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는 지구인이 아닌 게 분명하다”

미국 스포츠 전문 미디어 데드스핀닷컴의 4월초 기사 제목이다. 평소 일본 야구를 한 수 아래로 치부해왔던 미 언론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건 매우 이례적이다. MLB닷컴은 “투타를 겸하는 오타니가 개막 첫 10경기에서 투수로는 2승을 거두고 타자로는 3경기 연속 홈런을 친 건, 지난 1919년 워싱턴 세너터스의 짐 쇼 이후 99년 만의 일”이라며 감격하기까지 했다.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는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가 아니다. 프로야구 니혼햄에서 뛰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그는 일본 현지에선 이미 ‘야구 천재’요 ‘야구계 괴물’이었다.

고교 1년 재학 시절 147km/h, 2학년 때는 151km/h, 그리고 3학년 때는 아마추어 사상 최초로 160km/h라는 강속구를 던졌다. 프로선수가 된 이후엔 일본 야구 사상 최초로 165km/h의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홈런이 타격의 꽃이라면 160km/h는 모든 투수가 갈망하는 꿈의 구속이다. 오타니는 그걸 3학년 때 이뤄냈다.

현재 LA 에인절스 소속 오타니의 활약상이 연일 일본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 야구팬들의 뇌리에도 그에 관한 기억은 뚜렷하다. 지난 2015년 도쿄돔에서 열린 한일 간 ‘프리미어 12’ 준결승전에서 한국 타자들이 오타니에게 속절없이 무너지던 모습이 그것이다. 일찍이 그런 강속구를 접해 본적이 없으니 우리 타자들이 못 치는 게 당연했다. 오타니가 야구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는 데는 강속구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니토류(二刀流, 두 자루의 칼)’ 선수라는 점.
▪둘째, 여타 선수를 압도하는 신체조건(신장 193cm, 몸무게 92kg)을 가졌다는 점.
▪셋째, 유키구니(雪国), 즉 눈이 많은 지역에선 뛰어난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일본 야구계의 상식을 깼다는 점(그의 고향은 동북지방인 이와테(岩手)현이다).

이외에도 오타니가 사람들 사이에서 꾸준한 관심을 끌며 회자되는 게 하나 있다. 혹시 뭔지 아는가? 그건 고교 1학년 때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목표 달성 계획표(만다라트)’다.

“먼저, 오를 산을 정하라”

소프트뱅크 CEO 손정의가 한 말로, 목표의 소중함을 잘 대변해주는 경구다.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할지도 모른 채 아무 방향이건 전력 질주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정작 가야할 목표와 되레 멀어질 뿐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오타니는 일찍부터 자신이 가야할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여기에 많은 노력을 쏟아왔다. 그의 목표 설정은 여느 사람과 사뭇 달랐다. 고교 1년 재학 시절 “나는 장차 프로 야구선수가 될 것이다”라고 오타니는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단순히 목표에만 그치지 않고, 졸업 시엔 일본 ‘8개 프로 구단’에서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 받는 선수가 될 거라는 확신까지 피력한다. 그리곤 이를 뒷받침 할 세부 실행 계획까지 세운다. 그 점이 여타 선수들의 목표와 결정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오타니는 18세부터 70세까지 1년 단위로 치밀한 인생 계획표도 세워뒀다. 예를 들면, 18세에 MLB 입성해 25세엔 175km/h의 공을던져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다. 28세와 31세, 33세엔 각각 장남과 장녀, 차남을 낳는다. 38세엔 성적 하락을 이유로 은퇴 준비를 시작해 40세에 은퇴하고 41세에 귀국, 42세부턴 미국 야구시스템을 일본에 소개한다. 57세에 프로야구계를 떠나 66~69세엔 세계여행, 70세 이후론 매일 운동으로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스포츠 심리학자 코다마 미츠오(児玉光雄)는 오타니에 관해 이런 평가를 한다.
“오타니는 ‘나는 할 수 있다.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여기는 신념, 즉 ‘유능감(有能感)’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덕분에 주위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꿈을 관철할 수 있었다.”

스승과의 운명적 만남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준 스승 기를란다요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린 미켈란젤로의 걸작들과 만나지 못했다. 작가이자 교육자이며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헬렌 켈러. 그녀에게서 스승 앤 설리반을 지운다면 어떻게 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인생과 그 영광 이면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오타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60km/h라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게 된 건, 하나마키히가시고교(花巻東高校) 시절의 스승이었던 사사키 히로시(佐々木洋) 감독의 지도 덕분이라고 힘줘 말한다. 사사키 감독은 오타니에게 대체 어떤 지도를 했기에 프로 선수도 힘든 160km/h의 강속구를 고교 3학년 때 이미 던질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사사키 감독의 한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160km/h의 공을 던져본 적이 없어 오타니에게 그 방법을 가르칠 순 없었다. 허나 지도자로서 가르쳐야 할 건 공을 치는 법이나 던지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이다. 신체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있어도 생각하는 법까지 모조리 상실하는 경우는 없어서다.”

당시 160km/h 공을 던질 수 있는 현역 투수는 일본에 없었다. 인터뷰 내용에도 나오는 것처럼 사사키 감독 자신도 선수 시절 160km/h라는 강속구를 던진 적이 없었다. 그랬던 감독은 공 던지는 기술보다는 ‘생각하는 법’을 오타니에게 가르치려고 힘썼다.

제자가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도록 이끌어주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구체적인 생각이 바로 오타니가 고교 1학년 시절 작성한 계획표 만다라트 (Mandal-art)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사사키 감독은 이런 말도 했다.

“나는 프로 야구선수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꿈과 목표, 그리고 결의(決意)가 구별되지 않아 꿈을 이루는 비결을 몰랐다. 예를 들어 ‘비만이라 살을 빼고 싶다’라는 건 목표가 아니라 결의다. ‘오늘은 이 만큼의 칼로리만 섭취한다’가 목표다. 그렇게 하다보면 반드시 결과가 수반 된다. 이런 건 덧셈이나 곱셈보다 초등학교 때 먼저 배워야 할 기술이 라고 생각한다.”

꿈과 목표, 결의를 반드시 가지돼 그걸 혼동해선 안 된다는 게 감독의 지론이다. 스승 자신의 과거 경험과 깨달음, 이를 통한 확고한 가치관과 가르침이 제자에게 전수되면서 작금의 오타니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건 인생의 크나큰 행운이요 축복이다. 오타니에겐 특히 그랬다.

덧셈과 곱셈, 어느 쪽이 쉬울까?

하나 물어보자. 일상에서 덧셈(뺄셈)과 곱셈 중 어느 쪽 계산에서 더 자주 실수를 범하는가? 절대 실수하는 일은 없다고? 그런 독자에겐 어리 석은 질문이지만, 분명 덧셈(뺄셈)과 곱셈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씩 틀리곤 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곱셈보다는 덧셈(뺄셈)에서 이따금씩 실수를 한다. 어째서 그럴까?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곱셈은 덧셈이나 뺄셈과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달달 외워둔 ‘구구단’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서다. 즉, 반자동적으로 셈이 이뤄지기에 곱셈을 실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우리 생각에도 구구단과 같은 것이 있다. 바로 ‘발 상법’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그 수는 무려 백 여 가지에 달한다.

발상법은 흐릿하거나 간과하기 쉬운 생각까지 말끔히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평상시 두뇌 훈련에도 대단히 효과적이다. 여기선 오타니 선수를 만든 발상법, ‘만다라트’를 자세히 소개한다. 이 발상법은 디자인 컨설턴트 이마이즈미 히로아키(今泉浩晃)가 1987년에 고안했다. 방사형 모양으로 쭉쭉 가지를 뻗어가는 또다른 발상법 ‘마인드맵’이 혼란스럽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이뤄야 할 핵심 사안(주제) 1가지를 맨 중심에 두고 그 외곽에 8가지로 발상 범위를 제한한 이 기법은 누구건 쉽게 다룰 수 있다. 사람 뇌가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대략 7±1 가지라고 한다. 때문에 약간의 머리 사용(?)만으로도 여덟 칸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채울 수 있다.

진행 방식은 심플하다. 종이 위에 커다란 사각형 하나를 그린다. 3 × 3, 즉 사각형을 아홉 칸으로 나눈 다음, 맨 중심 칸에 현재 고심하고 있거나 기획하고자 하는 주제를 펜으로 적는다. 단어든 문장이든 상관없다.

그런 다음 해당 주제를 통해 떠올린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에 필요한 내용 등으로 여덟 칸에 하나씩 채워 나간다. 모두 채웠다면 그림 1처럼 동서남북으로 사각형을 그리고 도출된 8가지 아이디어(주제)를 그 중심에 두고 다시 여덟 칸을 채워 나간다.

만다라트에선 한 가지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8가지 세부 목표가 세워지고, 또 8가지 구체적인 실천 계획으로 나눠지면서 확장된다. 즉, 핵심 목표 하나를 이루고자 합계 64가지의 행동 계획이 만들어진다.

물론 애타게 찾는 아이디어나 기획안이 도출되기까진 다양하고 섬세한 검토를 거쳐야 하고 최종적으론 실현 가능성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허나 만다라트는 그 전제가 되는 수많은 대안(발상)을 여느 발상법보다 쉽게 떠올려준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다. 만다라트의 용도는 목표 설정과 발상만이 아니라 사업 기획(계획), 문제 해결, 상품 개발 등 무궁 무진하다.

오타니가 그린 만다라트!

이번엔 오타니가 작성한 계획표를 살펴볼 차례다. 사사키 감독의 지도 아래 고교 1년생 오타니는 대원칙과 세부 목표를 기록한 ‘목표 달성 계획표(만다라트)’를 만들었다. 당시 그가 세웠던 목표를 점검해보면 MLB 최고의 투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확연하다.

먼저, 오타니는 프로야구 ‘8개 구단 드래프트 1순위’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세부 목표 8가지(몸 만들기, 제구, 구위, 스피드 (160km/h), 변화구, 운, 인간성, 멘탈)를 설정했다. 이어 세부 목표 당 8가지씩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했다. 이런 64가지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통해 8가지의 세부 목표를 이뤄가고, 결국엔 하나의 원대한 목표에 다가선다는 거다(그림 2 참조).

고교 3학년이 된 오타니는 마침내 160km/h 강속구를 던지며 일본 야구계를 뒤흔든다. 분명한 건 그가 우연히 160km/h라는 엄청난 성과와 조우한 게 아니라, 명확한 생각과 구체적 실천의 결과물이란 사실이다. 이어 2012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한다. 오타니 자신이 꿈꿔왔던 계획표대로 이뤄졌다.

위 계획표에서 단연 눈에 띄는 점은, 운(運)을 목표 달성에 필요한 세부 목표의 하나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6살짜리 인생 풋내기가 운을 떠올렸다는 자체가 꽤나 흥미롭고 대단하다.

초점을 잠시 바꿔보자. ‘운’이란 대체 뭘까?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과 기수(氣 數)’ 즉, 태어나면서 이미 규정됐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수동적 조건이나 환경을 우리는 흔히 운이라 부른다.

이런 운의 정의를 그대는 동의 하는가? 운동(運動), 운전(運轉), 운행(運 行), 운반(運搬) 등의 한자어를 유심히 살펴보라. 맨 앞에 붙은 ‘운’이란 글자가 의미하듯 운은 모두 움직임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런 운은 대체 누구에 의해 제어되고 움직이는 걸까? 물론 자신이다. 그런 점을 풋내기 오타니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능동적 존재인 운을 불러 내 편으로 만들고자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세운다. 인사하기를 시작으로 쓰레기 줍기, 부실 청소, 심판 대하는 태도, 책읽기, 응원 받는 사람, 긍정적 사고, 도구를 소중히 사용 등 8가지 방안이 그것이다.

통찰력을 지닌 스승의 지도력과 이를 통해 키운 생각의 힘은 야구 천재 오타니를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꿈들로 가득했지만 그런 꿈이 생각의 힘과 만나면서 현실이 되었다. 계획성과 생각의 힘이 가지는 무게를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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