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INSIGHT

신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학급을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부를 결성하는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지목해 반장이나 학생회장을 시키던 이야기는 언제부터인가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로 전락해 버렸고, 지금은 정치인 선거하듯 지지를 호소하고 또,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나름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간부로 선출되는 시대가 되었다. 중학생인 딸아이에게 요즘 학생회 임원이나 반장선거에 출마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경쟁률이 궁금해서였다.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대략 5~7명의 아이들이 후보로 나선다고 한다. 요즘 1학급의 학생 정원이 대략 35명 전후인 점을 감안하면 꽤 많은 아이들이 출마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회 임원이나 반장을 한다고 해서 용돈이 나오거나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어찌 보면 귀찮을 수도 있는 봉사직에 아이들은 왜 이리 몰려드는 것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이는 반장과 같은 직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출마해도 당선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런 봉사직에는 원래부터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그런 선거에 출마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친구들하고 경쟁하기 싫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 평소의 우리 딸아이의 성격을 보는 듯한 답변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럼 다른 친구들은 왜 저렇게 반장이 되고 싶어 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학생기록부에 올라가잖아!”라고 대답을 한다.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동아리 리더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학생기록부에 올리기 위해 반장이나 학생회 임원을 원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그 이야기를 마누라에게 해 주었더니 마치 외계인 보듯이 나를 바라본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당신만 모르고 있다니 참 한심하네요!’ 하는 눈빛이다.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중학교만 들어가도 특목고를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해야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대학 수시전형을 위한 스펙 쌓기에 열중해야 하는 것이었다.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모두가 한 번쯤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학생회 간부를 희망한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회에서 벌어지는 관리자 기피현상으로 문득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근 10년을 생활하고 있는 선배가 있다. 본인은 “일부러 승진하지 않는 거야!”라고 힘주어 말하고 다니지만 주변에서는 능력이 부족하니 승진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조직에서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그 선배는 탁월한 실적으로 조직 내부에서도 꽤나 인정을 받고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일부러 승진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임원으로 진급해서 단명을 하느니, 직원의 신분으로 장수를 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받을 수도 있는 스트레스가 싫었던 것이다. 내 위에 방패막이가 있는 것과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차이는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직원인가?’하는 주변의 불편한 시선만 의식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직위가 천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많은 기업들이 관리자가 되기를 꺼려하는 실력자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요즘은 모든 기업들이 나이가 차면 무조건 승진을 하고 관리자로 승격이 되는 인사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전문가의 길만 걸어도 충분히 보상을 해 주는 듀얼 코스를 설치해 두다보니, 조직관리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은 실력자들이 대거 전문가의 길을 선호하는 현상이 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는 때가 되면 승진을 시켜줘야 하고, 통솔하는 부하직원이 없다 하더라도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견장문화를 고집하고 있다. 이처럼 한 템포 뒤처진 인사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기업도 사실 적지가 않지만, 그래도 최근 많은 기업이 앞다투어 듀얼레더의 인사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견장을 달지 않으려는 실력자들 때문에 예상치 못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견장을 원치 않는 실력자분들에게 아무리 싫어도 견장을 탐해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큰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말이다. 한 분야를 잘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너무 건방진 생각이다. 조직이란 부분과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서로 간의 톱니가 맞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낼 수도 없을 뿐더러 내가 맡고 있는 분야도 결국은 지치고 소진이 되어 정지되어 버리고 만다. 설계사무소에서 전문기술사로 10년째 건물 설계를 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그는 자기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전문자격증까지 여러 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 전달되는 주문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부분만 놓고 보았을 때는 손색이 없는 실력이지만 갈수록 주변 인프라와의 하모니를 중요시 여기는 건축환경의 변화를 고려했을 때에 전체와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전체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관리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길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보다 많은 인원을 다루어 보았을 때, 비로소 사람의 다양성에 대한 고찰이 확대 가능하다. 학습지 회사에서 10년째 방판영업을 하고 있는 친척 동생이 있다. 발군의 실력으로 20대 젊은 직원들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본인 개인 실적도 최고를 자랑하는 등 조직 내에서는 꽤나 인정을 받고 있던 도중에 새로 입사한 30대 후반의 주부 사원 3~4명과 의견충돌이 생겨 조직을 나오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시니어 팀의 리더 제의가 왔을 때 그들의 입장을 경험해 둘 걸 그랬어…….” 하고 후회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물론 필자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기회가 왔을 때 동료가 아닌 매니저의 입장으로 사람에 대한 경험을 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은 아닐 것이다. 조금이라도 조직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는 아집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자칫 갈라파고스 섬에 갇혀 불행한 최후를 맞는 종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저 아이들도 견장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데, 하물며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의 우산 아래 계속 머물러 있고 싶어 한다면 조직 내에서의 성장에 대한 가능성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여전히 “그런 것에 관심 없으니 나를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한다면, 삶의 가치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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