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의 무모한 여행기

혼밥, 혼술, 혼영(혼자 영화보기) 등등. 평소 혼자 하는 걸 즐기는 편이었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는 문화가 요즘처럼 보편화되지 않을 때부터였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에게 원망을 듣기도 했다. 80일간의 혼여행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조지아 메스티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침묵의 여행

트빌리시에서 전날 오후 9시 15분에 출발해 메스티아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오후 2~3시 경이었다. 편도 이동 시간만 약 15시간이나 걸렸다. 1분 1초가 소중한 여행자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길 위에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게다가 미리 계산된 것도 아니고, 나라와 나라를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정말 속상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트빌리시가 마음에 들어 구석구석을 보고 싶었던 욕구가 필자의 화를 돋우었다.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이 가득 찬 마슈르카(조지아의 교통수단)에서 메스티아를 가보라고 추천한 친구를 원망하기도 했다.

메스티아 가는 길, 그 아름다운 풍경(지난 호 참조)을 보지 않았더라면 다른 의미에서 이번 여정은 평생 잊지 못했을 것이다. 두고두고 화를 돋우는 곳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메스티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메스티아는 매우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걸으면 얼마 안 걸려 마을을 다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포장된 도로도 마슈르카가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옮겨다는 길과 그나마 마을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스바네티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정도뿐이었다.

예약을 해둔 게스트하우스는 큰 길에서 안쪽으로 한 블록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비에 젖은 비포장도로의 냉기가 스니커즈의 얇은 밑창을 타고 올라왔다. 이미 진흙바닥이 된 길을 조심스럽게 지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한국인 여행객에게 꽤나 좋은 평가를 받는 곳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영어는 잘 하지 못하였지만 손님을 극진히 환대했다. 10월 말 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이라 그런지 숙소에는 여행객이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숙소 마당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서 묵게 되었다.

짐을 풀어놓고 보니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전 내내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대로 숙소에만 있을 수가 없었 다. 차가워진 날씨에 맞게 단단히 챙겨 입고 나왔다. 검색해보니 스바네티 박물관이 이곳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안 그래도 한적한 마을에서 스바네티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더욱 한적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한국에서 내려받은 노래를 들으며 걸으니 더욱 정취가 있었다.

마을 언덕배기에 있는 스바네티 박물관은 마을 분위기와는 달리 신식 건물이었다. 천천히 구석구석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근처 학교에서 견학을 온 모양이었다. 어느 나라나 아이들은 참 천진 난만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랑곳없이 박물관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정신이 없었지만 그 소란이 싫지만은 않았다.

스바네티 박물관은 역사박물관이다. 이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잘 옮겨 놓은 듯 했다. 꼼꼼하게 둘러 보고 나오니 비는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로로 길게 난 창으로 보이는 그 모습은 영화나 흑백사진 작품 속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동네가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 다. 문득 그때까지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사람이 한 마디를 안 하고도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목적지는 잃고, 목적은 찾고

메스티아에 도착한 날은 묵언수행을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꼭 필요한 말 외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으면서도 시간이 느리게 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샀다. 점심 때 먹고 남은 하차푸리를 야식 삼아 먹을 생각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식욕이 왕성했는데도 음식을 남겨 싸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반나절을 마슈르카 안에서 가만히 있는 그러나 화가 나 보이는 동양 여행자한테 미안했는지 기사 할아버지가 식당에서 필자 몫까지 주문하고 계산한 것이었다. 필자는 그것도 모르고 또 주문했고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넘쳤 다. 같은 마슈르카를 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도 남은 빵을 따로 챙겨왔다.
그것을 이렇게 요긴하게 챙겨 먹을지는 몰랐다. 마침 두바이 친구가 챙겨준 고춧가루까지 있어서 낯선 나라 낯선 음식에서 낯익은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치자 숙소 앞마당이 온통 하얗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날은 유럽의 히말라야라고 불리는 우쉬굴리를 가려고 했었다. 전날 여행사(?)에 가서 우쉬굴리에 가고 싶은데 차가 있냐고 하니 우선 가격을 비싸게 부르고 보는 것이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던 탓인지 비싸도 가려고 했더니, 갑자기 다른 단체 손님들 가는 차량에 자리가 빈다고 그걸 타면 된다고 한다. 가격도 인원 수 만큼이나 줄었다. 득템이라고 좋아했는데 눈으로 인해 모든 일정이 틀어졌다.

메스티아에 오면서 모든 것이 흔들렸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야할 곳은 못 가고,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시간이 지나가기 를, 눈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사실 우쉬굴리는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은 메스티아보다도 도로사정이 더 열악하 다. 산길을 따라가는 거라 위험하단다. 평균적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사망사고가 난다고 하니 겁쟁이 여행자는 무모해질 수가 없었다. 그 사고가 필자를 피해가라는 법이 없으니. 데려다 주겠다는 택시 운전사의 은밀한 거래가 있었지만 모험을 포기하고 조용한 이 동네에 머물기로 했다.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빌려준 등산화를 신고 동네 여기저기를 빨빨대며 다녔다. 얇은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 걸 언제 보았는지 방에 조용히 놓고 간 신발이었다. 오래된 신발이라 그런지 차가운 물이 새어 발을 적셨지만 빌려준 사람의 마음이 더 따뜻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메스티아는 전날보다 더 조용했다. 크지 않은 동네라 금세 마을 경계에 도달했다. 그 뒤로는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그 벌판길을 걸어 소들이 어슬 렁어슬렁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주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몰라도 소들이 알아서 길을 잘 찾아오고 있었다. 그 소를 보는데 10년 동안 무념무상으로 회사를 왔다 갔다 했던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가 종용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야 하는줄 알고 길 따라 일 하러 가고, 길 따라 다시 돌아오는 소와 같았다.

눈물이 핑. 소가 불쌍했고, 과거의 필자가 불쌍했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자고 결심했다. 목적지는 잃을 수 있어도 다시는 목적을 잃고 살지는 말자고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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