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리더에게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는 복싱선수로서 필수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 했다. 주먹 크기, 팔 길이 그리고 펀치력 등이 다른 선수들 보다 못 했다. 그가 프로로 전향한 후 경기를 가질 당시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Sonny Liston)과 비교할 때 더욱 그러했다. 도박사들은 1964년 두 사람의 경기를 7:1이나 8:1로 리스턴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쳤고, 그래서 경기장은 반밖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리스턴의 전설적인 주먹은 맥을 못 췄다. 알리는 민첩한 발놀림과 유연한 상체 움직임으로 상대의 주먹을 피해 다니며 가끔 잽과 연타를 번개같이 날렸다. 경기는 6회 후 리스턴의 기권으로 끝났다.
이렇게 시작된 알리의 권투는 곧 전설이 된다. 1960년부터 1981년 까지 21년의 선수 생활을 통해, 57승 37KO, 5패의 기록을 남겼고, 통산 19차 타이틀 방어, 세 차례 헤비급 챔피언 등극이라는 대기록을 남긴 무하마드 알리. 그는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권투선수로서 약점이 많았지만 그 약점에 연연하지 않고, 남이 갖지 못한 자신만의 강점을 갈고 다듬었던 것이다. 민첩함, 유연성, 그리고 두뇌플레이 능력이 강점이었다. 모두가 펀치력을 키우고 있을 때 그는 풋워크로 피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모두가 난타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는 심리전으로 맞섰다. ‘나비같이 날아 벌같이 쏜다.’ 그는 이런 유연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A씨는 영업사원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언변이 좋지 못 했고 또 술을 잘 못 했다. 의사소통 훈련도 많이 받고 어린이들처럼 웅변학원도 다녔으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려면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고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영업은 반 이상이 술 실력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시원치 않았던 것이다. 대신 그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나 메모는 잘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술은 못 해도 운동은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노트에 꼭 메모를 하고 그 메모를 근거로 또박또박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이나 그래프 같은 자료를 잘 모아서 고객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노력을 기울였다. 말 잘 하는 동료들은 A씨처럼 열심히 메모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객들에게 적당히 둘러대는 경향이 있었다. A 씨는 이들과는 달리 말수는 적었지만 항상 근거 있는 이야기를 고객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또한 A씨는 술자리보다는 운동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조기 축구나 등산도 하고 모임의 총무도 하면서 회원 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었다. A씨의 영업실적은 사내에서 단연 톱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강점을 긍정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