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에는 밝음과 어두움의 다툼만 있을 뿐이다. 뒤엉켜 혼돈한 것은 어두움이고 활짝 열린 것은 밝음이다. 난세는 어두움이고 치세는 밝음이다. 소통은 밝음이고 불통은 어두움이다. 맑지 못한 물은 썩어 버리고 밝지 못한 거울은 형상을 비추지 못하며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운무 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풍몽룡(馮夢龍 1574~1646, 중국 明代의 문학가)

 

“이게 나라냐.”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퍼지고 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사람은 정치적 동물임이 분명한 것 같다. 설마 했던 풍문들이 사실로 보도될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괴감이 든다. 일찍이 불법(佛法)에서 상식의 실천을 미증유(未曾有)라 설파했다. 미증유는 지금까지 없었다는 뜻이다. 상식의 실천이 그만큼 어려운 일일까?

중세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시민으로서의 인간이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하는 계기는 결국은 인간의 집단 자각(自覺)이었다. 그 자각은 집단의 경험과 학습에서 시작되었고, 그 매개체로 활자의 보편화가 핵심역할을 했다. 서양의 시각에서는 징기스칸의 침공 등이 그 계기가 되었음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활자의 전달과 인쇄술의 발달, 그리고 이를 통한 정보의 전달과 공유가 인간의 자각을 이끌어 내었다.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과 집단 그리고 집단 내 구성원 간의 소통수단과 소통 콘텐츠의 발전이 시민인간으로의 사회적 진화를 가져온 원동력이다. 인류문명의 발전 과정은 소통체계(커뮤니케이션)의 발달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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