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나 한잔 하러 갑시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커피숍으로 향한다. 요즘에는 사업 파트너를 만날 때도 주로 커피숍을 찾는다.‘내가 커피를 이렇게 좋아하나?’라고 다시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커피는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져버린 음료이면서도 이면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커피의 시대 커피는 이제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점심 먹고 식곤증을 쫓아야 하고, 파트너와 회의를 해야 하며, 프로젝트를 끝내려고 밤을 새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을 다 소화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커피가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6천억 잔 이상이 소비되어 석유 다음으로 교역이 많은 음료가 바로 커피다. 커피 생산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의 커피시장 규모는 약 2.7조원(2010년 기준)으로 연간 117억 잔이 팔린다.1) 성인 1명당 연평균 312잔에 해당하는 양이다. 주요 커피전문점 8개 브랜드매장의 수는 1,300여 개에 이르러 이미 과포화상태이지만 계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근의 전체적인 경기상황과는 역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커피가 한국의 소비자들을 열광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 한잔 시켜놓고’ 소비자들이 충족하려는 욕구는 과연 무엇일까? 근대의 원동력이 된 ‘이성’의 음료 커피는 8~9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후 중동(11~12세기), 유럽(17세기)을 거쳐 아메리카,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한국에서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최초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17~18세기 계몽주의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커피는 지식인 계층의 인기를 받으며 ‘이성의 시대’를 상징하는 음료로 각광을 받게 된다. 커피의 인기에 힘입어 1650년 옥스퍼드 대학 내에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생겼는데 폐쇄적이던 귀족 중심의 클럽과는 달리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 최신 뉴스와 고급 정보가 자연스럽게 유통되며 다양한 주제의 토론과 비즈니스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어 과학자, 자본가, 상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음으로써 산업혁명이 가능하게 만든 시대적 분위기를 제공했다고 한다. 커피는 ‘대화’를 위한 매개체 현대의 커피는 카페인 음료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매개체로서의 기능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트렌드모니터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들과 주로 커피전문점에서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에는 35.6%의 응답자들이 커피전문점에서 약속을 잡았던 것에 비해, 2010년에는 전체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47%)이 커피전문점에서 만남을 가졌다. 커피전문점은 단순히 ‘고급 커피만을 파는 곳’이 아닌 ‘지인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에게 커피전문점은 ‘카페인 성분의 음료’를 마시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친구나 동료, 연인, 가족들과 대화하는 장소다. 특히 ‘소셜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이 점차 중시되면서 사람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에 거금을 마다하지 않는다. 커피가 비싸다고 불평하면서도 수요가 줄지 않는 것은 소비자가 커피에 부여하는 가치가 가격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안락한 의자와 은은한 커피향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음악. 소비자는 거기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한때 ‘파노플리 효과(effet de panoplie)4)’와 ‘된장녀’ 등으로 대표되는 과시욕의 충족 수단으로 해석되면서 사회적인 논란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코피스족(Coffee+Office), 카페브러리족(Caffe+Library)5) 등처럼 각자의 니즈에 따른 방식으로 커피전문점을 이용하고 있다. 커피 한잔을 통해 나오는 혁신 아이디어 사실 조직에서도 이러한 커피 플레이스가 필요하다. 이제 업무가 대부분 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구글이나 P&G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업무를 하는 공간에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다. 다른 부서와 협업을 하고 동료들과 잡담하고 교제하면서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근대 유럽에서 ‘커피하우스’가 지식과 정보, 아이디어 교류의 장으로 기능했던 것처럼 업무영역의 경계를 넘어 적당한 긴장감과 재미를 함께 누리다보면 활력이 넘치는 조직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박 예 진 한경아카데미 연구원 yejin@hankyung.com
- 2011년 10월호, 제80호
- 입력 -0001.11.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