경과 시스템을 그냥 두고 보는 당신은 절대 ‘착한 애’가 아니다. 당신도 기회와 여건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나쁜 놈’이 될 수 있고, 종당에는 희생양으로 추락할 수 있는, 무협지와 막장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상한 녀석’일 뿐이다. 이제 악당을 찾아내고 처절하게 징치하고 사과를 받아내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생각 없는 ‘복수사회’는 그만 접었으면 좋겠다. 대충 ‘나쁜 놈’만 잡고 덮어둔다고 안에서 썩는 것이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전혀 ‘자율적’이지 않았던 ‘자율’학습 시간의 그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더 큰 매로 더 세게 때려주시지 왜 그 정도로 멈추셨을까? 그건 그렇고 ‘막장드라마 좀 그만 좀 보시라’고 아내에게 지청구를 했다가 멀쩡한 사람 눈에서도 번개가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따라 그 선생님이 더 그리워진다. 이쯤 되면 인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무슨 사회정의에 대해서 떠들어대냐고 할 만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우리네 회사에 있는 그 ‘문제아’가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회사의 성과를 좀 먹고, 월급이나 축내고 있는 그 ‘나쁜 놈’은 어떤 회사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 친구 없앤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 ‘나쁜 놈’ 하나 없앤다고 해서 모두가 시원해지고 성과가 팍팍 나서 미래를 향해 훨훨 날아가는 회사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문제아를 정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진짜 문제는 그런 ‘나쁜 놈’을 만들어내고, ‘나쁜 짓’을 예방할 수 없는 문화와 시스템이다. 그런데 진심으로 걱정되는 바는 그걸 바꾸는 게 정말 쉽지 않고,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가 그 담당인데. 재미없어도 그거 안 하면 우리가 진짜 ‘이상한 놈’이 될 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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