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수의 조직문화

최근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분야는 단연 체육계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체육인들이 그들의 지도자로부터 당한 성폭행을 세상에 알리면서 체육계의 어두운 뒷이야기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빙상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에 이어 유도, 태권도로 번져가는 체육계 미투 운동이 들판의 불처럼 번지고 있다. 향후 이 사태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한 예측과 함께 어떻게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원인분석 코멘트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그 중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원인분석이 바로 코치나 감독이 갖고 있는 ‘절대적 지위’ 이론이다. 그들에게 찍히면 운동을 계속할 수없는 체육계의 기형적 환경을 지적하는 이가 많다. 이런 절대적 지위 때문에 힘없는 선수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동정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체육계의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선수들이,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당했다고 주장하는 일상적인 폭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코치로부터의 구타는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어떤 때는 이렇게 맞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증언했다. 폭행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를 묘사한 것이다. 이런 공포가 성폭행의 장면에서 항거할 수 없는 이유로 작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맞아야 긴장한다?!

친구 중 운동으로 학교를 진학한 체육 특기생이 있어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고 있다. 직접 운동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학 창시절 운동하는 특기생들과 가까이 지낸 덕분에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레슬링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럭비가 전국체전 결승까지 가는 바람에 서울로 상경해서 응원했던 경험까지 가지고 있다. “야구로 결승 진출하면 방송까지 나갈 수도 있을 텐데, 왜 인기도 없는 럭비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대화를 나누며 럭비에 열광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 하다. 사실 응원에 대한 기대와 흥분은 결승에 진출한 학교 때문이 아니었다.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던 같은 반 친구 홍은이(가명)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야구장을 찾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선수의 활약을 보기 위해 더 열심히 그곳에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날 홍은이는 시합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2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기량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홍은이는 정작 결승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3학년들에게 가급적 많은 출전기회를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시합에서 진 선배들의 화풀이로 죽을 만큼 구타를 당해서한 동안 학교에도 못 오고 그랬다고 한다. 그때는 운동하는 애들에게 늘 있는 일이었기에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맞아야 긴장한다!”는 구호가 항상 걸려 있던 때인 지라, 구타로 얼굴이 멍이 들거나 걷지를 못하거나 하는 일들에 대해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강산이 바뀐 지금도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료회원전용기사

로그인 또는 회원가입을 해주세요. (유료회원만 열람가능)

로그인 회원가입
저작권자 © 월간 인재경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