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국제강사협회 협회장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경력. 그럼에도 김건희 강사는 여전히 젊다. 당차고 자신감이 넘친다. 오랜 교육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자인 씽킹’ 기업교육 프로그램 등 새롭고 혁신적인 강의 영역을 개척하는 데 주저함 없을 뿐 아니라, 국제강사협회를 이끌며 동료 강사들과의 상생과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실력과 자신감 그리고 강사로서의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그의 오늘은 주목받기 충분하다.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는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도움과 힐링을 준다.’ 청중의 삶에 활력소가 될 여행 같은 강의를 목표로 기꺼이 ‘가이드’ 역할을 자임하며 강단에 서는 김건희의 스토리, 아직 진행형인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가벼운 인사말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하고, 재치에 반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에 반합니다’라는, 그의 강의를 접한 한 청중의 피드백이 결코 과장되지 않음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부모님께서 제게 큰 키와 좋은 목소리를 주셔서인지 마이크를 잡으면 청중들께서 금세 집중을 잘 해주신다. 다만 낯설고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가벼운 농담 한마디를 건네곤 한다. 이름이 ‘건희’다 보니, 청중들에게 ‘성만 ‘이’로 바꿨으면 더 좋았을텐데요’라 말씀드리면 폭소가 터진다. 교육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농이고 청중들은 즐거움으로 기꺼이 받아주신다.”

강연장을 무대 삼아 청중과의 호흡을 먼저 생각하는 베테랑 강사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강사 김건희의 처음은 어땠을까. ‘될성 부른 떡잎’을 그의 유년 시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1남 4녀 중 막내. 언니와는 무려 11살 차이 나는 늦둥이였다. 그러다보니 보니 조금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는 버릇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것 같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아버지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마흔이 넘어 얻은 막내딸의 종알종알 수다를 아버 지는 항상 잘 들어주셨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청중에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어린 시절부터 해온 셈이다.”

또래보다 성숙한 말솜씨를 뽐내던 그는 대학 시절 과외나 학원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서 능력을 발휘한다. 학부모들은 모두가 “가르치는 게 천직”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외와 학원 강사로 안주하기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하고자 입시학원을 개원했고 차츰 강의대상을 성인으로 넓혔다. 직업학교와 경찰학원도 운영하며 교육업계의 ABC를 몸소 경험한 그는 한발 더나아가 대중강의로까지 입지를 확장했다. 또래라면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이미 다양하고 풍부한 교육 경험을 쌓은 그였다. 하지만 막상 대중들을 상대로 한 첫 강의는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호텔에서 청중 100여 명에게 교수법과 이미지메이킹 등을 강의하는 자리였다. 대중강의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첫 강의치고는 상당한 규모였다. 그만큼 긴장해서일까. 한 겨울이라 어그부츠를 신고 집을 나서며 강의 때 신을 정장 구두는 따로 준비해놓았는데, 그만 깜박 잊고 강의 현장에 도착했다. 부츠를 신고 강의한다는 게 얼마나 실례인가.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벗고 연단에 섰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처럼, 일부러 그렇게 연단에 섰나보다라며 긍정적으로 봐주시더라.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앞이 캄캄 했다.”

첫 강의 기억이 선명한 건 비단 아찔한 에피소드 때문만은 아니다. 강의 후 자신에게 다가온 한 청중의 한 마디. “(강사님) 반짝반짝 빛이 나네요. 지루할 틈 없이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라는 피드백은 이후 대중강의에 애정을 갖고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수험생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이 사실 경제적으로는더 여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보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성인 대상 대중강의는 동기부여가 조금 덜 된 분들을 내가 주도해 이끌고 궁극적으로 그분들의 삶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다. 강의를 하는 나 자신도 청중들의 변화를 이끌며 설레고 또 보람도 컸다.”

물론 강사로서 어려움도 많다. 경쟁도 심하고 부침도 있다. 강사들이 한데 마음을 모으는 데도 여러 제약이 따른다. 능력을 갖추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이중 잣대와 선입견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그는 강사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경쟁을 넘어 협력으로 상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섰다. 바로 ‘국제강사협회’ 창립이다.

국제강사협회(이하 국강협)는 기업과 기관 등에서 강의하는 1,140 명의 강사들인 모인 비영리단체다. 현재 12개 교육분과(디자인 씽킹, 마인드, 직무, CS, 자기개발, 해외교육, 청소년, 시니어, 의무, 리더십, 취․창업, 기업교육개발)로 나뉘어 있고 강사들은 분과에 소속 되어 매주 혹은 매달 모여 강의 프로그램 개발 및 강의력 검증 시간을 갖고 있다. 강사양성 과정도 꾸준히 진행한다. 특히 ‘국강협 정모’라는 이름의 월 정기모임에서는 각 기업의 교육담당자를 초대해 현장에서 미처 듣지 못한 강의평가를 듣는 ‘강사에게 고한다’, 분과별로 선정된 강사에게 동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듣는 ‘강사마이크’ 등이 진행된다. 15분가량 진행되는 강사마이크는 초보강사로서의 설렘, 10년차 프리랜서 강사의 애환, 교육업계 대표로서의 고충 등을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이다. 즉석 투표를 통해 선정된 강사에게는 ‘강사마이크’ 트로피도 수여한다.

 

“삼성전자의 교육담당자인 차장님을 모시고 진행한 ‘강사에게 고한다’ 시간이 정모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강의현장 에서 교육담당자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피드백을 듣기 쉽지 않은데 교육담당자의 공식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강사들 또한 반성 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국강협은 수준 높은 강의를 전하겠다는 뜻을 가진 강사들이 한데 모여 서로 발전하고 연합 하며 나날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협회 창립 취지에 십분 공감하고 마음을 모아주신 강사님들이 있기에 규모도 커지고 사업도 날로 확장되고 있다. 동료 강사님들께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김건희 강사는 현재 창의적인 문제해결, 아이디어 도출, 기업문화 개선, 혁신적인 회의기법 등을 돕는 미국 스탠포드 디스쿨의 디자인 씽킹 기업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뇌호르몬 통합진단 기법 기반으로 중간관리자 조직 활성화 교육과 컨설팅을 진행하는 ‘직원사용설명서’, 기업 CEO와 관리자, 작가와 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진정성을 키워드로 하는 트렌드 스피치 방법을 전하는 교육을 주강의분야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그를 소개하며 ‘디자인 씽킹’ 교육 프로그램을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인 씽킹은 ‘사람에 대한 관찰과 공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상황에 대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과정을 반복해 혁신적 결과를 도출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글로벌기업을 비롯해 혁신을 시도하는 많은 기업은 고객과 소비자의 공감을 베이스로 한 사고를 디자 인하는, 즉 디자인 씽킹이 기존의 의사결정 체계를 실질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해결방법이라며 크게 주목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은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고의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세스는 배움이 아니라 체험이고 정신이며 문화다. 디자인 씽킹은 공감(Empathize), 정의(Define), 아이디어(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검증(Test)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고객의 마음을 깊이 있게 읽어내고, 예민한 관찰을 통해 고객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점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제까지 찾아낸다. 그리고 협업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고민해 합의점을 도출하고, 창의적인 사고와 무한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안한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강사는 이 프로세스를 구조화해 학습자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 씽킹에 관한 기업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공기업 강의에서 만난 4~5급 공무원들은 청중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혁신 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디자인 씽킹에 대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며 CEO 등 고위공직자들이 꼭 들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디자인 씽킹 전문가가 되려는 이들도 크게 늘고 있다. 12월에 김건희 강사가 직접 강의하는 국제강사협회 ‘디자인 씽킹 전문가 양성 3기 과정’은 밤 11시 공지 한 시간 만에 마감되기도 했다. 디자인 씽킹 분야에서 그가 차지하는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이 뿌듯하지만 한편으로 부단한 노력도 필요하다. 변화의 가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다. 특별히 디자인 씽킹 분야의 책은 새로 출간될 때마다 쌓아놓고 읽어 내려가는 ‘계독’을 하고 있다. 또한 관련분야 교수님들과 책 집필에도 힘쓰고 있다. 구글 알리미 등 SNS를 최대한 활용해 이 분야 와 관련된 국내외 동향 파악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디자인 씽킹 관련 타 강사들의 강의도 빼놓지 않고 듣는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창의교육센터는 이미 국내 최대 디자인 씽킹 인력풀을 갖고 있지만 더욱 능력 있는 디자인 씽킹 강사진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주로 30~40대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에 청중의 니즈가 시대변화의 속도와 비례해 눈에 띄게 변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이제 주입식, 수동형 강의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청중 본인이 보다 주체적으로 바뀌는 것에 발맞춰 강의 또한 청중 참여 비율을 높이고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죽은’ 강의일 수밖에 없다는 부연이다. 때문에 청중이 주체가 되는 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건희 강사의 시계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싸이월드 창업자 형용준 대표와 함께 용인디지털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디자인 씽킹 전문가 양성과정을 진행하다보니 11월만 해도 130시간 강의라는 강행군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강단에 서는 건, 청중들의 삶이 강의를 통해 변화되길, 동료 강사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격려하며 가르치는 것의 보람을 만끽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강의 말미, 청중들에게 강의는 한 번의 여행 같다는 말씀을 드린다. 여행은 사진만 남아선 안 된다. 10년이 지나도 여행의 기억이 살아있듯 오래 기억되는 뜻 깊은 여행 같은 강의가 되셨길 바란다고 이야기 드린다. 삶에 조금이나마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여행 같은 강의를 가이드하려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강사들과 힘을 모아 대한민국 모든 기업에서 국제강사협회 강사들이 강의할수 있도록 힘쓸 것이고 해외교육 현장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협회 활동 영역을 넓히려 한다. 한 분 한 분 강사님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힘닿는 한 노력하겠다.”

국제강사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으며, 그 스토리는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도움과 힐링을 줍니다. 내 안의 보물을 다른 이들 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도와서, ‘강사’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세상 앞에 세우는 것, 우리 국제강사협회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김건희가 앞으로 써 내려갈 스토리에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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