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저작권 클리닉

Q. 언젠가 재미작가이자 영어교재 저술가로 유명한 조화유씨가 자신의 영어교재에 대한 저작권 침해 혐의를 두고 출판계 사상 최고액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끝에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원래는 6억 원을 청구했지만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모씨 등에게 2억 6,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원고 측 변호사는 “모씨가 받은 인세가 2억 9,500여만 원인데 재판부가 그와 비슷한 금액을 인정한 것은 보통의 경우보다 저작권 침해 부분을 높게 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손해배상 금액은 어떤 기준에 따라 산정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권리의 침해란 ‘정당한 권리자의 승낙이나 동의 또는 권리의 양도 없이 그 권리의 목적물을 이용함으로써 권리자의 권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작권 침해 역시 저작물을 이용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사유에 해당하는 것을 뜻하며, 저작권법에서는 그러한 침해사유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민사상 구제와 형사상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민사상 구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침해행위정지청구권, 손해배상청구 권, 명예회복청구권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저작재산권의 제한규정에 따라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경우나 저작권의 보호기간이 끝난 경우, 상속인이 없거나 법인이 해산된 경우 또는 저작권의 포기 등으로 권리가 소멸된 경우, 그리고 법정허락에 의한 경우 등에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위법이라고 할 수 없어 권리침해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반면에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허락받은 이용조건이나 범위를 벗어나서 이용했을 때나 저작재산권의 제한규정에 허용된 목적을 벗어나서 이용했을 때는 권리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손배상청구권’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저작재산권 등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 그 권리를 침해한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그때의 손해금액은 침해자가 침해행위로 인해 얻은 이익의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을 살펴보면, 침해행위 당시에 피해자에게 저작권이 존재할 것,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을 것, 권리침해에 따른 위법성이 있을 것, 권리침해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을 것, 권리침해와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고 이를 피해자 측이 입증할 수 있을 것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 다음에 가해자의 침해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의 범위가 산정되는 것이다.

아울러 저작재산권 등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침해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을 저작재산권자 등이 입은 손해액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는 저작인격권 이외의 권리를 고의 또는 과실로 침해한 사람에 대해 저작재산권자 등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침해자가 그 침해행위에 의해서 이익을 얻었다면 그 이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저작재산권자 등이 입은 손해의 금액으로 추정한다는 뜻이다. 또한 저작재산권자는 그 권리 행사로 권리자가 얻을 수 있는 통상 금액을 손해액으로 삼아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일 저작권사용료가 10% 수준인 단행본 1만 부를 5,000원의 가격으로 무단출판한 사람에게는 500만 원을 손해액으로 삼아 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밖에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재판부는 여러 정황을 참작해서 그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 저작물의 무형적 특성으로 인해 저작권 등이 침해된 것이 틀림없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피해자가 아무리 입증하려 해도 자신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Q. 요즘 서점에 가보면 과거 외국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았던 시절에 경쟁적으로 펴낸 중복 출판물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아무리 원작이 같다고 해도 어쩌면 번역까지 이렇게 비슷하게 했을까 싶은 책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얼마 전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어느 번역도서의 대리번역 파문과 함께 유사도서 발행의 문제가 출판업계의 쟁점으로 부상한 적이 있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만 보더라도 아예 제목과 내용까지 똑같은 번역물이 번역자와 출판사만 달리해서 버젓이 팔리곤 했던 것이 현실이다. 원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번역상의 오류는 물론 교정상 오류 부분까지 똑같은 것으로 보아 번역자가 원저작물을 놓고 새로이 번역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번역물이 당당히 서점을 점령했던 것이다.

이처럼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출판사와 번역자는 “그 표현에 있어서 동일 또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 라도 이는 동일한 원작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연의 일치”라고 항변하거나 “그 같은 모방은 출판계의 오랜 관행”이라고 해명하는 것이 당시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비슷한 사건에 대해 내린 법원의 판단(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제16부 1988.3.18. 87카53920판결, 일명 ‘꼬마철학자’ 사건)을 보더라도 전체적인 문맥의 연결 및 문학성을 고려하여 원문 자체를 상당히 의역함에 따라 원문에는 없는 부분이 첨가되거나 원문의 내용이 삭제된 것, 즉 의역 및 창작 또는 오류 부분까지도 수백 군데에 걸쳐 동일 또는 유사하게 나타난 것은 엄연한 ‘표절’이자 ‘저작권 침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유사한 번역도서끼리 어느 쪽이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해답이 나올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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