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시사터치

세계경제의 장기침체 문제가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고, 한국경제도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기업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개인이나 가계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세금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증세 문제가 20대 국회의 가장 큰 정치 쟁점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1여 년 앞둔 정치권의 증세 논쟁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경제를 걱정하기보다는 정치인들의 주도권 확보 경쟁의 성격이 더 커 보인다. 국민들의 생활은 날로 어려운데 정치인들은 ‘선거놀음’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뿐만 아니라 광역자치단체장들도 지역민들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대선을 위한 자기 홍보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은 벌써 ‘대선정국’에 접어들었고 그 한가운데에 증세 문제가 있다. 증세 찬성론자들에 따르면 증세의 목적은 복지재원의 확충이라고 한다. 증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이명박 정부가 인하한 법인세율을 높이고 고소득층의 소득세율도 높이는 이른바 ‘부자증세’를 주장한다. 부자증세는 국민들의 감성적 동의를 얻을 수 있고 마치 남의 돈을 공짜로 내가 쓸 수 있다는 만족감도 줄 수 있다. 증세를 반대하는 입장은 경제가 나쁘니 증세는 시기상조라고 말하지만 뾰족한 복지재원조달방안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증세는 단순히 복지재원을 조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침체 상태이고 한국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4.6%로 OECD 평균인 34.3%에 훨씬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낮다. 그러나 법인세수의 GDP 대비 비중은 2013년 OECD 평균이 2.9%인 반면 우리나라는 3.4%로 독일 1.8%, 스웨덴 2.6%, 프랑스 2.5%, 미국 2.2%에 비해 훨씬 높다. 법인세수가 총조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0%로 OECD 평균 8.5%, 일본 13.2%, 프랑스 5.7%, 독일 4.9%, 미국 8.8%, 스웨덴 6.2% 등에 비해 매우 크다. 더욱이 우리나라 기업들은 법인세 이외에도 과도한 준조세를 부담하고 있다. 대표적인 준조세인 부담금의 경우 2014년 17조 1,797억 원으로 2015년 법인세 45조 원의 1/3이 넘는다. 준조세는 조세에 비하여 투명하지 않아 국민의 저항이 크지 않으면서 국회의 사후 통제도 별로 없어 정부가 자의적으로 만들어 징수하기 쉽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도 없이 기업에 강요되는 다양한 기부금 및 성금은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니 청년희망 펀드니 기업들이 부담하는 기금들과 후원금들은 너무 많아 실태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정치권의 입장에서 법인세는 상대적으로 투명하여 징수가 용이하고 대기업들이 많은 부담을 지기 때문에 증세가 쉬울 수 있다. 대기업들에 대한 법인세율 인상은 국민들의 ‘반 대기업’ 정서에도 부합할 수 있고 증세 대상이 한정적이므로 부과하기도 쉬울 것이다. 문제는 법인세수는 경기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매우 강한 편이며 기업의 해외 이전이 빈번한 상황에서 자칫하면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것이 상식이다. 기업에 대한 법인세 부담이 증가될수록 기업의 투자는 감소하고 이에 따라 고용이 축소되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외 이전 기업들의 국내 회귀를 촉진하고 해외투자를 자국 내로 유치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011~2015년에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북구 복지국가들은 법인세율을 인하하였고 미국은 국외 생산기지를 국내로 이전하면 법인세율 35%를 28%로 인하해준다. 향후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복지재원을 충당하려면 증세가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침체기에 법인세율을 인상하면 경제활력을 저하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경기가 더 침체되면 조세수입이 늘지도 않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재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조세개혁을 통해 조세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고 과세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업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법인세율의 인상보다 각종 세제혜택의 효과가 불투명한 현행 기업 지원제도를 합리화하고 간소화하는 것이 세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세수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과세기반 확충과 소득세제의 단순화를 위해 소득세 관련 각종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면서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득세율은 인하해야 한다. 상대적인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세율인상보다는 공제대상 및 공제규모를 축소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가가치세는 세율인상보다는 면세․영세율 대상을 축소하고 면세 및 감면제도를 정비하여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과중한 세금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일자리를 줄이며 지하경제를 확대시킬 수 있다. 납세자들은 본인들의 세금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소득신고를 기피하거나 거짓으로 신고하여 탈세를 할 유인이 커진다. 납세자들의 세무공무원들에 대한 로비가 많아지면서 부패도 확대될 수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지하경제의 비중이 크고 탈세가 많으며 경제 수준에 비해 공무원들의 부패 정도도 심한 나라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복지재원의 확충을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면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목표로서 복지정책의 비전과 내용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또한 복지를 위한 재정지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필요로 되는 재원확보를 위한 증세 방안에 대한 합의를 구하는 것이 순서가 될 것이다. 법인세든 소득세든 증세는 국민 모두가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증세찬성론자들은 ‘부자증세’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부자증세는 결국 서민들의 생활만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경기침체의 피해자는 결국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일반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서 그대로 드러났듯이 현재까지 많은 복지정책이 국민의 필요와 복지국가의 일관된 비전에 의해 시행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주먹구구로 시작되다 보니 사업마다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포퓰리즘으로 만들어진 정책을 감당할 수 없으니 이제 와서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행태는 한국 정치권의 후진성과 무책임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치인도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고 그나마 파편적인 사업들이 대부분 무책임한 선거 공약으로 남발되면서 이로 인한 세금부담만 국민들이 그대로 떠안고 있을 뿐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섣부른 ‘증세정책’은 국민적 저항과 경제침체 및 복지지출 증가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국민부담률과 복지지출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증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획득하는 것은 어렵다. 납세자들이 증세의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해 명백하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지재원은 확충되어야 한다. 증세를 주장하기 전에 부적절한 수급자를 양산하고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 있어 혈세가 낭비된다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는 복지지출의 효율성도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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