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수석기자

무겁지도 않은 짐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도 밀려왔다. ABC, 그러니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는 5박 6일 중 이틀 동안 필자의 마음을 지배했던 생각이다. 약 3개월전 처음 한국을 떠나올 때와 같았다. 다시 내려갈 것을 뭐 하러 올라가느냐는 나름의 논리로 등산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예행연습 삼아 한라산에 갔다가 까맣게 죽어버린 발톱만 얻어왔다. 그래도 네팔을 마지막 목적지로 삼은 이유가 있었다. 가보지 않은 세계가 궁금했다. 약 10년간 경험하지 않았던 백수 생활이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렜던 것처럼.

한 번도 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다

80일간 여행을 한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목적지였다. 스페인, 포르투갈, 두바이, 조지아 그리고 네팔을 간다고 하면 다음 질문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산티아고 가니?” 퇴사, 백수, 여행, 스페인 등 이모든 요소가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결론은 아니었다. 산티아고도 위시리스트에 있었지만 그보다는 하얀 설산을 보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퇴직금으로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경비는 넉넉했다. 아쉬울 것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고생을 했다. 세비야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버스에서,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로 갔던 15시간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동시에 히말라야를 오를지 말지도 같이 고민했다. 혼자 가기도 무섭고, 힘들기도 싫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는 것이었다. 네팔에 도착하기 전까지 동행이 없으면 트레 킹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네팔행 비행기를 타기 일주일 전에 팀이 조성됐다. 한 명은 20 대 중반의 친구였고, 한 명은 트레킹을 마치면 바로 입대를 해야 하는 친구였다.

트레킹 출발 하루 전날 두 명의 동행과 가이드 겸 포터인 디팍을 만났다. 가이드는 트레킹 중 숙소를 잡아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고, 포터는 트레커의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다. 가이드와 포터를 각각 고용하기도 하고한 사람이 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포터 가이드 없이 트레킹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코스를 점검 하고 비용 문제를 상의했다.

순조롭게 이야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마치 내일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어 숙소에 남겨둘 짐과 산에 가지고 갈 짐을 나눴다. 포카라에 와 일주일동안 한국 여행객들을 만나 유용한 정보를 많이 모아뒀다. 고산병 탓에 샤워는 물론 씻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며 코인 물티슈를 추천해주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올라갈수록 뭐든지 비싸지기 때문에 간식은 미리 챙겨 가는 게 좋다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것이 어설펐던 장기여행 중에 트레킹은 그나마 준비를 열심히 했다. 짐은 최소화했다. 포터가 짐을 들어주지만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세 명의 짐을 모으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포터가 힘겹게 짐을 메는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도 적지 않았지만 설산을 보러간다는 설렘이 더 컸다. 포카라에서 1시간 넘게 택시를 타고 들어 가, 등산 신고를 하고 다시 지프로 한 시간을 가서야 트레킹이 시작됐다.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처음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좋았다. 풍경을 살펴볼 여유도 있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첫날이니 유유자적 쉬엄쉬엄 올랐다. 하교하는 네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음식과 생활물품을 나르는 동키 떼가 지나가면 신기방기하며 쳐다봤다. 관광 모드로 트레커라는 신분을 망각했다. 당연히 일정은 늦어졌다. 산은 해가 금방 떨어져 6시가 되기 전부터 어둑어둑했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하나 깜박한 것이 있다면 헤드라이트였다. 산에 가봤어야 그런 것이 필요한 줄 알텐데,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암흑이 눈앞에 펼쳐 질지는 몰랐다. 얼마나 큰 착오였는지 이후 알게 되었다.

첫날의 경험이 우스웠던지 둘째 날에도 우리는 여유를 부렸다. 다른 트레커들은 일찍 출발했는데, 우리는 동네 구경을 다녔다. 출발이 늦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필자의 걸음이 더뎠다. 코스는 첫날보다 더욱 험하고 오르락내리락했으며, 밤은 역시나 일찍 찾아왔다. 동행들과의 대화가 끊어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대충 아무 데나 들어가서 쉬고 싶었는데 가이 드가 촘롱이라는 지역에 숙소를 마련해 놓은 뒤였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 라이트를 한 손에 쥐고 한 손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어갔다. 숙소에 겨우 도착하니 저녁 8 시가 넘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절어있었다. 그나마 해발 2000미터 갓 넘은 곳이라서 따뜻한 물로 샤워가 가능했다. 그것이 ABC에서 올라가기 전 마지막 샤워였다.

전날의 뼈아픈 일정 착오로 인해 셋째 날은 오전 8시가 되기 전에 출발했다. 길은 어제보다 더 가팔랐다. 계단을 한참이나 오르고 나면 다시 한참 내려갔다. 시간에 맞춰 짧게 휴식을 취했고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그러나 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산세는 험해졌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필자는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딛다보니 또 뒤처지고 말았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사흘을 걸었는데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계속 스케줄은 늦어지고 그 탓에 몸과 마음은 지쳤다. 편한 여행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왜 굳이 트레킹을 하겠다고 결심했는지 스스로를 원망했다.

경험은 영원히 남는다

나흘째 아침을 맞았다. 최종 목적지인 ABC까지 가는 것이 우리의 일정이었다. 걱정이 됐다. 또 밤늦게 도착할까봐 걱정이 됐고 고산병으로 고생할까봐 두려웠다. 고산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아스피린을 동행이 건네줬다.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아스피린도 꿀꺽 삼켰 다. 오늘만큼은 동행에게 피해주지 않고 잘 올라가리라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빨리 치고 나가자는 생각에 앞장섰다. 정말 앞만 바라보고 걸었다.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걷고 또 걸었고, 트레킹 후 입대 예정인 동행이 속도를 맞춰줬다. 포터는 또 다른 동행을 챙겼다.

일정은 앞선 3일과 달랐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순조로웠다. 안나푸 르나 베이스캠프에 가기 전 마지막 포인트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 프(MBC)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가이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 빨리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목적지가 바로 코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지쳤던 몸이 각성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고 싶었다. 안나 푸르나에서 일몰을 꼭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필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길도 좋았다. 위험한 길은 하나도 없었고 마치 들판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지니 걸음도 가벼워졌다. 점심식사후 속이 좋지 않다고 했던 동행은 가이드와 천천히 올라오기로 하고, 필자는 남자 동행과 빠르게 움직였다.

덕분에 5시 즈음에 해발 4200미터 고지 캠프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도 너무나 좋아하는 마차푸차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설산도 실컷 봤다. 상쾌했다. 내가 이뤄냈다는 성취 감도 컸다. 솔직히 내 손으로 사표를 쓰고 나왔지만 사회생활이 녹록치 않다는 패배감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 졌다. 아니 없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산 하나 오른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트레킹 하기 전과 후의 나는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싹텄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속이 좋지 않다던 동행이 탈이 났다. 겨우겨우 ABC까지 왔지만 고산병이 온 것이다. 밤새 끙끙 앓고 토사곽란이 왔다. 필자를 비롯 동행은 물론 같은 방을 사용했던 한국인 트래 커들이 침낭을 빌려주고 이불을 더 덮어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고 보니 올라오는 길에 아스피린, 멀미약, 고산병 약을 연달아서 먹었던 것이다. 가이드와 숙소 직원들과 상의한 끝에 3900미터의 MBC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때 시간이 자정이었다.

남자 두 명과 가이드가 동행을 업고 먼저 내려가고, 필자와 나머지 트레커가 짐을 짊어지고 가기로 했다. 한밤중이었고 포터가 들어줬던 짐을 이고지고 내려갔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ABC에 올라가는 몇날며칠을 깜깜한 밤에 등반을 했던 이유가 이런 상황을 대비 하기 위해서였나 보다. 공기가 맑았다. 정신까지 맑아졌다. 오를 때와 달리 내려가는 길은 약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지가 낮아 지자 동행의 상태도 좀 나아졌다.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 밤의 사태에 조금은 웃음이 났다. 누가 ABC 에 올라가서 자정에 내려올까 싶었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또 삶이겠구나 싶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밤하늘이었다. 별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평생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한 장면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인생의 오르막길, 내리막길에서 위로해줄 그런 장면을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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