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띠동갑 친구와 함께 네르하를 떠났다. 나의 다음 목적지는 투우와 플라멩고의 도시 세비야였다. 네르하에서 세비야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어서 띠동갑 친구와 말라가까지 같이 갔다. 그녀는 말라가에 남아 네르하와는 다른 해변을 느낄 계획이라고 했다. 서로의 여행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며 인사를 나눴다.

뒤돌아서면서 그녀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 다. 한국에서 나는 딱히 내키지 않아도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보자.”라고 말하곤 했다. 진심으로 다시 보고 싶어서 말할 때도 있었지만 일부는 습관적이고 의무적이었다. 그 책임감에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억지로 나가 상대방에게 좋지 못한 기억을 선사한 적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 떠돌이 생활을 했던 탓에 추억을 공유할 친구들이 없었다. 지금까지 연을 맺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대학 진학 후에 만난 친구들이었다. 가끔 동네친구를 만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불나방처럼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동호회, 봉사활동 등도 취지보다는 만남에 더 집중했다.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않았다. 그런 기준 따위도 없이 무작정 만났다. 만나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어서 지인들에 게는 굉장한 주당으로 각인되었다. 다음날 숙취에 누렇게 뜬 모습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덕분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이 한없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 길이와 비례해 무엇인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울적해졌다. 쓸데없이 떠들어댔던 모습을 후회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다음에 봐!”라는 약속 아닌 약속에 코가 꿰었다.

여행지에서는 서로가 너무 쿨했다. 좋은 추억은 그 시간, 그 공간에 묻어두는 편이 현명하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물론 그녀와의 시간이 힘겹거나 나쁘게 기억된 것은 아니다. 프리힐리아나와 네르하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에서 나눈 이야기들도 뇌리에 콱 박혀 1년이 훌쩍 지난 현재 이렇게 글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바쁜 탓도 있었고 너무 좋은 추억이었기에 덧칠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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