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유별나게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다. 같이 입사했던 친구를 유별나게 괴롭혔던 선배였는데, 다른 후배들에게는 다정다감했던 그 선배는 유독 입사동기인 내 친구만 못살게 굴었다. 그렇다고 군대식으로 얼차려를 한다거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신적인 압박을 가했는데, 친구가 가장 힘들어했던 고통은 언어 폭력이었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언어폭력이 심했다. “어떻게 너 같은 X가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대학 졸업해서 이런 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 “너희 부모는 도대체 뭘 가르친 거냐?” 등의 언어 폭력이 하루가 멀다고 이어졌다. 그런 날엔 상심해 있는 친구 옆에서 “잊어버려, 그래도 우리가 영원히 저 인간하고 같이 지낼 건 아니잖아?”라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위로를 던지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유독 친구를 괴롭혔던 선배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본인 말로는 아주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며 마지막날 거하게 저녁을 쏘긴 했지만, 다른 루트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평소에 그 선배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 부서장이 지방발령을 내려고 하자 사표를 내고 경쟁사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중요했던 건 괴롭히던 선배의 사슬로부터 풀려난 내 친구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자유인이 되었고, 다음 해 회사에서 보내는 유학프로그램에 선발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 갔다. 회사 지원으로 MBA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니 어떻게 바보 취급받던 사람이 갑자기 우수사원에 선발이 될 수가 있나요?”라고 의아해한다. 모두가 짐작했겠지만, 사실 그 친구는 바보가 아니다. 똑똑한 친군데, 그 선배에게 찍혀 질질 끌려가다보니 바보라는 오해와 함께 진짜 바보가 되어가는 현상이 조금씩 발생했던 것뿐이다.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갈 뻔했지만, 그 선배의 퇴사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올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윗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래 사람은 천재가 될 수도,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를 통해 피그말리온 효과가 무엇인지를 바로 옆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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