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울렁거리니까 거대한 담론들이 남발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관심도 없는 4차 산업혁명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주요 화두다. 실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일단 책이 팔리고, 그 단어로 만든 다큐멘터리는 공중파고 인터넷이고 뷰의 숫자가 올라 간다. 어린 시절, 공부 안 하면 거지 된다는 어른들의 겁주기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한국인에게 ‘공포 팔이’는 너무도 잘 통하는 것 같다. 그렇게 자라나서 직장이라고 들어왔더니 우리 사장님은 ‘올해가 사상 유례없는 위기’라는 이야기를 매년 반복한다. 아마도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야 뭐라도 바뀔 거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차분하게 되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은 ‘혁명(Revolution)’이라기보다는 ‘진화(Evolution)’에 가까웠다. 수십 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전환을 어떻게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지금 전개되고 있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유발 하라리가 앞으로는 매년이 혁명 같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스마트폰 혁명 이후의 전환은 10년째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래도 당장 1년 후를 예측하지 못하는 그런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변화는 지난하게 펼쳐지는 전환의 과정에 적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아닌 자는 도태되는 진화의 과정이다. 그런데 그런 진화의 스토리가 어제오늘의 일인가?

나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우리나라는 잘 안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 다. 이처럼 죽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가 딱 잡힌 인적자원들이 있는데 뭔들 안 되겠는가! 수험생은 물론이고 취업을 위한 준비도 세계 에서 가장 ‘빡’세게 하고 있다. 게다가 직장인들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어든 뭐든 열심히 공부한다.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에 별 소용 없는 공부만 하고 있다는 지청구가 있지만 무시해도 될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배워야 할 것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아니 죽도록 공부하는 자세가 딱 잡힌 그 ‘공부근육’이 우리네 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그 창의성이란 문제를 가만히 생각해보자. 잘나간다는 미국의 모든 근로자가 창의적인가? 미국을 방문해본 사람 은 다 안다. 입국장에서부터 융통성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원칙주의를 소름 끼치게 느낄 수 있으니까. 미국 근로자의 대부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수준의 원칙주의를 넘어 경직적이다. 그런데도 인구 숫자가 많으니까 극소수의 특이한 인간들이 창의성을 발현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 모두가 창의적이면 얼마나 피곤하겠나!? 그건 무료한 세상에서 탁월한 창의성을 갖춘 소수의 인력이 향신료처럼 첨가되어야 세상이 풍요로워 지는 거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창의성이 없다고 걱정할 것은 아닌것 같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에게 창의성의 싹이 없는 게 아니라 창의 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문화와 시스템의 부재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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