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당시 노동전문 기자였던 로버트 레버링의 연구에 따르면 훌륭한 일터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상사에 대한 신뢰(trust),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pride) 그리고 동료와 함께 일하면서 느끼는 재미(fun)다. 이 가운데 재미를 구체적인 실천운동으로 만든 것이 바로‘펀 경영’이다. 펀 경영의 대표적인 예가 직원들이 함께 모여 상사와 편하게 대화하는 호프데이 같은 것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개최한‘수퍼스타 S’도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펀 경영은 우리 사회에 적합한가. 이런 의문을 감추기 어려운 것은 결국 비즈니스란 성과 중심이고 그런 만큼 일하기가 즐거운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데 집중해야 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다. 필자는 펀 경영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정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뻔뻔 문화’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뻔뻔문화는 이스라엘의 벤처문화를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핵심 단어인‘후츠파(chutzpah)’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후츠파’는 주제넘은, 뻔뻔스러운, 철면피, 놀라운 용기, 오만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스라엘만의 고유단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라면서 어디에서든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올바른 가치기준이라고 배우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 외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이 정신은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높이고 최고의 결정을 내리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창업국가』의 저자 사울 싱어는“유대인이 두 명 있으면 의견은 셋”이라며“뒤에서 수근 거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쓸데없는 심리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어는 책에서 인텔 이스라엘 연구팀이 미국 본사 임원들을 상대로 수개월간 설득한 끝에 마침내‘센트리노 칩’ 개발 결심을 받아낸 사례를 소개하며“도전적이고 혁신적인 태도의 밑바탕에 깔린 것이 바로 후츠파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구글, 페이스북 등 벤처문화를 바탕으로 한 신생기업이었다. 이들의 유연성을 배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뻔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장이 신제품 모델 몇 개를 놓고“이거 어때?”했을 때 과감하게“별로입니다!”라고 자기주장을 밝힐 수 있는 간부들이 얼마나 될까‘? 찍힐까봐’말 못하고 몸을 사리는 직원들이 더 많은 건 대기업에서 흔히 보는 조직적 병폐다. 펀 경영도 좋지만 최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때로는 단기적인 불편을 감수하는‘뻔뻔 경영’‘, 뻔뻔 문화’야말로 우리 대기업이 시급하게 시도할만한 일이 아닌가 한다. 혼자하면 금방내릴 수 있는 결정도 딱딱한 조직에서는 빙빙 돌게 되고 결국은 왜곡된 결과를 낳게 된다. 딱딱한 조직을‘펀 경영’으로 녹일 것인가, 아니면‘뻔뻔 경영’으로 부술 것인가. 후츠파 정신 혹은 뻔뻔 경영을 위한 기반이 우리에겐 거의 없다. 여전히 직급을 버리지 못하고 상의하달의 의사결정에 익숙해있다. 그러나 이건 절대로‘펀 경영’같은 것으로 부수기 어렵다. 차라리 직함 없애기, 맞장토론 등의 시도가 나와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시도해보면 반갑겠다.

  권 영 설 한국경제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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