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시사터치

이른바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위축된 내수를 더 침체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 한국 사회를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왜 밥값이나 성의로 표현되는 선물가격까지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은 없는 것 같다. 경제력으로는 세계 10대 강국을 넘나든다는 한국은 경제수준에 비해 부패가 상대적으로 심한 국가에 속한다.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만든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 기준 조사대상국 167개국 중에서 37번째로 깨끗한 나라이다. 부패인식지수는 주로 공직사회의 부패 정도를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하는 것인데 가장 깨끗한 나라는 덴마크이며 상위 10개국은 대부분 북유럽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8위이다. 선진국일수록 투명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부패가 적어지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법치국가로 평가받는 독일에서 지멘스와 같은 대기업이 거액의 뇌물공여로 기소되는 것을 보면 부패 척결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에 부패가 만연해지면 광범위한 탈세와 지하경제가 발생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해져 사회적 갈등도 커지며 경제성장도 어렵게 된다. 특히 부패로 인해 커지는 지하경제는 다시 부패를 만연시켜 ‘부패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지하경제가 존재하면 공식적인 시장경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과도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지하경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경제적 혜택에 비해 비용을 거의 부담하지 않는다. 규제로 인한 비용부담을 덜고 공공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기업이나 개인들은 세무나 규제 담당 공무원을 매수하기 위한 로비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부패는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부당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말한다. 민간부문이든 공공부문이든 또는 어느 나라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패는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여겨지는 부패는 대체로 권력을 가진 공적 부문이 민간에 대한 권력행사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제는 시장이 발전하고 경제발전 수준도 높은 한국이 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부패할까? 우리나라 부패의 핵심적인 원인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덕적 의식의 부족과 함께 무엇보다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패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너무 과도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3권 분립은 구조적 부패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 행정부를 대표하는 청와대 및 고위 관료들이 골고루(!) 부패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은 지적 수준이나 도덕적 수준에 비해 선출직이라는 명분으로 너무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보좌관들의 월급을 상납 받고 기업들에 친인척을 취직시키고 자신들의 책을 강매하고 국민들의 혈세를 본인의 돈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은 온갖 특권을 누리지만 감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법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판검사는 파면조차 당하지 않기 때문에 현직에서는 권력을 이용하여, 퇴직 후에는 전관예우로 부를 축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또 다른 진경준 검사가 하나 둘이겠냐는 소문도 무성하다. 관료들은 인허가와 규제를 무기로 ‘공익’이란 이름하에 기업이나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저해하거나 때로는 구매나 사업허가에서 조직적으로 뇌물을받고 이익집단에게 특혜를 준다. 청와대에는 자기 가족의 재산을 지키고 증식하기 위해 열심히 권력을 이용하는 고위직들이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면서 권력을 누리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층들의 구조적인 부패 문제를 그대로 놔둔 채 밥값이나 선물비를 제한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10만 원짜리 밥을 먹다가 3만 원짜리 밥을 먹는다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권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유착관계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투명한 활동인 반면 실제 부패를 초래하는 거래는 훨씬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처럼 부패가 학연·혈연·지연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식적인 법제화로 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다른 부패의 핵심적인 원인은 아직도 한국 경제가 관치경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치경제에서는 정부나 정치권이 규제를 양산하여 시장을 통제한다. 정경유착도 과도한 규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규제는 원래 시장의 작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관료제와 결합되면서 관료와 정부가 민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시장 기능을 왜곡하고 있다. 모든 정권들이 시장경제를 외치고 규제개혁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본인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공공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규제를 만들고 필요 없는 시장 개입을 한다.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 남거나 파산해야 하는데, 정부가 산업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재정지원과 규제라는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정부든 사법부든 정치권이든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경제행위가 된다. 정부나 정치권은 기업이나 이익집단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어 주고 수혜집단들이 만드는 비자금을 대가로 얻는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혈세로 자신들의 득표를 위해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줄이 이어지는 낙하산 인사는 공공기관의 비효율성과 도덕적 해이를 반복적으로 초래하고 있다. 모든 정권들은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나 감사를 통해 실리를 챙기고 정권의 부침에 따라 기업인들은 부정축재자가 되거나 불법정치자금을 만드는 주범으로 몰렸다. 정권 말기만 되면 반복되는 수많은 게이트와 비리사건들은 우리의 부패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대폭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자원배분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도록 작은 정부가 되어야 한다. 부패의 온상이 되는 불필요한 인허가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여 정부의 자의적인 행위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인들을 범법자나 탈법자로 만드는 과도한 규제나 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이 심판자와 조정자가 되어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선별할 것이다. 시장경쟁을 하게 되면 기업은 정경유착을 위한 불법행위를 저지를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관치경제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로의 전면적 전환이 시급하다. 규제를 없애면서 관련 부서를 폐지하고 궁극적으로 공무원 수를 축소해야 규제개혁은 가능할 것이다. 부패 척결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시장경제의 확립, 사회적 형평성 제고 등을 위한 중요한 사회적 목표이다. 한국이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계층 간 갈등이 없어지고 사회적 통합도 높아질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을 모두 폐지하고 이들에게는 일반 국민보다 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판검사도 파면을 시켜야 한다. 청와대의 도덕적 의식도 높아져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 관피아와 정피아를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부패의 뿌리를 뽑는 구조적 개혁 없이 ‘김영란법’은 ‘눈 가리고 아웅하기’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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