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3.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때로 나쁜 짓을 하더라도 그에 마땅한 사유가 있거나 단순한 실수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래, 그때 그 행동, 내뱉은 말은 참 나빴어, 잘못했지’ 하면서도 ‘그렇다고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는 베이스로 깔고 가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선설(性善說)을 믿는 존재인 것 같다.

아직 미혼인지라 조카들 보는 재미로 사는 나는, 순간순간이나마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선악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유아, 유년기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세상 순진하고 착할 것만 같은 꼬물이들이 한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집, 억지, 반항, 시기, 질투로 떼를 쓰는데 어떤 때는 ‘인간은 악한 본성을 타고 나나 보다’ 싶을 정도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하루는 두 살 터울의 형제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는 동생이 자기를 밀었다며 내게 와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동생은 작은 방에 숨어있는데 말이다). 평소 동생이 형보다 기가 세서 알게 모르게 억울한 구석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눈물과 연기력을 발휘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하는 6살 꼬맹이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동생 부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거짓말보다 어린 생명의 눈물에 더 마음을 썼겠지만, 나는 거진 30분 동안을 거짓말을 바로 잡느라 애썼다. 따로 강요하지 않아도 어른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가진 것을 나누기도 곧잘 하는 녀석이 엉뚱한 고집은 천하제일이 아닌가. 거짓말을 하는 녀석의 마음은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진 것일까.

잠깐 대학시절로 돌아가서, 루소의 『에밀』을 배울 당시 전공교수님이 내게 물었다.
“너를 구성하는 육체적, 정신적 기원은 유전일까 아니면 환경일까?”
“환경이요.”
“허허, 아니지.”

남녀의 유전자가 결합해 태어나는 생명은 당연히 그들의 유전을 바탕으로 한다. 사과랑 사과가 결혼해서 바나나가 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환경’이라고 당당히 외친 건, 그만큼 인간의 성장과 완성을 좌우하는 한 끗은 환경적 요소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타고난 피겨 천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그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돌아가, 아이의 한마디 거짓말을 두고 ‘너는 천성이 나쁜 아이야, 부모를 닮아 그럴 거야’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다. 아마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동생이 형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숨바꼭질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거짓말은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불어 거짓말이 툭 튀어나왔을 때 나처럼 훈계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유야무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환경’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본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부모’의 위대함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진실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자신의 욕망과 자식의 성공을 동일시해 모든 에너지를 자식에게 쏟아 붓는 부모가 되거나 결론은 ‘자식을 위해서’로 귀결될 텐데, 그런 관심과 희생 말고 진짜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태어나 죽을 때까지 부모는 자식에게 유전보다 더 방대하고 막강한 영향을 환경을 통해 발휘할 수 있다. 의식주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들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건강한 인격으로 자라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을 부모 스스로가 가꿔야 하지 않을까 한다.

KTX 만석 객실, 두 아이가 떼를 쓰는데 한 집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만 하고 있고 다른 한 부모는 꽤나 오랜 시간 아이와 훈계를 담은 대화를 나눴다. 자식을 낳은 아무개에 그칠 것인가, 인간을 만드는 부모가 될 것인가, 어쨌든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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