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의 세상보기

세계 최강의 투자은행이라는 골드만삭스가 등급을 산정하는 직원평가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줄 세우기식 평가제도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던 GE도 진작에 연간 성과 평가제를 폐지했다. 잘못된 평가제도 때문에 모바일 트랜드에서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제도를 폐지한 지 오래다. 말랑말랑한 문화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신생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쯤 되면 미국 기업 대부분이 상대평가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 같다. 2015년에 Worlddatwork라는 기관에서 재미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대기업을 조사해보니 강제순위평가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12%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12%에 불과하다면 미국에서 성과주의가 추락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딱 10년 전인 2005년, Institute for Corporate Productivity라는 곳에서도 똑같은 조사를 했었다. 그때의 비율은 49%! 49%에서 12%로 추락했다니, 두 조사 결과만 놓고 단순 비교한다면 미국의 기업들이 강제순위평가를 급격하게 폐지하는 추세란 주장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시장의 흐름이 이렇다 해도 골드만삭스, 당신들까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첨병이라는 당신들 마저 신자유주의교의 핵심교리인 성과주의를 버리면 곤란한 것 아닌가? 당신들까지 이런 식으로 신자유주의교를 배신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러면 그토록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었던 성과주의가 종 치고 막을 내리는 것인가? 내 머릿속에 온갖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 하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왜 우리 정부는 이제 와서 공기업에게 성과주의를 도입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이걸 한심한 뒷북 아닌가라고 생각을 한다면, 드러난 껍데기에 사로잡혀 가려져 있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골드만삭스는 매년 5%의 직원을 고정적으로 해고하는 관행을 유지해왔다. 경기나 실적과 무관하게 말이다. 매년 꾸준히 정해진 비율만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소위 ‘물갈이’를 해왔다. 그러면 이 제도마저도 이번에 폐지가 되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올해는 해고의 비율을 훨씬 더 커졌다고 한다. 앞서 말한 GE,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유로운 해고 관행을 가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평가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요구 수준에 미달한다 싶으면 바로 짐을 싸게 만든다. 그러니 평가가 있든 없든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맡겨진 직무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유로운 해고라는 단층이 버티고 있으니 미국기업들의 자유로운 제도 구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업무 성과가 요구 수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해도 해고 자체가 어려운 여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열심히 안 하는 직원에게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다면 기업의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예측한다. 그래서 고용의 유연성이 없으면 최소한 개인이 창출하는 성과에 연동한 차등보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요건이다. 미국처럼 그 자리에서 ‘당신 해고야!’라는 통보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것조차 못하겠다고 몽니를 부린다. 미국도 그런 제도를 없애는 추세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친재벌이나 친기업 정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고 정당한 방식으로 세상을 꾸려나가자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자원은 늘 부족했고 그래서 경쟁이 없었던 적이 없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理想) 사회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주어진 우리네 ‘삶’이다. 우리 신체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새로 생겨나고 성장하고 조금씩 쇠퇴해서 결국은 죽어서 사라져 가는 식으로 적절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만약 이런 순환이 되지 않으면? 결국은 그게 암이 되고 몸 전체가 무너진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그 암의 원리가 그렇지 않은가? 세포 하나가 나 혼자 살자고 끝까지 버티면서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런 구조 말이다. 암이 위험한 이유는 그게 주위로 쉽게 번지기 때문이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입사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그리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법이다. 그걸 인위적으로 막아서 옥석구분 없이 모두를 안고 간다면?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고 조직 전체의 건강도가 저하되고, 결국 서서히 무너져 내려 죽기 마련이다. 서로 맞지 않으면 부부도 이혼을 하는 판에 한 번 채용을 했다고 끝까지 책임을 지라는 요구는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사회적인 약자라고? 그들이 어떻게 약자인가. 그야말로 지금까지 숨어 있던 진짜 갑님이 아니셨던가? 불가에는 ‘사부대중이 원하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농담이 있다. 이건 진짜 모여서 소 잡아먹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현대사회의 ‘계약’이라는 원리가 우리에게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고용이란 건 ‘계약’이다. 정해진 노무를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는 계약이라는 말이다. 이게 좀 온당한 수준에서 지켜져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가 서구와 같으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기업’이라는 존재는 분명히 현대 서구의 발명품이고 계약이라는 특징 위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걸 우리가 배워온 것이다. 더구나 급변하는 환경에서 고리짝 시절에 만들어진 고용계약의 관행과 가치는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성과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외환위기 이후에 강요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급히 베끼다 보니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게다가 공정하고 온당한 평가에 대한 문화나 가치가 수용되지 못하다 보니 옴짝달싹 못 하는 형국에 갇혀 있다. 이게 다 생각없이 베꼈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미국기업들이 평가제도를 폐지한다고 박수 치며 그걸 따라가는 건 또 한 번 ‘생각 없이 베끼기’라는 지뢰를 밟는 셈이다. 그래서 상·하위 성과자의 비율만 고정시키고 나머지는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LG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그런 시도가 평가자들에게 만연해 있는 님비(Nimby)심리를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낸다는게 확인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용기를 내어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이제 우리 모두가 LG의 시도를 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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