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보상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직무급이 탈출구라는 주장은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되던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변변한 대기업이 없어서 정부와 공기업이 앞장서서 도입을 시도했는데 무려 50년의 세월이 흐르고 전 세계에 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이 상당수 출현한 오늘날에도 같은 주장이 반복되고 있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그 사이에 정부는 물론이고 상당수 기업들이 전환을 시도했지만 실패만 반복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론은 도외시한 채 또다시 직무급 전환의 구호만 무성해지고 있다. 정부도 나서서 NCS를 발표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자신들부터 여전히 직급과 근속연수에 의해서 보상을 하고 있다. 최근에 다시 부상하는 직무급에 대한 열기를 보고 있자니 과거의 기술이나 시스템을 빨리 베껴서 선진국을 추격하던 패스트팔로우 전략이 생각난다.

가치관이나 감정이 없는 기술이나 시스템은 그게 된다고 쳐도 인사제도가 그리 쉽게 카피가 될까? 전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런 열풍을 일종의 ‘파랑새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를 봐도 미국과 전혀 다른 그들 나름의 보상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도 수십 년째 직무급을 도입하려고 애썼지만 특별한 결과가 없다. 더구나 미국도 경직된 직무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보완적인 보상제도를 개발하고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상제도는 전형적인 경로의존성의 문제일 수도 있다. QWERTY자 판이 불합리의 극치이지만 합리적인 자판으로 전환하지 않고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보상제도가 혁명을 하듯이 그리 쉽게 바꿀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말이다. 세상의 어떤 제도도 사회적인 맥락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우리의 보상제 도는 대규모 공채제도와 순환보임이라는 두 가지 큰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한번 생각해보라. 10년 혹은 20년 전에 똑같은 조건으로 대졸공채로 입사를 했고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회사의 명령에 따라 순환보임을 하다가 지금은 구매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직무급을 도입한다고 마케팅을 하는 동기생보다 더 적은 연봉을 준다고 하면 그게 온당하게 받아들여질까? 그렇다고 올해부터 입사 하는 친구들부터 직무급을 도입한다고 치면? 당연히 순환보임이라는 제도를 포기해야 한다. 가치가 낮은 직무로 이동은 거부할 거니까 그렇다.

순환보임, 그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순환보임을 통해 거시적인 통찰을 가진 경영진을 자연스럽게 양성해왔다. 여러 직무를 다양하게 경험한 CEO 후보는 우리 조직 내에 여럿이 있다. 30년씩한 가지 직무만 계속해온 사람들만 조직에 가득한 미국 기업은 포괄적인 통찰력을 가진 임원이나 CEO를 내부에서 구하기 어렵다. 동양의 기업을 부러워한 미국 기업들이 벤치마킹을 한 게 ‘전략적 CDP’라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특정한 직무전문가로 묶어 놓고 회사 내에서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면서 더 큰일을 맡을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으니까 회사를 때려치우고 MBA를 간다. 다른 직무 지식과 회사 전반의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미국 대학에 MBA과정이 천지이고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서 그걸 이수하려는 학생들도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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