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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가끔 나는 네가 낯설다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김소정 선임기자 | 2019년 04월호, 제170호 | 승인 2019.03.25 18:06

“너는 말 한마디에 빚을 지는 스타일이야.”

다들 이런 얘기를 들어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몇 차례 들은 바가 있는 데, 하나는 내게 어떤 쓴소리나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나를 정말 걱정해서 충고하는 이들이다.

어릴 때는 참 무지해서 내 생각, 말, 행동은 다 옳다고 믿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비교적 사회적, 도덕적 기준이 높아서(?) 남들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 이를 테면 길가의 쓰레기를 줍거나 친구를 돕거나 하는 등의 일들을 곧잘 솔선수범했고 초중고 전 학년 빠짐없이 선행상, 모범상 따위를 받았기 때문에 나에 대한 맹신이 더욱 깊어졌던 것 같다(그런데 왜 공부는 안 했을까 미스터리).

거의 여대라 할 정도로 남자가 드물었던 불문과 재학시절에는 나의 자만이 하늘을 찔렀다.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내 기준을 강요하기도 했고 절친 넷이서 떠난 유럽 배낭여행은 두 명과 절교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유는 여행 중 보인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물론 돌이켜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3학년 말, 중국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타과 학생들과 교류가 잦아졌는데 특히 남자 선배들과의 에피소드 때문에 나의 ‘말’에 대해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유학 중, 친하게 지내는 오빠(남친 아님)가 기숙사 복도로 나만 불러내더니 심각하게 말을 건넸다.

“너 제발 입 좀 조심해. 이러다 진짜 뭔 일 나겠다. 남자애들 술판 벌였다 하면 요즘 너 얘기야. 제대로 걸리면 니킥 날아간다고. 왜 안 해도 될 말로 미움을 사냐?”

내용인 즉, 어떤 오빠가 여자애들이 챙겨온 김치를 계속 가져가니까 내가 “필요하면 사던지, 집에 말해서 보내달라고 하던지 할 것이지, 왜 나이 먹고 남들한테 피해를 주냐” 아주 싸가지 없게 말하는 소리를 당사자가 들었는데 이 사건을 가지고 남자들끼리 떠들다 보니 유사한 경험을 몇몇 했다는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 나는 주적이 되었고 이름하여 ‘니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 적잖이 충격이었다. 누군가에게 쓴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고 그것도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고 하니, 당황스럽고 억울했다. 잘못을 말한 것이 무슨 죄냐 싶은 마음은 여전 했지만, ‘내가 뭔가 상당히 잘못된 방식을 취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졌던 것 같다. 그런 충격요법에도 불구하고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여전히 생각나는 대로 툭 뱉기 일수였고 그렇게 모두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기는 힘든 길을 쭉 걸었다.

돌이켜 보니, 포인트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지 못한 미천한 성격이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나서서 객관화시키고 해결하려는 방식, ‘언어’를 다듬지 못한 부족한 소양 탓이었다. 1년에 책 한 권 제대로 안 읽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급한 성격이 한 몫 하는 것도 같고, 아무튼 말의 주인인 나도 때로 낯선 이놈의 ‘말’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내가 정말 잘못된 걸까. 그렇게 싸가지가 없나. 어떤 상황이든 그냥 입을 닫아버릴까. 어떻게 말해야 남이 상처받지 않고 나 역시 제대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의 늪에 있을 때마다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할 말은 누군가가 해 줘야지, 네 덕분에 속이 다 시원하다, 자신감이 부럽다, 직설적인 게 너의 매력이야.’ 이들은 진정 내 편인가 아니면 그냥 다듬어진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일 뿐인가.

뭐가 어찌 되었든, 나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는 일은 더 이상은 없어야지 한다. 말 한마디에 빚을 지는 건 어리석고, 결론적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갉아먹는 행위다. 둥글고 따뜻한 말을 쓰는 사람이 되는 방법, 수양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김소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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