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시사터치

2018년이 저물어 간다. 문재인정부가 일자리정부를 표방하고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고용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10월까지 취업자 증가수가 9개월 연속 10만 명을 넘지 못하고 고용률도 9개월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0월 기준 실업률도 3.5%로 2005년 10월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다고 한다. 취업포기자도 늘고 증가된 취업자들조차 불안정한 단기 근로를 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내년에도 어둡다. 국내외 기관은 2019년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전반으로 하향 조정하 였다. 국민들의 소득도 소비심리도 정체되어 있고 미·중 무역 갈등과 불안정한 신흥국 경제 등으로 인해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규제혁신을 통한 혁신성장을 외치지만 이미 규제개혁을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나갔고 기업들은 투자의욕을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한국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한국경제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국민들과 많이 다른 것같다. 대통령이 대북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경제는 어려움이 가중되었고 서민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청와대정부라는 별명까지 얻은 현재의 청와대 주도 국정운영 시스템에서는 책임총리도 이미지 포장에 불과해 보인다. 결국 한국경제의 실타래를 푸는 것은 경제 부총리라기보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의 참모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부동산규제를 부동산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제문외한을 정책수석으로 임명하고 사람만 좋고 리더십은 없다는 평가를 받는 바지사장 같은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것은 한국경제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처럼 청와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실제 정책을 집행해야 할 행정부는 힘이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이념적인 논쟁에만 몰두하면 한국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청와대는 여전히 임금주도성장,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 경제 등 개념과 관계도 불분명한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경제침체와 일자리 대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나서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실현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혁신 성장·공정경제가 있다고 국민들을 가르치면서 성장론에 대한 소모 적인 논쟁만 촉발시켰다. 국민들에게는 한국경제의 성장론이 무엇 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나 소득주도 성장이나 포용적 성장이나 모두 정치적 용어이며 국민들에게는 아무 차이가 없다. 대통령의 성장론이 무엇이든 일자리가 많이 늘어 나고 주머니 사정만 좋아지면 된다. 정부가 제대로 된 ‘성장론’이 없어 경제가 나빠지고 일자리가 줄어 드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마치 대학교수처럼 개념을 설명하고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정책과 사업으로 그리고 수치로 성과를 보여주면 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돈을 푸는 것 이외에는 아무 정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각 에서는 정부가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제성장이란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든 결국은 소득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소득격차도 완화되어야 한다. 실제 경제성장과 평등한 분배는 모든 현대 국가의 목표로 두 마리 토끼에 비유된다. 시장은 자유경 쟁으로 인해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가 비시장적 정책수단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하여 시장경제의 불평등을 완화 하는 것은 모든 정부의 공동적인 정책 프레임워크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시장소득분배는 한국의 시장소득분배보다 불평등하다. 다만 복지에 기반한 소득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이 완화될 뿐이다. 물론 스웨덴 국민들은 이를 위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지불한다.

지금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창하는 포용적 성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에서 유행했던 개념이다. 포용적 성장은 소득분배 개선,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지만,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는 것이 국제기구들의 보편적인 주장이다. 세계은행은 포용적 성장을 위해 소득재분배보다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증가를 강조한다.

아시아개발은행은 포용적 성장이란 빈곤층들이 동등하게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경제적 기회를 주는 성장, 즉 광범위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성장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유럽발전전략으로 포용적 성장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Europe 2020’을 추진하면서 높은 고용수준, 투자확대, 빈곤퇴치, 노동시장 현대화, 직업훈련, 사회보 호시스템 보장 등을 위해 경제구조의 혁신에 노력하고 있다.

결국 포용적 성장은 일자리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은 포용적 성장을 위한 동력이자 소득격차를 줄이는 수단이 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없이는 포용적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포용적 성장이 소득재분배를 위한 개념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이 비판을 받으니까 포용적 성장으로 용어만 바꾸었다는 비판도 있다.

포용적 성장은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라는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며 이를 위해 규제개혁도 추진하고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도 늘리는 것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정부가 돈을 풀어 성장률을 높이고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포용적 성장이 아니다. 포용적 성장은 현금을 무조건 나눠주는 정책도 아니다. 포용적 성장은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실패한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일자리를 가지고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일자리도 없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좀 더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야 포용적 성장도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도 1년 반이 넘어 내년이면 집권 3년차에 접어든다. 이제까지의 전례로 보면 대통령의 레임덕이 이제 서서히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남북문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고 경제정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인기를 유지한 비결은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상 한국의 대통령이 강대국 사이에서 실질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국제관계를 풀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북한과 같이 예측불허의 상대를 한국정부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내일이라도 당장 남북관계가 발전될 것처럼 보였지만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현재와 같이 지지부진한 것은 이미 예측되었던 결과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통령의 노력은 지속되어야겠지만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만큼 대통령이 한국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경제를 살리는 것은 어렵다. 대통령이 국내에 산적한 경제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잦은 외유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선 자국민들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북한과의 문제도 순조로운 해결이 가능하다.

이제는 자신의 ‘성장론’이 옳다고 강변하면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민들과 논쟁하는 것을 멈추고 구체적인 실적과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때이다. 어차피 대통령과 청와대가 좋은 경제적 성과를 거두면 자연스럽게 국정철학이나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념의 정당성은 용어나 선한 의도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이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이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이 높으면 저절로 신뢰가 높아지게 된다. 이제 대통령과 청와대가 먼저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멈추고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아마도 그동안 북한에 쏟은 정성과 관심의 절반만 경제에 집중하면 빠른 속도로 경제를 회복할 수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 살리기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시장에 좋은 시그널이될 수 있다. 기업이 권력의 눈치 보기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당당한 경제주체로서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좋은 일자 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 살리기에 매진하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과 포용적 성장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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