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INSIGHTⅡ

카메라 필름을 생산하는 두 개의 일본 기업이 있다. 바로 코닥과 후지필름이다. 아날로그 카메라 시대에 세계 필름 시장을 양분했던 기업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코닥은 1980년 이후 아날 로그 필름 사업에서의 절대 강자라는 위치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했지만 시장의 변화보다는 기존 사업의 성과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고, 합작투자나 M&A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는 기존 사업영역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내부역량의 강화 없이 외부역량을 조합해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려고 했던 전략의 실패라고 보여진다. 반면, 후지필름은 과감하게 기존 사업을 포기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나 강점이 있는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사업을 다각화했다. 두 기업의 전략 차이는 사업분야 포트폴리오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코닥은 2000년 필름, 카메라, 디지털카메라 등 기존 주력 사업분야의 비중이 약 3/4 정도였고 이 비중은 2010년에도 약 2/3 정도 유지되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후지필름은 2000년 해당 사업분야의 비중이 약 60% 정도였지만 2010년에는 약 14.7%로 대폭 축소되었고 대신에 평판 디스플레이, 화장품, 제약 등으로 사업확장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코닥은 1992년을 정점으로 매출이 감소하여 2010년에는 약 1/3 정도 수준으로 급감하였고 2012년 결국 파산하였다. 반면, 후지필름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2008년 3월 기준 2조 8천억 엔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아직도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 비슷한 사업분야에서 시작했던 두 기업이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운명을 맞이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코닥을 131년의 공룡기업으로 비유하는 것은 한 분야에서 너무 커진 규모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멸망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1990년만 하더라도 코닥 매출액의 절반에 불과했던 후지필름은 코닥과 비슷한 환경변화에 직면하였지만 사업 다각화 등을 통해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지금도 왕성한 경영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교훈은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에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환경도 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다. 1998년 외환 위기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5% 이상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던 반면, 이제는 3%의 경제성장도 어렵다는 전망이다. 또한 과거에는 저출산을 장려하는 정책까지 펼칠 만큼 고출산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저출산으로 인한 청년, 노동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이외에도 기술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과거에는 노동시장 입직시의 기술이나 숙련을 가지고 은퇴까지 일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빠른 기술변화 속도로 인해 노동시장 입직기의 기술 및 숙련을 가지고는 은퇴까지 활용이 어렵고 재직기에 여러 번의 기술 업그레이드가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노동시장 환경의 변화는 기업의 인사관리에도 변화에 대한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성장세였기 때문에 기술과 경험을 가진 근로자들이 장기 근속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 중의 하나였고 이를 위해 연공급이라는 임금제도가 발달하였다. 또한 기업의 규모도 커지고 새로운 사업분야도 확장되는 등 승진의 기회도 많았기 때문에 근속연수가 차면 자동적으로 승진하는 제도도 운영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이 과거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므로 기존에 운영했던 임금 및 승진제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근속연수가 찼다고 해서 무조건 승진시키기에는 자리도 제한적이고 승진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상승하는 경우 고직급화, 고임금화로 인한 경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시장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적자원 관리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인사관리 패러다임 전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노동시장 입직시의 학력 중심 노동시장 규율 기제에서 학력을 포함한 다양한 능력 및 역량에 기초한 노동시장 규율 기제로의 전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인지적 역량의 대표적인 지표였다. 만일 개인의 학력이 개인의 인지적 역량 수준을 반영하고, 개인의 인지적 역량 수준이 그들의 직업 생활에서의 성과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조건에서는 학력의 인지적 역량이 가지는 긍정적 기능을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학력이 개인의 역량과 보상 사이의 합리적 매개 기제로서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역량과 보상 사이의 관계를 교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는 인지적 역량의 대리 지표로서 작용되던 학력이 직장 생활에서의 인맥 중시 풍토와 연결되어 학맥 혹은 학벌을 형성하고, 학력이 표시하는 인지적 역량 수준 이상으로 학벌의 사회적 위세가 개인의 노동시장 성과에 많은 영향에 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사회 전체가 인지적 역량의 실제 취득 여부와는 상관없이 학력 자체의 취득에 집중하는 학위 효과(Sheepskin Effect) 현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직업 세계에서 더 이상 인지적 역량의 우월함 만으로는 기업과 사회 전체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기업의 수요 측면에서 이미 비인지적 역량, 예컨대 의사소통, 창의성, 기업가 정신 등의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노동 수요에서의 요구 역량이 이미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인지적 역량에만 초점을 둔 노동공급 측면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며, 다양한 비인지적 역량의 개발과 이에 대한 합리적 측정 및 채용, 평가, 보상 등에 대한 활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사관리 패러다임 전환의 또 하나의 축은 재직기의 연공 중심 노동 시장 규율 기제이다. 연공의 경우에는 기업 내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분절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 기업 인적자원 관리에서 개인 및 집단성과 중심으로의 평가 보상 시스템의 변화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주의 임금은 성과급의 확대에만 주로 영향을 미쳤고, 임금체계 자체의 변화에는 아직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 생산직의 경우 기업별 노사관계 아래 대기업의 독점적 이익 분배를 위한 담합 기제로서 연공급적 특성이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개인 및 집단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평가 보상 방식이 유지되는 경향으로 인해 연공급의 성격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기업별로 분단된 노동시장에서의 보상 격차가 확대됐고, 일이 아니라 개인의 속성 특히, 어떤 기업에서 일하는지가 개인의 노동시장 성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직무를 담당하는 경우에도 소속된 기업에 따라 임금 격차가 발생함으로써 직무의 사회적 가치 산출을 어렵게 하며, 이에 따라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가 특히 많이 발생한다. 이는 청년 구직자들의 기형적인 대기업, 공기업 선호 현상에 영향을 미치며 노동시장 입직 시기가 늦어지는 문제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학력과 연공 이외의 실제 직무와 연관된 비인지적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채용)과 실제 성과(평가 및 보상)에서 적절히 기능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처럼 학력과 연공 중심의 노동시장 규율 기제에 의해 운영됐던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의 인사관리가 노동시장의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업별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동시장 환경의 변화와 우리나라 기업들의 과거 인사관리 제도의 특성들을 고려하여 볼 때 몇 가지 공통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연공급에서 나타났던 근속연수 증가에 대한 자동승진 기반 직무관리는 더 이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승진이 될 수 있는 직위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직급화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며 이는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과 같은 비정상적인 퇴직관리 관행이 이루어지고 임금피크제와 같은 단기적인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직무에만 충실하고 자신의 직무에 따라 임금이 부여된다면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법적 정년이 없는 노동시장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상승되는 연공급 성격의 약화 및 완화이다. 연공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상승하는 경직된 임금제도는 기업이 고근속 및 고직급 근로자들을 퇴직 관리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직무급, 일본의 역할급, 독일의 숙련급 등 선진국의 임금제도를 보면 입사 초기에는 어느 정도 임금수준이 상승하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성과에 따라 혹은 직무가치나 역할의 변화에 따라 임금상승이 차등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임금제도도 기존의 경직적인 연공급 성격을 완화시키면서 근로자들의 성과, 직무가치, 숙련 등을 반영한 임금상승이 이루어지도록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집단 중심의 조직관리에서 개인 중심의 인사관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인사관리 제도의 실행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구의 경우에는 애초부터 개인 중심의 인사관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겪을 필요가 없었지만 집단 중심의 조직관리로 시작했던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인사관리 제도의 실행 가능성이 약화되는 문제점을 겪을 수 있다. 기업의 인사관리 제도는 제도가 도입되어 운영된다는 객관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조직의 구성원인 근로자들이 해당 제도를 우리나라 기업의 제도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앞서 살펴보았던 코닥과 후지필름과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코닥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후지필름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주체들인 노사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 환경의 변화와 우리나라 기업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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