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리더에게

정주영 회장은 타고난 사업가인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과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도로 위를 달릴 차가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자동차 사업을 구상했다. 자동차 사업을 하려다 보니 막대한 외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배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선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조선업도 종자돈이 있어야 시작하지 않겠나. 그래서 영국 바클레이 은행을 찾아갔다. 거기서는 한국이 배를 건조할 기술이 있느냐고 물었다. 정 회장은 지갑 속에 있는 500원권을 떠올리고 거기에 그려져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벌이고 있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외환사정이 어려워지자 이란 정부는 당시 자신들과 거래를 하고 있던 대우의 김우중 회장에게 5억 달러를 빌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 김 회장이 은행을 경영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줄 수는 없었으나 바로 거절하기 어려워 재무전문가를 보낼 테니 의논을 해 보라 하고 귀국했다. 김 회장은 현재 아주대학교 재단(대우학원) 이사장으로 계시는 추호석씨를 불렀다. 이런 사정이 있으니 이란으로 좀 가보라는 것이었다. 추호석씨는 영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임무는 뜻밖이었다. 그래서 “왜 저를 보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하튼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만 했다. 추호석씨는 이란 정부 관리를 만나 이렇게 물어보았다. “5억 달러는 왜 필요합니까? 어디다 쓰려고 하는지요?” 이란 측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건을 사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추호석씨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무역회사입니다. 돈을 빌려줄 수는 없습니다만, 당신들이 원하는 물건은 사드릴 수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5억 달러어치 물건 리스트를 만들어 주시면 그 물건을 찾아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물건 값은 형편 닿는 대로 갚아주십시오.” 이란 측에서 이 말을 듣고는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은 팀을 만들어 한국으로 왔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리스트도 가능한 대우가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대우가 이문을 남길 수 있는 걸로 만들 수 있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리더는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때마다 상황판단을 잘 해야 한다. 신규 사업을 한다거나, 인수합병을 한다거나, 경영자를 영입한다거나 할 때는 순간의 판단 미스가 엄청난 피해를 줄수밖에 없다.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살다보면 정주영 회장이나 추호석씨처럼 순간순간 ‘그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기도할 때나 꿈속에서 계시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리더가 의사결정을 할 때 판단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름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리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남의 지혜와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리더가 혼자 많이 알면 얼마나 많이 알고, 현명하면 얼마나 현명하겠는가. 다행히 리더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조직 내 부하직원도 있고 외부에 인맥도 있다. 그들 중에는 리더 자신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판단력이 좋은 사람도 있다.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비서와 보좌관, 장관을 두고 그러고도 모자라 그때그때 전문가들을 만난다. 최근에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있었다. 그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결코 대통령 혼자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수많은 회의와 대화를 거치고 있다. 대통령은 그 과정에서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정 참모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 젊은 사원 들에게 조사를 시키고 연구를 하게 할 수도 있다. 외부 전문가로부터 용역보고를 받을 수도 있고 주기적으로 전문가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필자도 CEO나 임원들의 이런 자리에 여러 번 참가한 적이 있다. 리더들은 낯선 사람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관점을 접하기도 하고 또 통찰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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