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창조경영
20여 년 전 외환위기 와중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책은 제목부터가 익숙하지 않았다. 평생직장일 줄 알고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들이 명예퇴직,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떨고 있을 때, 바로 그런 믿음과 헤어져야 한다고 주문한 구본형의 외침은 울림이 컸다. ‘얼굴 없는 회사원’으로 살았던 많은 직장인들이 큰 파도를 겪었다. 평범한 회사원들이 결기를 다진 데 비해 기업 세계에선 변화가 적었 다. 돈을 버는 조직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야말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모양이다. 투자할 돈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익 창출이 불투명한 신규 사업보 다는 매년 일정한 매출을 올려온 기존 사업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새 사업 배치를 ‘유배간다’고 여기는 풍토에선 좋은 인력도 구하기 어렵다. 부서의 영향력이 매출과 비례하다 보니 부서장들은 절대 기득권을 놓지 않는다.
익숙한 기존 사업이 성장 걸림돌
모든 정보를 알고 경쟁사 동향도 꿰뚫고 있을 것 같은 기업 세계에서 하루아침에 기존 업체들이 쓰러지는 일이 생겨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가진 업체가 나타나면 기존의 질서가 단번에 파괴되기도 하는 것이다. 휴대폰이 나타나자 ‘삐삐(페이저)’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고, 디지털 카메라 앞에 아날로그 필름은 자취를 감췄다. 익숙한 것이 한 번에 파괴되는 것은 기업 세계에서 더흔한 일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우월적인 기술이 출현해 기존 기술을 무너뜨리는 것을 ‘창조적 파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처음에는 열등한 기술이어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놀라운 가격경쟁력으로 어느 순간 기존 사업을 쓸어버리는 것을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른다. 파괴당한 업종은 간판조차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