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의 무모한 여행기
만남은 언제나 끝이 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 날씨가 포르투갈에 이어 마드리드에서도 계속되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쌀쌀했다. 가을이 원래 고독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외국에서 홀로 맞는 이 시간은 왠지 더 싸늘했고 힘겨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몸이 천근만근인 데다가 오한이 와서 덜덜 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봐주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여행객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기는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서럽기 그지없었다.
침대에서 몸을 못 떼고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내내 함께 다녔던 수진 씨가 이제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떠난다며 저녁을 먹자고 한 것. 한국에 돌아가서도 만나고 싶었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본 친구가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행지에서는 집중할 일이 여행자체 밖에 없지만 생활터전으로 돌아가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고 했다. 친구의 말이 떠오르니 더 안 만날 수 없었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20여 일 동안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동행을 딸랑 SNS 메시지 한 문장으로 인사하고 보내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서 식당까지 가면서 몇 번을 주저앉았다 일어났다. 하도 누워 있었던 탓인지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30분이나 걸렸다. 다행히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수진 씨와 스페인 전통 쌀 요리 파에야(Paella)와 피자, 맥주 등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나눴던 이야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서로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수진 씨는 자신의 여행과 닮아 있었다. 해야 할 것이 명확했고 남들이 다 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크게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포기했다. 영어도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따로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혼여행을 하면서 불편함도 크지 않았고, 꼭 필요한 영어는 다 통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