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쥐다. 두 딸아이 사이에서 양쪽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하는 박쥐아빠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고등학생, 중학생 이들 두 아이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클럽 사이에 상대방 연예인을 비난하는 논쟁이 붙었는데, 양쪽 팬들의 싸움이 방송에 보도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전이가 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저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하면서 상대방이 지지하는 아이돌그룹의 인간성에 대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각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미묘한 라이벌구도가 형성되면서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싸움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문제는 이럴 때면 항상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며 자신의 편에 서달라는 눈빛의 질문이 나에게 날아온다는 것이다.
초보 아빠 시절에는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아이의 편에서 한쪽을 지지해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도 얼추 경험이 쌓이다 보니 누구 하나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둘 다 맞아!”라고도 하지 않는다. 줏대 없는 아빠로 몰리며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큰애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작은애 너의 말이 100% 맞아!”라고 말하고, 작은애가 없을 때는 “큰애 너의 말이 100% 맞아!”라고 말하며 따로따로 편을 들어 줘야 탈이 없다. 최대한 신속 하게 상대방이 눈치를 못 채도록 큰애가 옳다고, 작은애가 옳다고 편을 들어주는 박쥐아빠가 되어야 한다.
이런 박쥐생활은 다른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처갓집 가족모임이 있어 다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마침 현 시국과 관련하여 TV에서 보수와 진보의 목숨을 건 토론방송이 보도되었고 이 논쟁이 우리 집에도 그대로 옮겨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80을 바라보는 장인어른은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극보수주의자이고, 40을 조금 넘은 처남은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할 정도로 극 진보주의에 가깝다. “좌파들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장인어른의 말에 처남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말씀은 법이요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겐 장인과 처남 두 부자지간의 한치 양보 없는 논쟁이 처음에는 참 신기했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처갓 집의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어떻게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저렇게 대놓고 반박을 할 수 있지?”하는 생각을 하며 이런 논쟁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